민주당의 중간선거 승리를 이끈 백악관의 임시 거주자

“이제 미국을 다시 선한 나라로 만들 때다”라는 말로 읽는 미국 중간선거

민주 제도의 꽃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순간에 피어난다. 열매는 그 선택이 권력의 방향을 바꿀 때 맺힌다. 2026년 미국 중간선거는 대통령에게 맡겼던 권한을 유권자가 어떻게 다시 통제하는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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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일인 2026년 11월 3일, 높이 약 169m의 워싱턴 기념비 전망대에서 바라본 연방의회 의사당. 민주당은 텍사스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캔자스 등 공화당의 오랜 강세 지역에서 상원 의석을 뒤집으며 2006년 이후 20년 만에 연방 상·하원을 동시에 탈환했다. 미국 정치 지형을 흔든 이번 선거 다음 날부터 트럼프의 남은 임기는 ‘레임덕 대통령 임기’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진 © 강형원 촬영


 

민주당은 연방 상원 다수당이 되기 위해 공화당 의석 네 곳을 가져와야 했지만, 이미 최소 일곱 곳을 뒤집었다. 하원에서도 공화당 의석 수십 곳을 빼앗으며 다수당 탈환에 성공했다. 상원의 알래스카와 미시시피를 비롯해 아직 승패가 가려지지 않은 선거가 남아 있지만, 양원의 주도권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선거의 무게는 분명하다.

 

그 변화는 필자가 며칠 전 취재했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나타났다. 길가에서 보았던 민주당 상원 후보 애니 앤드루스(Annie Andrews)의 선거운동 표지판이 개표 소식과 함께 떠올랐다. 소아과 의사인 앤드루스는 지난 7월 11일 71세로 사망한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 연방 상원의원의 여동생 달린 그레이엄(Darline Graham)을 꺾었다. 달린은 오빠의 사망 뒤 후임으로 임명돼 의석을 이어받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여성이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것은 처음이다.


그 승리가 일어난 장소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2024년 트럼프가 약 18%포인트 차이로 이겼던 공화당의 강세 지역이다. 그곳 유권자들이 대통령이 지지한 후보에게 다른 답을 내놓았다. 정당의 간판이나 대통령의 추천이 시민의 판단을 대신하지 못한 것이다.


텍사스에서도 민주당의 제임스 탤러리코(James Talarico)가 공화당의 켄 팩스턴(Ken Paxton)을 10%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승리하며 민주당의 오랜 주 전체 선거 패배를 끝냈다. 탤러리코는 승리 연설에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꺼냈다. 거대한 상대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텍사스의 지나 이노호사(Gina Hinojosa)는 주 최초의 라티나 주지사로, 조지아의 키샤 랜스 바텀스(Keisha Lance Bottoms)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로 당선됐다. 뉴멕시코에서는 라구나 푸에블로 출신인 뎁 할랜드(Deb Haaland)가 미국 최초의 원주민 여성 주지사 당선인이 됐다.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을 위해 가장 부지런히 선거운동을 한 사람이 트럼프 자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후보를 골라 지지하고 자신의 정책을 앞세울수록 유권자들에게는 그 선택을 거부할 기회도 선명해졌다. 대통령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없어도 그의 지난 2년은 심판대에 올랐다. 관세와 전쟁,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 부담,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우려가 지역 선거의 판단으로 이어졌다.

 

 

주유소 가격표에 적힌 정치


그 판단을 이해하려면 선거 지도의 빨강과 파랑뿐 아니라 주유소 가격표도 보아야 한다.


필자가 버지니아에서 촬영한 가격표에는 휘발유가 갤런당 4달러, 경유가 6달러를 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한 주유소의 가격이 미국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운전자에게 그 숫자는 매일 지불해야 하는 현실이다. 경유 가격은 운송비를 거쳐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버지니아는 워싱턴에서 미국 남부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남북전쟁의 주요 전장이었고, 미국 대통령 여덟 명의 출생지로 어느 주보다 많은 대통령을 배출했다. 정치사의 무게가 쌓인 이곳에서도 시민들이 당장 마주하는 정치는 기름값과 생활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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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일인 2026년 11월 3일,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의 한 주유소 가격표에 휘발유는 갤런당 4달러 이상, 경유는 6달러 이상으로 표시돼 있다. 공화당이 연방 상·하원의 주도권을 모두 잃으면서, 선거 다음 날부터 트럼프의 남은 임기는 ‘레임덕 대통령 임기’로 불리기 시작했다. 

사진 © 강형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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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1일, 조지아주 포트웬트워스의 한 주유소 가격표에 경유는 갤런당 6.499달러, 휘발유는 3.599달러로 표시되어 있다.  사진 © 강형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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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1일, 조지아주 포트웬트워스의 한 주유소 가격표에 경유는 갤런당 6.499달러, 휘발유는 3.599달러, 에탄올을 첨가하지 않은 휘발유는 5.499달러로 표시돼 있다.  

사진 © 강형원 촬영


 

선거가 치러진 날 밤 필자가 만난 한 남성은 은퇴 이후를 걱정했다. 나이가 들어 혼자 생활할 수 없게 되면 요양시설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었다. 그에게 경제는 주가지수나 대통령의 자랑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자신의 저축으로 노년의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경제였다. 자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크게 누리는 사람들과 매달 생활비를 계산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미국이 존재한다.


우방과 이웃 나라에까지 부과한 관세는 수입 상품의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이란 전쟁 또한 에너지 가격과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준다. 바락 오바마 행정부가 주요국들과 함께 합의해냈던 2015년 이란 핵합의는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하고 검증하는 장치였다. 트럼프는 2018년 미국을 그 합의에서 탈퇴시켰다. 오늘의 전쟁을 그 결정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외교적 제약 장치를 없앤 뒤 군사력에 의존하게 된 과정은 따져 물어야 한다.


