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학산
- 2026.10.15 00:38 (조회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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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술에 취해 지금 막 집에 들어왔다 그러나 별로 즐겁지가 않다 통술집이 텅텅 비고, 술을 깨려고 통술집 거리를 5분 동안 걸었지만 택시 하나가 안 보인다 마주 오는 사람의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선 걷기가 힘들었던 그 거리가 태풍 전야 같이 인적이 없다
“글을 쓸 때는 그림을 그리듯 보여 주라.” –안톤 체호프-
자첨과 한유도 저런 말씀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런 말씀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술기운 탓에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좌우간 글을 쓰되 글을 쓰지 말고 그림을 그리라는 그런 말씀이었다 저런 글쓰기 이론은 알지만 나는 실천하지 못한다 명문이냐 졸문이냐의 차이가 실천력에 달려 있지 싶다 (자첨 子瞻; 소동파)
浩然의生覺 님이 저가 쓴 글에 댓글을 달아주었는데 이 글이다
“옛날 멋쟁이라 카마 그래도 바바리 깃을 세우고 옆구리에는 TIME 紙나 끼고 양담배 말보루 꼬나물고 명동 심지 다방이나 청자다방 기웃거려야 그래도 축에 들어가던 시절이었지요.”
저 문장이 60년대의 지식인이나 대학생들의 모습을 수채화로 그려서 보여 준다
위에서 소동파와 한유 등 대문장가를 논하고 술도 거론했다 나는 술을 꽃같이 좋아한다 유전성일 수 있다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술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소주 한 됫병을 사서 방 윗목에 두고 술 생각이 나면 한 잔 부어 마셨다 몇시간 뒤에 또 생각이 나면 또 한 잔만 마셨다 이렇게 마시니 하루종일 온전한 정신이면서도 취기 역시 갖는 것이다
어머니는 하루에 딱 한 잔만 마셨다 절대 한 잔 이상 안 마셨다 좋게 말하자면 자기관리를 잘하고 술을 절제할 줄 안 것이다 이를 심이자조(心而自操 마음을 스스로 잡는다)라 할 것이다 저런 면이 나에게도 유전되었는지 아니면 내가 보고 배웠는지, 나도 정해진 이상은 안 먹고 크게 취할 정도로 먹어본 적이 없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면 누가 뭐라든 말든 술자리에서 일어서서 집에 온다 오는 길에 지인을 만나더라도 내가 먼저 말을 안 하면 내가 취했다고는 생각조차 못한다 다만 자주 마신다 오늘로서 일주일째 마시고 있다 젊었을 땐 보름 동안 마시는 게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최대 일주일이다
나같은 사람이 알콜중독자일까?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다 의학에서 말하는 알콜중독자는 술에 취해서 물의를 일으키거나, 사고를 치거나, 재산을 탕진하거나, 다투거나 싸우거나, 식구를 괴롭히거나 하는 따위의 사람을 말한다 반면에 술을 먹고 풍류에 젖거나, 음풍농월하거나, 글을 쓰거나, 가족과 웃고 지내는 사람은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알콜중독자라곤 말하지 않는다 이 점을 일반인은 구별하지 않고 술만 자주 먹으면 그냥 알콜중독자로 쳐 버린다 경찰과 언론도 그런다 교통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음주했느냐 안 했느냐를 먼저 본다 음주를 했다면 무조건 가해자로 몰아 버린다 나도 일찍이 술을 먹고 운전한 적이 있었지만 근 50년 무사고 운전자이다 나의 손위 처남 자식은 나보다 딱 열살이 많다 이놈이 술을 잘 안 먹는데 어쩌다가 한번 마시면 집을 못찾아온다 나는 자주 마시지만 비틀 걸음 한번 안 했다 두 사람 중 누가 알콜중독자이겠나
술을 즐긴다고 해서 알콜중독자라 말할 양이면, 도연명이가 가장 심한 알콜중독자일 것이다 이태백과 두보는 말할 것도 없다 소동파도 마찬가지다 소동파는 술을 먹을 줄 몰랐다 그랬지만 술 먹는 분위기를 좋아해서 늘 술 먹는 자리를 찾곤 했다 도잠(도연명)은 비파를 탈 줄 몰랐다 그래도 술에 취하면 비파를 안고서 타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도잠은 줄 없는 비파를 가졌었다
그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시인이다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여 술과 국화를 벗 삼아 전원생활을 즐겼다 그의 작품 중에 아예 제목이 ‘음주(飮酒)인 20수가 유명하다 음주 제 5수의 한 문장,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노라.” 이 문장을 중국은 물론 조선의 시인묵객이 사랑하고 읊조리고 표절하곤 했다
이백은 중국 문학사에서 주선(酒仙) 곧 ‘술의 신’으로 불리는 대표적 시인이다 술에 취해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술을 사랑했다 술을 예찬하는 ‘월하독작’ 같은 명시를 남겼다 두보는 시성(詩聖)이나 시사(詩史)로 불렸다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백성들의 고통을 시에 사실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그의 시 자체가 '시로 쓴 역사'라는 찬사를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송강 정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임금이 그의 건강을 염려해 “하루에 딱 한 잔만 마시라”며 은잔을 내렸다 송강은 그 은잔을 얇게 두드려 넓고 크게 펴서 가득 채워 마셨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술 권하는 가사인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지었다 그 시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실렸었다 그때 나는 꽤 긴 저 시를 외웠었다 “한 잔 먹새그려, 또 한 잔 먹새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새그려”로 시작되는 장진주사가, 미래의 술꾼인 고교 3학년에게도 매력으로 다가 왔던 것이다
김삿갓과 임제는 또 어떠한가 임제는 조선 최고의 풍류남아로 불렸고〈황진이 무덤을 지나며〉란 시를 남겼다 이 시를 지었다가 조정에서 “정무는 돌보지 않고 기생을 추모했다”는 비판을 받아 파직 당했다
끝으로, 나는 아래의 글을 통해 한유를 처음 만났고, 읽자마자 그를 숭신하게 되었다
“만물은 평정을 잃으면 운다
초목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흔들어서 울고
물도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쳐서 운다
...................
새는 봄을 울고
천둥은 여름을 울며
벌레는 가을을
바람은 겨울을 운다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
위대한 문장가요 사상가며 술꾼인 저런 분들이 술에 취해서 생산한 것을, 우리는 읽고 배우고 외운다 그리고 교양의 표본으로 삼는다 조갑제 선생님은 ”인간의 교양은 문사철(文史哲)에서 온다.“고 설파했다 물론 나는 저분들과 같은 대문호도, 사상가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름다운 족적은 따르려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술이 다 깨버렸다 그래선지 글이 나아가지 않는다 내일도 취해서 들어오면 이어서 쓰겠다 술에 취해 들어와서 글을 쓰느라 술이 확 깨버리는 이런 사람을 알콜중독자로 바라보는 세상이 도리어 어둠에 취한 세상 아니겠나
술을 마신다고 다 알콜중독자라면, 인류 문화유산의 절반은 중독자들이 만든 쓰레기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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