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어와 콩나물국밥

중학 시절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종종 미국영화를 보곤 했다. 저택의 맑은 물이 찰랑거리는 풀장 옆 식탁에서 주인공이 품위 있게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다. 은촛대와 식기들이 보이고 하얀빛이 나는 접시 위에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가 보였다. 주인공이 하얀 빵조각에 검은 캐비어를 발라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언젠가 그걸 먹어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었다.

중학 시절 재벌 회장의 아들인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서울의 최고급 호텔 양식부에서 몇몇 아이들과 정식코스의 요리를 먹게 됐다. 하얀 테이블보 위에 놓여진 은빛 나이프와 포오크들을 보면서 나는 기가 죽었다. 애피타이저로 작은 삼각의 유리잔에 담겨나온 새우를 보고 나는 당황했다. 그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걸 먹고 살 수 있는 부자들이 부러웠다.

어머니는 항상 반들반들하게 닦은 양철 소반에 밥과 김치국을 가져다 주었다. 더러 소금덩어리가 된 생선 한 토막이 상에 나오기도 했다. 나의 혀는 그 강하고 짠 맛에 길들여졌다. 더러 아버지를 따라 시장통의 허름한 밥집에서 순대국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젊은 날 박노해 시인의 시에서 공단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를 먹는 사람이 있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의 혀는 공단쪽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가까운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나는 중견 변호사가 됐다. 어느날 법원장을 마치고 유명 로펌의표가 된 지인을 만났다. 그의 로펌은 서울의 중심부의 고층빌딩에 있었다. 대리석 바닥에 사면이 유리로 덮인 고급 건물이었다. 그 로펌 안에는 파트너 변호사나 VIP들만 출입이 가능한 라운지가 있었다. 드라마에서 가끔 소개되는 최상층 사람들만의 은밀한 사교장 역할을 하는 곳이다. 친구는 그 로펌에 소속하는 천 명 가량의 변호사와 직원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에 재벌그룹 회장한테서 점심 대접을 받았는데 캐비어가 나오는 거야. 그걸 보면서 나도 이제 캐비어를 먹는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성공한 느낌이 들더라구. 저녁 때 집에 가서 아내에게 그걸 자랑했지. 나 오늘 캐비어를 먹었다고 말이야. 그 후에 누군가 법정드라마를 보라고 권하더라구. 그걸 봤지. 우리 같은 대형로펌을 패러디한 내용이더라구. 속물들이 돈을 벌어 캐비어를 먹으면서 출세한 보람을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 걸 봤어. 그걸 보면서 속이 확 찔렸어. 나한테서 그런 속물 근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으니까 말이야.”

“그 캐비어가 맛이 있었어?”
내가 물었다.

“나는 모르지. 혀가 아니라 관념으로 먹었으니까. 저녁에 집사람하고 아파트 근처를 산책하고 근처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가 오천 원짜리 콩나물국밥을 사 먹는데 사실 그게 더 맛있지.”

그는 드라마에 나오는 속물은 아닌 것 같았다, 나도 한 재벌 회장으로부터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고급호텔 꼭대기에 있는 식당 VIP룸이었다. 아파트만한 공간을 독점하고 둘이서 먹었다. 화려한 식탁 위에는 최고의 셰프가 정성들여 만든 요리들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드라마의 한 호화스런 장면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대접을 하는 것인지 자기 과시를 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허세고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에 앉아있는 재벌 회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밥을 먹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커서 대기업을 인수한 과정을 얘기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백층이 넘는 초대형 빌딩을 짓는 걸 자랑하기도 했다. 대충 그의 신산스런 지난 세월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나 나나 그런 고급 식당보다는 시장통의 칼국수가 입맛에 더 맞을 것 같았다.

얼마 후 그가 자살한 보도를 봤다. 그의 주머니에는 그가 뇌물을 주었다는 총리나 몇명 정치인들의 이름이 적힌 메모가 들어있었다. 대통령 개인면담 신청을 스무 번 이상 했었다. 그도 캐비어를 먹는 계급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길들여진 소박한 음식을 먹고 검소하게 그냥 사는 게 속물이 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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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pine 2025-02-12 오후 4:30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한 번 또는 두 번 캐비어를 먹으면 속물이고, 매일 그것을 먹는 사람은 깬 사람인가. 아니, 그걸 먹고 자랑하면 속물이고 매일 먹기에 자랑할 것도 없는 사람이면 대인인가.
    그저 음식이기에 때로는 비싼 것 귀한 것도 먹고, 또 비싼 것 귀한 것 먹었기에 자랑하기도 하는 것, 탓할 것 없지 않은가.
    열심히 일해 돈 벌어 그런 것 먹는 것,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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