미국의 누적 국가부채는 이미 40조 달러를 넘어섰다. 트럼프 한 사람의 예산도, 한 해의 지출도 아니다. 여러 행정부와 의회가 쌓아온 빚이다. 그렇기에 대통령과 의회는 지금의 선택이 미래에 국민에게 어떤 부담을 남기는지 설명할 책임이 있다.

 


백악관의 임시 거주자가 남기려는 흔적


워싱턴을 돌아보면 대통령의 관심이 시민의 생활보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데 더 많이 향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백악관에서는 대규모 연회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East Wing 을 철거한 자리에 들어서는 새 건물은 약 9만 제곱피트 규모로 계획됐다. 역사적 공간을 대하는 절제보다 부동산 개발업자의 확장 욕구가 먼저 보인다. 국민들의 눈에는 멀쩡한 백악관을 고치겠다며 먼저 부수는 모습으로 비친다.


공사를 둘러싼 법적 논쟁은 건축 취향 이상의 문제를 드러낸다. 대법원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공사를 계속할 수 있게 했지만, 사업의 적법성을 최종 확정하지는 않았다. 존 로버츠(John Roberts) 대법원장은 소수의견에서 의회의 명시적 승인 없이 진행하는 공사는 위법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허가를 얻기 전에 돌이키기 어려운 현실을 만들어버리면 법은 뒤늦게 따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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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 건설 중인 대규모 연회장이 본관 높이까지 올라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치 지형을 크게 바꾼 중간선거 다음 날인 2026년 11월 4일 오전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여러분, 위에서 헬기장 보셨나요? 얼마나 아름다운지?”라고 말했다. 민생보다 백악관을 부동산 개발사업처럼 다루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사진 © 강형원 촬영


 

트럼프가 대대적인 개조를 추진하는 이스트포토맥 공원의 기존 공공 골프장에서는 지난 10월 10일 하루에 건강한 비외래종 나무 약 430그루가 제거됐다. 연방법원의 결정문에 확인된 수치다. 국립공원관리청이 제시한 전체 벌목 계획은 529그루에 이른다.


멀쩡한 나무 제거와 공공 접근권, 보존 절차를 둘러싼 소송이 이어지고 있으며, 법원은 추가적인 나무 훼손을 제한했다. 누구나 이용하는 공간을 바꾸는 일이라면 대통령의 취향에 앞서 시민의 권리와 법적 절차를 물어야 한다.


알링턴 국립묘지 인근에 세우려는 높이 250피트의 개선문 계획에도 버지니아와 워싱턴 D.C., 참전용사 등이 소송을 제기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 앞에 거대한 기념물을 세우는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게 된다.


필자는 트럼프가 국가의 협상가라기보다 자신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사업가처럼 행동해왔다고 본다. 그러나 공공의 권한에는 사기업의 거래와 다른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법이 허용하는가. 이해충돌은 없는가. 비용과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공개된 재산신고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는 두 번째 대통령 임기 첫해에 가족의 가상자산 사업과 관련해 약 14억 달러의 수입을 신고했다. 대통령의 공적 권한과 개인 사업의 이익이 만나는 지점은 의회가 자료를 확보해 검증해야 할 사안이다.

 


견제할 권한, 삶에 답할 책임


이번 선거는 의회의 역할을 되살릴 기회를 만들었다.


민주당의 상원 장악은 대통령의 장관과 연방법관 지명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대법관 공석이 생긴다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하원에서는 행정부의 권한 남용과 이해충돌 의혹을 조사할 수 있고, 예산과 입법을 놓고 대통령에게 설명과 타협을 요구할 힘도 커진다. 이 권한은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행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원에서 수십 석을 더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는 없다.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양원에서 각각 정족수가 충족된 가운데 투표한 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은 대통령을 견제할 의회이지, 또 다른 무제한 권력이 아니다.


민주당의 책임도 여기서 시작된다. 생활비와 의료비를 걱정해 표를 준 시민에게 조사 청문회만으로 답할 수는 없다. 권력 남용을 밝히는 동시에 시민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을 만드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상대를 반대하는 데서 얻은 지지는 상대가 약해지면 함께 사라질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보여주는 정치는 그보다 오래간다.


이 글은 민주당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권력이 유권자의 삶을 외면하면 어느 정당이든 심판받는다는 민주 제도의 원리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선거의 밤, 재무부 건물을 장식한 빨강과 하양, 파랑을 생각한다. 성조기의 세 가지 색은 어느 한 정당의 소유도, 대통령의 소유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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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일인 2026년 11월 3일, 워싱턴 D.C.의 재무부 건물이 선거일을 기념해 성조기의 세 가지 색인 빨강과 하양, 파랑으로 빛나고 있다. 투표권 행사는 민주 제도의 꽃이다.  사진 © 강형원 촬영

 


공화당 소속인 데이비드 홀트(David Holt) 오클라호마시티 시장은 선거 결과를 지켜본 뒤 이렇게 썼다.


“이제 미국을 다시 선한 나라로 만들 때다.(It is now time to make America good again)”


홀트는 올해 2월 10일 시장 선거에서 86.5%의 득표율로 3선에 성공했다. 임기는 2030년까지로, 2029년 1월 끝나는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보다 길다. 자신의 당선을 호소하던 후보가 아니라 이미 세 번째 임기를 확보한 공화당 시장이 내놓은 말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나라를 운영할 권한을 맡겼다. 나라를 소유할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다. 백악관에 사는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면 떠나야 하는 임시 거주자다. 투표가 민주 제도의 꽃이라면, 그 열매는 선거 다음 날부터 권력이 시민의 삶에 답하게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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