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저   자 : 趙甲濟         
펴낸곳 : 조갑제닷컴
판   형 : 신국판
페이지수 : 448  쪽
출판일 : 2015년 7월24일
판매가격 :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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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와 언론인들에게 고전이 된 冊의 재출간!
기사를 쓰기 전에, 판결문을 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도록 만드는 책


“법과대학 시절 읽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늘 나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_판사
“한국 언론사에 남을 탁월한 탐사보도.”_기자
“잘 짜여진 형사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_학생
“대한민국은 오휘웅이라는 한 존엄한 인간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졌습니다.”_법무장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사법제도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에 대한 드물게 보는 공개 도전장이다. 저자는 참으로 놀라운 집념을 가지고 이 사건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_趙英來 변호사

기자, 검사, 판사, 기자 지망생과 법률학도들에게 古典(고전)이 된 조갑제 기자의 르포르타주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448페이지, 2만 원, 조갑제닷컴)가 29년 만에 재출간됐다.

1979년 9월13일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으로 끌려나와 돗자리 위에 앉혀진 오휘웅(당시 34세)은 “遺言(유언)이 있으면 하십시오”라는 집행관의 말이 떨어지자 마지막 말들을 쏟아놓았다.

“저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느님도 알고 계십니다. 저의 유언을 가족에게 꼭 전하여 제가 죽은 뒤에라도 누명을 벗도록 해주십시오. 여기 검사·판사도 나와 있지만 저와 같이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도록 해주십시오. 엉터리 재판 집어치우십시오! 죽어서 원혼이 되어서라도 위증하고 고문하고 조작한 사람들에겐….”

1974년 12월30일 밤, 아버지와 두 아이가 목 졸려 숨진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다음날 두이분 여인과 오휘웅을 살인범으로 체포한다. 두이분 여인이 평소 정을 통해 오던 총각 오 씨를 시켜 남편과 두 아이(남매)를 죽였다는 것이다. 오 씨는 법정에서 두이분 여인과 경찰·검찰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항변한다. 두 여인은 1심 재판 도중에 자살했다. 오 씨는 1, 2, 3심에서 연달아 사형선고를 받아 형이 확정된다.

진실을 향한 집념
10년 후, 오 씨의 유언을 전해들은 趙甲濟 기자는 수십 명의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세월 속에 파묻힌 이 사건의 진상을 캐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드러난 수사와 재판의 적나라한 모습을 이 책에 담았다. 神의 법정에서 피고인석에 앉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조갑제 기자는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가 “한국의 가장 힘 있는 職群(직군)인 기자, 검사, 판사, 그리고 기자 지망생과 법률학도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책’”이어서 재출간을 결심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기자들에겐 심층취재의 방법론을, 법률가들에겐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행위’의 엄중함을, 모두에게 사실 확인의 한계와 어려움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책속으로 |

<억울하다는 유언을 남긴 오 씨가 교수대의 밧줄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는 동안 집행 참여자들은 사형장 건물 바깥 느티나무 밑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했다.
서울구치소 보안과장이 참여 검사에게 물었다.
“영감님, 오판 아닙니까?”
검사는 교무계장에게 “억울하다고 죽는 사형수가 많습니까?” 하고 물었다.
계장은 “아니오, 나로선 처음입니다”고 했다.
보안과장이 “상담할 때도 그랬어?” 하고 다시 물었다.
계장은 “그걸 모르셨어요? 오휘웅이는 안 죽인 것 같아요“ 라고 했다.
검사는 말없이 땅만 내려다보더라고 한다.>
이 순간엔 그 어떤 인간도 밧줄을 끊을 수 없다. 사형을 선고한 판사조차도. 제도가 구르면 멈출 수 없는 시간대가 있는 것이다.
-p15, 재출간에 붙이는 머리글

끔찍한 살인 현장을 본 사람들은 사형 存置論者(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집행을 목격한 사람들은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고 한다.
-p22, 1장 집행장에서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오 씨가 왜 좀 대차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느냐고 짜증을 부리는 것은, 16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주로 경찰서 출입을 했고, 한 번도 경찰이 두렵다는 것을 실감해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의 세상물정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에 수도검침원이란 직업을 가진 한 서민이 경찰, 검찰, 법원이란 막강한 조직과 부딪쳤을 때 느꼈을 공포감과 무력감을 모르고 내뱉는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p197~198, 4장 공판과 자살

