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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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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4월에  " 아빠의 아버지" 410p 짜리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많은 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인기 포털이나 페이스북 검색창에 상위 랭크도 되고 심지어 "좋아요"1만5천개씩 받고 있습니다 쿠팡에도 마찬 가지 입니다 우리 회원방에 우리와 뜻을 함께 하시는분들이 많이 오셔서 저의 책을 연재해 드리겠습니다

 

내용은 자전적 에세이 이면서 에피소드나 유머 詩 같은것을 아주 재미 있고 쉽게 역었습니다

즐거운 시간들 되시고 가끔 격려의 말씀 부탁 드립니다

 

인사말씀 드리고 시작 하겠습니다

 

약관(弱冠)의 나이를 지나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소리를 들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망팔(望八)을 바라보는 나이에 누군들 뒤를 한 번쯤 돌아보면 감회가 새롭지 않겠는가?

 

세상에 태어나 생로병사(生老病死) 과정을 걷고 있는 동안 지금 내 인생의 계절이 어디쯤 와있는지 한 번쯤 뒤돌아보고 싶다. 오늘이 있기까지 산전(山戰), 수전(水戰), 공중전(空中戰)을 겪으며 살아왔다. 나라마다 지나온 역사가 있듯 내 인생의 행로 또한 드라마틱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호랑이는 태어나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번 태어나 족적은 남기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이런 자리를 빌려 엮어 본다. 지난 일들이 주머니나 바구니 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스물 스물한 기억들이 흩어지기 전 주섬주섬 찾아 퍼즐을 맞추고 정리해 본다.

 

자전적 의미의 일기 같은 글로 읽어 주시면 좋겠고, 중간에 혹시 신앙 이나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좌우의 경계를 살짝 넘을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입장에서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부끄러운 과거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기술하고 싶고 어쩌면 나의 독백이지만 회개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승현아, 네가 커서 철이 들 때쯤 이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고, 할아버지는 이런 분이셨구나 하며 우리가 만났던 좋은 추억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수정하고 잘 정리하여 인생을 알아 가는 너에게 선물하고 싶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었다.

 

두 분이 없어서 안 계신 게 아니라 오늘까지 내 입으로 엄마 아빠라고 단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이 그냥 아버지 어머니라고만 불렀다.

 

당시 친구들은 아버지를 아빠라 부르는 이가 없었고, 엄마를 엄마라고 하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친구도 없었다. 난 장남이었고 내 밑으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는데, 내가 자연히 어머니라고 부르니 동생들도 그렇게 따라 불렀다.

 

나를 포함한 이남 일녀의 삼 남매는 지금까지 만나도 오손도손 살갑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상시적인 이야기만 했지, 크게 웃고 떠들어 본 적도, 다투거나 싸워 본 적도 없다.

 

지금 생각하니 어릴 적 주변 환경에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어머니는 옛날부터 다른 여자들같이 수다를 떠는 것도 아니고 항상 현모양처 타입이다. 그때 유행하던 계 모임도 안 하시고, 오로지 교회와 집밖에 모르셨다. 정확한 시간을 정해서 식사를 준비하셨고 특히 아버지를 귀하게 섬기셨다.

 

내가 안 볼 때 싸우셨는지는 몰라도 우리 앞에서는 한 번도 큰 소리 낸 적이 없으셨고, 우리도 그렇게 책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우리가 잘하고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한 번도 꾸중하지는 않으셨다.

 

어머니는 정확한 분이셨고 한복을 입은 모습은 곱고 단아한 자태셨다. 남들이 참 고우세요 하면 즐거워하셨고 나도 그 부분에는 동의한다. 어머니는 교회와 시장과 집으로 일상생활을 쳇바퀴 돌듯이 하셨고 학교 다녀오면 항상 집에만 계셨지 어디 모임에도 교회 행사 외에는 다니시지 않으셨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려고 해도 멀미가 얼마나 심하신지 십 리도 못 가셨다. 항상 새벽 기도와 저녁 기도는 내가 기억하기엔 평생 한 번도 빠지신 적이 없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은 교회 부흥회만 있다고 하면 20리 길도 걸어서 다녀오시고 평생을 무릎 꿇고 기도하고 성경 보시는 게 그것이 인생의 기쁨이요 유일한 믿음이 낙이 셨던 분들이다.

 

저녁 9시만 되면 야들아 나 기도(祈禱) 한다하시며 우리를 2층 방으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형제자매 관계는 다른 이유와 성격의 문제들도 있겠지만 그런 기독교 집안의 환경과 어머니 성품의 영향 때문인 거 같다. 다른 집 아들같이 한방에서 뒹굴지도 않았고 각자 자기 방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그랬던 것 같다.

 

우리 사촌들도 마찬가지다. 명절 때 만나 산소 가서 추도 예배를 드리고 나면 그냥 각자 흩어진다. 다른 집은 제사 음식에 술과 돼지고기를 가져와서 마시며 웅성웅성하며 흉도 보고 이야기하며 정을 쌓는데 우리는 술도 안 먹고 말똥거리는 맨정신으로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나 보다.

 

, 남산동 어머니의 엄마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해방둥이로 태어났다.

 

당시엔 산부인과 병원도 없이 전부 그렇게 가정에서 출산했다. 당시는 남아 선호 사상이 있던 때라 집안의 맏이가 장남으로 태어나니 친척들도 구경 오고 집안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외갓집에는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이모님이 함께 살고 계셨고 나는 이모님과 나이 차가 10살이 났으니 처음 태어난 조카가 동생같이 귀여워 마리아 유치원이란 곳을 항상 데리고 다녔다.

