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꿈은 깨어지고> 저자 오귀성의 책에 이어 그의 딸과 사위의 책을 보았다. 모두 절판되어 일반 도서관에서는 볼 수가 없어 먼 곳이지만 국회도서관에 가서 눈이 아프도록 탐독하였다. 이들 모두는 좌파공산주의 성향이다. 일본이란 선진자유국에서 살면서도 이상사회는 소련과 북한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이다. 모두 기회가 되면 북송선을 타려고 했다. 천만 다행스러운 기회는 근 10만 명의 귀국자들에 앞서 한 명꼴로 제일 먼저 북한을 방문한다.
북송선이 있기 2년 전인 1957년 중국을 거쳐 처음 북한을 방문할 때에는 두 공산국가를 오가면서도 진실을 못 본다. 돈 잘 버는 사업가이면서 글을 남기려는 문학가로서 책을 냈는데 - 활기찬 조국의 모습에 감탄하면서 재일교포들도 조국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해 가야 한다며 북송을 지지한다. 확증 편집증인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심리 증세였다.
북한을 직접 가본 얘기이니 모두 믿을 수밖에 없다. 주식의 폭증장 같은 북송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오귀성은 정신적 주역을 한 것이다. 1959년 12월 한겨울 추위를 녹이며 첫 북송선이 떠난다. 그 열기로 자신도 북한으로 가려고 한다. 사위도 딸도 그랬다. 사위는 선생이었는데 제자들 절반 이상이 북송선을 타게 하고 그 환송을 위해 니가타 항을 여러 번 다녀오기도 한다.
북송선 추동의 주모자 격인 오귀성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다. 일본 국적자로서 일본 좌파인사들의 방북단 일원으로 1960년 8·15 해방축전 행사차로 간다. 이번에 잘 보고 자신도 조국에 가서 이바지하려는 열망이었다.
1957년 1차 방북 때의 수박 겉핧기와 달리 평양, 청진, 함흥, 원산 등지를 견학한다. 놀라운 것은 호텔에서부터이다. 친공 친북적 일본인 방북단에게도 마음대로 호텔밖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아는 이들이 찾아와도 못 만나게 한다.
여기서부터 오귀성은 확증편집증 치료가 시작된다. 거짓없는 사실인 진실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충격은 연속되었다. 청진 가는 열차 안에서이다. 이미 북한을 방문하고 낙원같은 북한이란 책을 쓴 일본 작가가 우연히 한 열차에 탄 귀국한 청년들에 의해 격렬한 항의을 받는다. 당신 책 때문에 인생 망쳤다는 것이다. 일본 작가도 그렇지만 사실 자신도 비슷한 책을 낸 자로서 무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원산에서는 일본인 처의 한 많은 눈물을 보고 또한 충격을 받는다. 또한 충격은 귀국한 지 1년도 안 된 친구와 지인들이 숙청되어 알 길이 없다. 함흥에 간 귀국여성은 남편이 반년째 사라지고 나타나지 않아 그 충격에 뼈에 가죽을 쓴 산 미라가 되었다. 생활의 고통 정도가 아니라 생명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2차 북한 방문시 여러 곳을 돌아 본 오귀성은 이제야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눈으로 돌아온다. 확증편집증이긴 했어도 그에게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양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그 양심은 귀국자들을 낭떠러지에 밀어낸 자책감을 가지게 한다. 이 비극이 이제라도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일본에 돌아오자마자 부른 것은 사위와 딸이었다. 떠날 때는 환희에 찬 분이었는데 한 달 후 정 반대의 인물로 나타났다. 본 그대로를 말하는데 놀랍게도 가장 가까운 사위와 딸들이 긍정하지 않는다.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럴 수 있다고 오히려 반박을 해 화가 치밀어 당장 나가라고 할 정도가 된다. 자신은 북한을 1차 가 보고도 확증편집증에 벗어 못났는데 사위와 딸은 방문조차 해보지 않은 이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차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조총련 간부들에게도 사실대로 보고하고 낙원이란 선전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사위와 딸이 저 정도인데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열기 오른 귀국사업에 찬물을 끼얹고 또 이를 부추긴 조총련이 치명타를 입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北送 청년들의 항의 "당신 책 때문에 인생 망쳤다"
- 이민복(대북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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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21, 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