필자에게는 지리멸렬의 극치로 보이는 이 말들이 오 씨에게 사형을 안겨줄 만큼 힘이 있었던 것은, 재판부가 그 말들을 ‘믿기로 했다는 점’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이 누구 말을 믿든지, 그것은 오 씨의 신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지만, 판사가 어느 쪽 말을 믿는가에 따라서는 인간의 생명이 죽고 산다.
-p213, 5장 재판장의 고민

자백이 어떻게 이뤄졌는가, 그 내용이 얼마나 엉터리고,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가에 대한 놀라운 무관심은, 상고심이 아무리 서류만으로의 판단이라 해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결핍으로밖에 설명되지 않을 것 같다.
-p266, 6장 사형 확정

오휘웅 씨 사건을 판단하는 상징적 낱말은 증언과 자백, 그리고 고문과 위증이다. 사형을 선고한 쪽의 논리는 공판정에 검찰 측이 증거로 제시한 증언과 자백이 신빙성 있다는 것이고, 피고인과 변호인 측의 주장은 고문과 위증에 의한 증언과 자백이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문, 증언, 자백은 이 사건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서 길잡이 구실을 하는 세 낱말이다. 이것은 또 한국 경찰 및 검찰의 수사 풍토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p342, 10장 고문과 자백

한 인간의 주관적 확신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재판의 본질은 중세 암흑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것은 그 확신에 도달하는 절차를, 현대에서는 형사소송법으로 엄격히 규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송절차야말로 인간이 오판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그 수많은 누명 썼던 사람들의 한과 피가 스며있는, 지혜의 보따리다. 고문, 국가권력의 전횡, 재량권의 남용으로 이 절차가 무시된다면, 아무리 20세기에 이뤄지는 재판이라도 그 본질은 중세 암흑기의 재판과 같아지고 만다.
-p428, 12장 법정의 진실과 형장의 진실

이렇게 절박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토해내는 絶句(절구)가 있다.
“하느님만은 아십니다.”
하느님이 아신다는 것은 영혼의 구원에 영향을 줄 뿐이지, 육신의 구원엔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나는 취재가 잘 안 풀려 답답해질 때마다, 가장 완벽한 증거인멸은 사형집행이라는 말의 뜻을 실감했다. “오 씨가 살아있다면 이 대목의 이 의문점을 풀어줄 텐데…”하고 안타까워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 씨는 그의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많은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생각해 보면, 한 인간이 죽음으로써만 자신의 무고함을 증거할 수 있는 사회는 얼마나 끔찍한 곳인가? 형장에서 진실이 드러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시화 씨와 그의 두 아이들, 그리고 오휘웅 씨의 명복을 빈다.
-p431~432, 12장 법정의 진실과 형장의 진실




| 차례 |

재판 머리글│가장 힘센 職群(직군)인 언론인과 법률가에게 바친다
초판 머리글│


1_ 집행장에서
2_ 경찰 수사
3_ 검찰 조사
4_ 공판과 자살
5_ 재판장의 고민
6_ 사형 확정
7_ 사형수의 神, 사형수의 法
8_ 항변과 저주
9_ 誤判(오판)의 조건
10_ 고문과 자백
11_ 하느님은 아신다
12_ 법정의 진실과 刑場(형장)의 진실

당돌한 도전의 기록―조갑제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_조영래 변호사
카틴 숲 학살사건과 ‘간첩’ 이수근과 조갑제 편집장_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趙甲濟(조갑제)


1945년 10월 일본에서 났다가 이듬해 고향인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학(현재의 釜慶大)에 들어가 2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 제대 후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경찰, 공해, 석유분야를 다루었는데 1974년 중금속 오염에 대한 추적 보도로 제7회 한국기자상(취재보도부문·한국기자협회 제정)을 받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현장 취재를 했다. 1980년 6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월간잡지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조선일보에 입사,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일했다.

저자가 <月刊朝鮮> 편집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月刊朝鮮>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보도로 1994년 관훈언론상(관훈클럽 제정)을 수상했고 ‘6·29 선언의 진실’ ‘12·12 사건-장군들의 육성 녹음테이프’ 등 많은 특종을 했다. 1996년부터 1년 간 국제 중견 언론인 연수기관인 하버드대학 부설 니만재단에서 연수를 했다. 2001년 월간조선이 조선일보사에서 分社하면서 (주)月刊朝鮮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석유사정 훤히 압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有故≫ ≪국가안전기획부≫ ≪軍部≫ ≪이제 우리도 무기를 들자≫ ≪朴正熙≫(전 13권)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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