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듯 약자의 주장이 기필코 옳은 것도 아니다. 그렇건만 대체로 연맹의 변명보다 선수의 발언을 옳은 것으로 가납한다. 이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부작용일 수 있다.
안세영 선수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자주 실렸다. 그러나 자연스레 눈에 띄어서 알 뿐 기사를 읽은 적은 없다. 안 읽은 이유를 말하겠다. 말하기는 머슥하지만 이야기의 전개상 말하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나는 한때 경상남도 복싱연맹을 책임지고 이끌었다. 그래서 저런 문제를 심심찮게 겪었다. 그런 경험칙상 안 선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략 짐작이 갔다. 굳이 읽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협회가 위법을 저질렀거나 부정행위를 했다면 벌써 난리가 나도 났을 텐데 그런 일이 없는 걸로 보아 여사(餘事) 문제일 수 있겠다 여기고 말았다.
오늘 조갑제닷컴에《여론은 '안세영' 편이나…'공공의 적' 배드민턴협회도 왜 할 말 없겠나》라는 기사가 있다. 천하의 문필가 최보식 씨의 문장을 내가 어찌 안 읽을소냐. 신문에 여러 번 난 것도 읽지 않았으나 최보식 씨의 글에는 달려가듯 서둘러 읽었다.
읽어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써놓았다. 나는 마음에는 있을지라도 글로는 옮길 수 없는 내용까지도 그 능숙한 표현력으로 다 써놓은 기사이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으므로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 한번 해 보겠다.
중앙은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고 지방은 지방 대표선수를 선발하지만 그 과정과 운영. 그리고 체제는 거의 똑같다. 전국체전에 출전할 대표선수를 4차에 걸쳐 뽑는데 최종 선발전은 1. 2. 3. 4차 선발전에서 1, 2위를 한 선수만으로 경기한다. 세상에 우연이 없을 수 없다. 최종선발전에서 우연히 우승하는 선수가 간혹 있다. 평소의 실력과 전적. 출전 경험 등으로 보아 패배한 선수가 오히려 월등한 기량을 가진 선수일 때가 있다. 이때 연맹은 최종 우승한 선수를 버리고 패배한 다른 선수를 대표로 선정. 출전시킨다. 물론 전력강화위원회의 토의를 거친다 (참고로, 이런 경우를 방지하려 유도 같은 경기는 패자 부활전이 있다. 예선에서 패했던 선수가 패자부활전을 통해 우승한 경우가 자주 있다. 복싱은 경기의 특성상 패자 부활전을 할 수 없다.)
선수측 입장에서 보면 연맹이 대표선수를 교체한 것을 연맹이 부정한 짓을 했다고 우길 수 있다. 실제로 누구나가 그렇게 나왔다. 아무리 설득해도 통하지 않는다. 선수 뒤에 있는 학부모 탓에 더 그렇게 된다. 선수는 연맹의 생리를 대충 알고, 경기의 흐름을 알기에 무식하게 나오지 않으나, 학부모는 그런 걸 모르니 눈에 자기 자식뿐이다. 그래서 우승을 권리로 착각한다. 나 역시 선발전에서 우승했지만 가난한 나라의 체육 정책. ‘소수정예’에 막혀 대표선수가 되지 못했다. 대표선수 선발에도 이런 일들이 있는데 여타의 소소한 일이야 오죽하겠나.
연맹은 여러 경기를 열고 선수를 교육하고 관리한다. 이 돈이 어디서 나오나? 우리 연맹 같은 경우는 행운이었다. 한일합섬이 향토기업이라 하여 김중원 회장이 우리 연맹 회장이었고 회장 회비를 연 5천만 원씩 내었다. 5천만 원이 대단히 큰돈이기는 했으나 더 많은 돈이 있으면 더 많은 경기를 개최할 수 있고, 선수의 복지까지도 챙길 수 있다. 그래서 기업체 사장 세 분을 부회장으로 초빙했다. 그런 분들은 체육단체의 생리를 잘 안다. 선수들 앞에서 “차렷. 경례” 한 번 받는 것으로 거액을 내놓아야 한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안 하려고 한다. 할 말은 아니지만, 그때 필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주먹이 뒷받침된 인상 쓰기이다.
진주 인근의 어느 도시에서 그 당시에 보신탕집을 하여 떼돈을 번 사람이 있었다. 돈을 세지도 않고 그냥 가마니에 쓸어 담는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진주 건달들이 이 가게 주인에게 한번 보자고 연락했다. 눈치가 빠른 사장이 거금을 내놓으며 복싱연맹 회장을 하려 들었고 이루어졌다. 그러자 진주 건달들이 조용히 물러선 일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복싱연맹 이사 감투도 이런 식으로 주는 경우가 많다. 그 시기, 일년에 수십만 원 혹은 수백만 원을 내고 이사를 하던 시절이었고, 중앙도 같은 사정이었다. 대한복싱연맹 회장은 한국화약 그룹 회장 김승연 씨가 했고, 대한배구협회 회장은 한일합섬 회장 김중원 씨가 했고,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정몽헌 씨였다. 그분들이 국가와 체육을 위해 돈으로써 헌신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대한축구협회가 시끄럽자 “축구협회장 물러가라”는 말을 신문에서 봤다. 관계 없는 내가 다 불쾌했고, 배은망덕한 국민성이라 눈살 찌푸렸다.
연맹을 책임진 사람은 저런 궂은 일까지 했다. 물론 외풍(外風)도 막아주고 선수가 저지른 폭행사건도 나서서 무마해 주곤 했다. 그래서 연맹 전무이사는 지역사회에서 이름이 좀 있고, 주먹도 좀 있어야 일하기가 수월했다. 간혹 다른 지역에서 경기를 할 때 기업체에서 승용차를 내 주기도 했다. 그래서 연맹 임원 몇몇이 승용차를 타고 가면 학부모는 “우리는 버스 타고 가는데 저거는 세단 타고 간다”며 입을 삐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선수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선수가 쓰는 식당. 숙소를 임원의 그것과 따로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도 학부모가 연맹은 더 좋은 숙소, 식당을 사용한다며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한다. 안세영 선수 일을 기화로 누구는 비즈니스석을 탔니, 다른 누구는 이코노미스석을 탔니 하는 말이 나온다. 조기축구회 회장만 되어도 시야가 넓어진다. 그것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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