 

유치원 다니고 두 달인가 되었을 때, 6·25 전쟁이 발발했고, 그로 인해 피난을 가게 되면서 유치원의 기억은 흑백 사진 한 장 남아 있는 게 전부다. 얼마 전 그 마리아 유치원에 가서 혹시 그 당시 자료라도 있나 교적부를 찾아보았지만 전쟁 통에 전부 소실되었다고 한다.

 

남아 있는 어릴 적 기억이라곤 피난 갈 때 아버지의 커다란 8호 자전거를 타고 가 낙동강에서 배를 기다리며 뒤에서 들려온 폭격 소리와 걷고 또 걸어서 경남 밀양까지 갔던 기억뿐이다. 피난길엔 사촌들과 함께한 대식구가 지낼 마땅한 처소가 없다 보니 피난민들과 뒤섞여 문간방 하나를 빌려 많은 식구가 함께했다.

 

한번은 잠자리를 잡는다고 혼자 집을 나간 지 하루가 지나고 우연히 길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나를 사촌이 발견하여 집으로 데리고 왔다고 하니 그때 미아가 되었다면 고아원 출신으로 오늘날 나의 일기장이 바뀌어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의 그리 길지는 않았던 피난 생활의 남아 있는 기억은 여기까지다.

 

난 초등학교는 다니지 않았고 국민학교를 다녔다. 대부분 사람들이 초등학교라고 말하지만 난 일부러 국민학교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명칭이 되기까지 소학교에서 보통학교를 거쳐 국민학교라 불리었고,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1996년부터는 지금의 초등학교로 불리게 되었다.

 

1954, 또래들보다 한 살 일찍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6·25 전쟁 후라 학교 시설이라고는 허름한 토담이 전부였고, 학급은 남녀 모두 합하여 두 반이 있었다. 교실엔 칠판도 없었고 바닥은 가마니를 깔고 앉았으며, 학생들 나이도 천차만별이라 많게는 6살까지 차이가 나는 학생도 있었다.

 

교실이 부족해 여기저기 다니며 이동 수업을 다녔고, 주로 남산 공원의 계단에 앉아 선생님은 밑에 서시고 우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수업을 들었다. 이북에서 피난 온 집의 학생들은 우리보다 덩치가 커서 그 친구들에게는 감히 아무도 대들지 못했다.

 

선생님은 우리를 귀여워하셨는데, 졸업 후 20년이 지나 스승의 날에 선생님을 모시고 보니 우리보다 엄청 큰 분 같았던 선생님과의 나이 차는 불과 11살이었다. 가끔 만남을 가졌지만 지금은 대구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치매를 앓고 요양원에 계시다니 마음이 아프다.

 

국민학교부터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할머니 어머니 다음 모태신앙 3대고, 내 아들이 4, 손자가 5대로 내려가는 신앙생활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난 국민학교 다닐 때는 아주 어리석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한번은 교회 크리스마스 발표회 때 노래를 부르다가 부끄러워 울고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두고두고 식구들로부터 심심하면 놀림을 받고 했다.

 

당시엔 학원이란 전혀 없었고, 공부하라는 사람도 없고, 그저 밤이 저물 때까지 동네 친구들과 모여 놀고 또 놀기만 했다.

 

놀이라고 해야 깡통차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막대치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여름은 미나리꽝 에서 잠자리 잡고, 겨울에는 외삼촌이 나무로 만들어 주신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고, 연도 날리고, 마당에서 대나무 바구니에 줄을 달아 모이를 주고 숨어서 새가 들어오면 줄을 당겨 참새도 잡고, 길가에 웅덩이를 만들어 위장한 뒤 사람들을 똥통 구덩이에 빠지게 하거나 지폐를 가느다란 철삿줄에 묶어 할머니들이 돈을 따라오게 해 골탕 먹이기도 하면서 해질녘까지 놀고 돌아다녔다.

스케이트를 타면서 얼음 구멍에 빠져 아랫도리가 꽁꽁 얼었지만, 모닥불에 가서 꽁꽁 언 손도 녹이고 옷도 말리고 그랬다. 외삼촌은 나에겐 맥가이버였다. 부탁만 하면 새 잡는 고무총이나 낚시 스케이트 등 각종 놀이 기구를 만들어 주셨다.

 

당시 여학생들은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놀았는데, 남학생들은 여학생 고무줄을 끊고 도망 다니는 것도 즐거운 놀이 축에 들어갔다. 정월 대보름 달불놀이를 한다며 깡통에 숯을 넣어 돌리며 저녁을 맞았고 그것을 말리는 어른들은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순진했나 하면, 저녁 먹을 시간에 어머니가 찾아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올 때까지도 깡통 차기는 계속되었고 순진한 술래는 집에도 못 가고 아직 숨어 있다가 놀이를 계속하기도 했다.

 

마땅한 놀이 기구나 장난감도 없고 전쟁 후라 곳곳에 탄흔들이 남아있고, 도로 여기저기는 포탄의 흔적으로 도로는 움푹 패어 웅덩이가 여기저기 많이 있었다.

 

길가에 버려진 총알이나 탄피들을 주워 가지고 철둑에 올라가 철길 위에 탄피를 올려놓고는 레일 위에 귀를 기울여 기차가 달려오는 찰칵 찰깍하는 소리를 듣고 나면 곧 기차가 지나가면서 철길에 올려둔 탄피는 납작해져 그것으로 칼을 만들어 놀곤 했다.

 

그때 친구 중 한 명은 냇가 위 철교에서 안타깝게 기차를 피하지 못하고 치여 희생된 학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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