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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선배는 잘 사는지
  • 무학산
  • 2026.10.20  04:52 (조회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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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다《'의사 복서' 서려경, 세계 챔피언 등극》

 

여자 의사 선생이 기어이 큰일을 해냈구나. 구경꾼도 기쁘다 축하한다

 

저 의사 복싱인이 몇 해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한다 “참피온이 되면 권투를 그만 두겠다.”였다 그래서 내가 참피온이 되면 그만두겠다고 말해서야 어찌 참피온이 되겠나 참피온이 되어서 오랫동안 왕좌를 지키겠다는 각오여도 될동말동 하는 데 말이다 하면서 권투인답지 않은 자세를 나무란 글을 여기에 써올렸었다 이제 참피온이 되었으니 저가 사과드립니다 미안합니다 오늘의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복싱은 부상 위험이 큰 종목이라 챔피언이 되기 전까지는 주변에서 ‘그만하라’는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서려경은 “(지인들은)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말씀을 주셨지만, 사실 저는 열심히 훈련하는데 사기가 꺾일 정도로 많이 들었다”며 “그럴 때마다 체육관에서 가서 묵묵히 운동을 했는데 결실을 맺었다”고 했다.“

 

여자 의사가 얼굴도 예쁘면서 복싱을 한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나는 격려하는 글도 여기에 써올렸었다 여자에게 ‘얼굴’은 전부이다고 말할 수 있는데 얼굴 부상 위험을 각오하고서 챔피언이 됐으니 더욱 영웅다워 보인다 진정한 참피온의 모습이다

 

남의 잔치이지만 이 틈에 내 이야기도 좀 하겠다

 

먼저, 복싱인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 주위의 선배들은 60살을 못 산 사람이 태반이다 술을 먹고 한 번 비틀거릴 때 뇌세포가 여러 개 죽는다는 숫자를 알았는데 잊었다 작은 비틀거림에도 그러한데 수십 톤의 타격이 가해지는 펀치를 얼굴에 맞고서 어떻게 오래 살겠는가

 

다음, 복싱을 한 사람치고 얼굴 성한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그렇다 코가 희어져 있다 육안으로 보면 단박에 알아보지 못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대번에 표시가 난다 왼쪽이 약간 주저앉았고 굽었다 라이트훅을 많이 맞은 흔적일 것이다 아는 의사에게 일없이 한 번 보였더니 이런 말을 했다

 

"코가 일시에 주저앉거나 희어지면 간단하게 바로 잡지만 서서히 변형된 코는 코뼈를 부수고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럴 각오가 없고 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그냥 두는 게 낫다.” 그래서 고치지 않는다

 

어릴 때 선배 한 명이 스파링 도중에 코가 내려앉는 사람을 보았다 서둘러 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가 긴 침을 코에 넣어 톡톡 일으키니 코가 바로 섰다 그러는 동안 선배는 아파 죽는다고 소리쳤다

 

코를 맞으면 코가 주저앉는 사람도 있고 도리어 커지는 사람도 있다 선배 중의 한 명은 코가 자꾸 커지는 바람에 권투를 그만둔 사람도 있었는데 그의 별명이 코보였다

 

창원에서 마산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와서 권투를 하는 벙어리가 있었다 이 사람은 양쪽 귀가 쭈그려졌다 쭈구렁탱이가 된 귀를 고치겠다며 연탄불에 돌멩이를 구워서 귀에 갖다 대곤 했다 창원에 사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니 그 벙어리가 동네 아이들을 시켜서 돌을 구워오게 한다는 것이었다 창원에 극장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가 그 극장의 기도를 했다 (기도는 일본어인데 극장이나 유흥업소 따위의 출입구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때는 공짜배기로 들어 가겠다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라 주먹 쓰는 사람이 기도를 했었다)

 

세월이 20여 년 흐른 후, 처음으로 '경남 복싱인의 밤’을 호텔에서 개최하여 선,후배와 동료들의 만남 기회를 만들었다 이 모임에 저 벙어리 선배가 참석했다 그가 어렸던 나를 단박에 알아보고 어찌나 반가워 하던지...정상인보다 감정이 더 많고 진실한가 싶었다

 

그가 무슨 말인가를 많이 하는데 내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통역을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남이 안 하는 이런 일을 너는 하리라 나는 알았다.”라 말한다고 했다 격한 감정이 일어 모임이 끝나고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 특별히 모셔서 보내드렸다 그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복싱인의 얼굴 부상이란 말을 들으면 저 벙어리 선배가 먼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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