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목수가 아니냐>
“지금까지 정상적인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있나?”
검사의 얼굴에 냉소가 피어 올랐다.
“없습니다”
“도둑질 말고 기술이 있나?”
“없습니다”
“공부는 했나?”
“못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하다못해 목수 일이라도 배우지 않은 이유가 뭔가?”
절도범을 재판하는 법정이었다. 변호사석에 있던 나는 ‘하다못해 목수’라는 말이 가시가 되어 목에 걸렸다. 나의 작은 아버지는 목수였다. 일당을 받고 공사장에서 일했다. 이런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젊어서는 모르겠는데 늙으니까 일이 너무 고달퍼. 일하는 시간 동안은 잠시도 앉아서 쉴 수가 없어. 평생 노가다라고 무시당했어.”
내가 어린 시절 세상은 직업으로 사람들을 차별했었다. 그건 계급이었다. 기억의 밑바닥에는 그 시절 광경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제일 아래는 똥 치우는 사람이었다. 둥그런 나무통이 양쪽에 매달린 길다란 막대를 어깨에 멘 남자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똥, 똥”
한 손에는 자루 달린 똥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변소 바깥에서 자루를 밀어 넣고 똥을 퍼서 통에 넣었다. 그걸 메고 골목길을 힘겹게 걸었다. 똥통이 출렁거렸다.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똥이나 치우게 된다.”
엄마가 내게 겁주는 소리였다. 그 다음의 밑바닥은 지게꾼이었다. 서울역 앞 광장에는 수많은 지게꾼들이 서성거렸다. 기차가 도착하면 달려가 서로 짐을 지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햇볕에 새까맣게 탄 바짝 마른 남자가 지게에 낡은 장롱과 이사 보따리를 지고 가파른 산동네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지게 작대기로 버티면서 한 발 한 발 올라갈 때마다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 내 기억의 서랍에 들어있는 한 장면이다.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런 지게꾼이 된다”
엄마는 그렇게 겁을 주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라고 했다. 동네 파출소 순경만 보면 주눅이 들었다. 노란빛이 흐르는 눈에서 독이 번져 나왔다. 경찰서에 끌려온 구두닦이 아이들이 따귀부터 맞고 발길에 채이는 걸 봤다. 눈에서 파란 불꽃이 이는 아이들은 저항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 형사 앞에서 변호사를 부르겠다고 하며 저항하는 장면이 종종 있었다. 나는 변호사가 됐다. 화려해 보이는 여러 직업의 사람들을 만났다. 대중의 우상이 된 인기가수의 소송을 맡으면서 그의 속사정을 들었다.
“한번 출연하는 데 억대의 돈을 받는 대신 피를 말려요. 소속사에서 스케쥴을 엄청 빡빡하게 잡아요.”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교통체증에 걸리면 방송에 늦지 않으려고 퀵서비스 오도바이를 타기도 하고 병원 앰뷸런스를 이용하기도 하죠. 그런 걸 타고 바로 방송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멀리서 내려서 옷과 분장 도구를 들고 정신없이 뛰어가야 해요. 제가 일부러 늦게 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내가 인기가 올라 건방져졌다고 욕을 해요.”
그의 얼굴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바삐 가도 삼사 분 노래하기 위해 그때부터 열 시간을 기다린 적도 많아요. 이 방송 저 방송에 출연하려고 차에서 쪽잠을 자고 밥을 굶은 적도 많아요. 남들은 제가 엄청난 개런티를 받는 걸로 아는데 돈 구경 못한 적도 많아요. 움직이려면 차에 기름도 필요하고 밥도 사 먹어야 하는데 소속사에서 받은 방송국 출연료를 저에게 주지 않는 거예요. 그 돈은 따로 거마비로 썼다면서요.”
울분이 치밀어오르는지 그가 주먹을 쥐었다.
“방송국에서 공연이 끝나고 밤이 되면 나이트클럽을 뛰어야 했어요. 나이트클럽마다 30회공연계약을 맺고 여러 군데를 뛰면 정말 그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어요. 한번은 배가 아파서 입원을 했었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병원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만 먹고 있는데 이번에는 나보고 음식 방송을 하라는 거예요.”
사람들의 뇌리에 법정의 판사는 왕같이 생각한다. 검은 법복을 입은 판사의 내면은 어떨까. 한 중견판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법정은 거짓말대회장이예요. 진실과 허위가 싸우는 게 아니라 큰 거짓말과 작은 거짓말들이 부딪치는 공간이죠. 증인까지 입만 열면 거짓말이예요. 진실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인데 왜 판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판사가 하는 역할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판사를 하다 보니까 병에 걸렸어요. 만나는 모두를 의심하는 거예요. 심지어 아내나 부모의 말도 증거가 있나 살피고 믿지 않을 때가 있어요. ”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친구가 있다. 그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수서역 부근의 그의 밭을 찾아갔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그가 농막에 앉아 있었다.
“김앤장이라는 최고의 로펌에 스카웃이 됐었지. 가보니까 하루 종일 박스같은 사무실 안에서 외국의 계약서를 번역하고 법률의견을 쓰는 거야. 색다른 경험이긴 했지만 뭔가 부족함을 느꼈어.”
넓적한 얼굴에 쌍거풀 진 둥근 눈이었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 무렵 신문을 보면 특수부 검사로 친구들 이름이 신문에 나더라구. 멋있어 보였어. 검사가 됐지. 그런데 해 보니까 그것도 막노동이야. 무거운 타자기를 들고 안 나오는 참고인 집에 가서 사정을 해서 말 동냥을 하는 거야. 완전히 서류공장 노동자야. 검사동일체라고 해서 위에서 방침이 정해지면 내 마음대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키운 나무 꼭대기에 솜털이 난 파란 두릅이 보였다.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렸어. 찾아오는 의뢰인들이 판검사와 잘 통하느냐 그것만 묻는 거야. 사회의식을 바꿔야 하겠더라구. 법조 현실을 반영한 소설을 썼지. 이번에는 내부고발자 취급을 하더라구.”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뭇가지 끝에서 두릅을 몇 개 땄다. 그를 따라 걸었다.
“그 다음은 농사를 지었지. 땅 파고 채소를 가꾸는 게 내게 맞는 것 같더라구. 그러다가 의문이 들었어. 도대체 나의 정체성이 뭔지 말이야.”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게 묻는 눈빛이었다. 그가 만든 농막 옆의 통에는 거름으로 쓸 오줌이 가득했다.
세월이 흘렀다. 조선일보에서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이라는 기사를 봤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깊은 산속 암자에 2024년 7월까지 50년 동안 생필품을 날라왔다. 그가 기자에게 말했다.
“짐을 지면서 평생을 단순하게 살았어요.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행복한 직업이었어요. 하나님이 건강한 체력을 재능으로 주셨다고 생각하고 지게꾼을 내 직업으로 받아들였어요. 일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일에서 힘을 얻었죠.”
내 기억 속에서 “하다못해 목수”라고 빈정대던 검사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예수가 목수라는 걸 몰랐을까.
“하다못해 목수”라 빈정대던 검사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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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19, 05: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