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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재일교포(북한)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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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낙원의 꿈은 깨어지고>를 64년 만에 재판하게 된 사유(2)

결론부터 말하면 가장 풍요하고 자유로운 일본에서 가장 최근에 왔기 때문이다. 한편 공산화가 완성한 시기로서 가장 가난해진 때 찾아왔기 때문이다.

북한에 들어온 이들은 크게 네 부류이다. 남한에서 온 남 출신(월북자), 중국에서 온 재중동포(조선족), 소련에서 온 고려인, 그리고 일본에서 온 재일교포들이다. 이중에서 가장 많은 수는 남 출신(월북자)약 35만 명이다.(* 월남자는 85만 명). 남 출신들의 월북 행렬은 1953년 정전을 계기로 끊어졌다. 그 다음 많이 북한에 들어간 이들은 재일교포이다. 이들은 가장 늦게, 오래 지속된 것으로서 그 수는 1959년부터 1984년까지 근 10만 명이다. 재중동포와 고려인 수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단지 남 출신, 재일 교포 보다 적어 보인다.

재중동포들의 귀국은 1957년 대약진과 1966-1976년 문화대혁명시기 절정에 이르렀다. 문화 대혁명이 끝나는 후로는 다시 돌아 간 이들도 상당하다. 고려인들은 815 해방 후 북한 공산 정권을 세우기 위해 약 500명의 소련 공민 신분 엘리트들이 파견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토사구팽 당하듯 숙청과 불만으로 대부분 소련으로 귀환하였다.

사할린 출신 최화순(1940년 생) 증언에 의하면 1959년 나호드까 북한 영사관의 조국 건설 호소로 고려인들이 북한에 갔다고 한다. 그 숫자와 지속 기간은 잘 모른다. 단지 엄근대 라는 분은 소련 국적자로서 5년 간 북한 체류 계약이 끝나자 돌아왔다. 소련 국적자가 아닌 양택부와 기타 한 명은 동상을 입으면서 탈북하여 사할린에 돌아왔다고 한다. 일치하게 소련보다 북한 생활이 너무 열악하였다고 증언한다.

최화순 자신은 소련 국적자로서 당시 19살이었는데 조국 건설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국적을 취득한 고려인들이 김일성 우상화 사상 학습이 진행되자 이것이 싫어 탈퇴하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아무튼 특이한 점은 고려인들의 귀국시기가 재일동포들과 일치한다는 것이다(1959년). 노동력 확보를 위한 북한 당국의 의도였다는 것을 재 확인된다. 고려인들의 귀국은 1960년대 초반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재일교포들은 가장 최근 유일하게 적국 자본주의 나라에서 왔다. 북한에서 이는 계급 투쟁의 제일 대상이다. 그들이 조국이 그리워 찾아왔다는 것은 이 계급투쟁에서 그리 용서의 대상이 안되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자기자신도 믿지말라는 비밀경찰(정치보위부) 사회이기에 이들은 제일 먹이감이 되었다. 풍요하고 자유로운 일본에서 살다 왔기에 불평이 많고 자유분망한 말과 행동은 제일 먹이감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한편 사회적 왕따의 대상이었다. 항일의 권위로 유일 수령이 된 김일성 나라에서 재일교포들은 특별히 일본놈 같은 대상이었다. 또한 일본에서 가져온 물건과 친인척의 도움으로 상대적으로 부자인 이들은 질투의 대상이었다. 못살아도 똑같이 못살아야 마음이 편한 부정의 공산 사회이기에 이들은 눈에 거슬리는 부르죠아 대상이었다. 이것은 마치 유럽에서 유태인을 미워하고 따돌리는 정서와 흡사하다.
필자 역시 학생 때 공부 잘하는 재일 교포(오사까 출신 문영철)와 딱 친구이기는 했지만 그 여동생들을 결혼 대상으로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였으니 그만큼 재일교포는 일본을 상징하는 <쪽바리>, <째포>로 왕따하였다. 일본에서의 차별이 싫어 어머니 조국이라고 찾아온 재일교포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들 고향은 대부분 남한 출신들이니 더욱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재일동포 귀국자들이 겪는 고통은 정치적인 면에서와 함께 경제적인 면에서도 가장 컸다. 휴지 같은 초보적인 생필품 부족, 항상 배고푼 식량 부족, 고된 노동에 익숙하지 않은 고통은 자살하고 싶을 정도였을 것이다.

한 실례를 든다. 1972년 치바현에서 온 송명철 친구가 있었다. 그의 누나는 필자와 전문 대학 동창이었다. 살결이 백인 같은 미인이다. 하지만 누구나 거치는 군사 과정인 교도대 생활을 종래 버티지 못한다. 에누리 없는 교도 과정이지만 거의 죽게 되어 퇴소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 현지 학생들은 모두 견디는데 유일하게 못 견딜 만큼 재일 교포들은 고통이 크다는 확증이다.

재일동포 귀국자들이 특별히 큰 고통이 된 것은 북한이 가장 빈곤하여졌을 때 찾아왔다는 것이다. 가장 빈곤한 때는사유제를 폐지 하고 공산화되었을 때이다. 1958년에 이룩된 사유제의 완전한 폐지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자른 것이다. 겉으로 볼때에는 남한보다 먼저 트렉터와 자동차를 첫 생산한 국가적 발전상으로 요란하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말할 수 없는 빈곤이 도사리고 있다. 사유로 이루어지는 초보적 생필품, 채소마저 사라진 것이다. 생산은 고사하고 있는 것까지 다 파괴적으로 없어지게 하였다.
그 실례는 공산권에서 잘 보여준다.
소련에서 사유제 폐지는 1930년대, 그 후과로 이미 있던 가축들이 사라진다.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다 빼앗긴다!. 축력(소, 말)숫자는 급격히 감소되어 여성들이 보습을 끌어 땅을 갈아야 하니 생산량 감소는 불 보듯 한 것이다. 이때 줄어든 가축 수의 회복은 2차 대전이 끝난 1950대 즉 20년 후에야 이루어질 정도였다. 농업에서도 그렇지만 생필품을 생산하는 가내 공업도 죽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올리는 쾌거의 요란함 뒷면에는 화장지도 부족하다는 소리가 이 소리이다. 광활한 농지와 자원을 가진 소련이 이 정도인데 산이 80%이상인 작은 나라 북한에서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1950년대 말 북한의 사유제 폐지의 후과는 장학수 체험기로 잘 묘사된다. 장학수는 남한 출신으로 월북하여 무선 선박 기술 발명으로 남일 교육상의 추천으로 소련에 유학하고 돌아온다. 그의 저서 <붉은 별 아래 청춘을 묻고>257 폐지, <농촌 집단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을 때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이 장터에 마구 쏟아져 나왔고, 고기 값이 뚝뚝 떨어져, 거의 한 달 동안 우리는 아주 헐 값으로 많이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고기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소련에서의 농업집단화 과정과 똑 같은 현상이었다.>
황해도 서흥군 출신의 필자의 어머니 서경순(1938년 생) - 농업 집단화가 되자 자기 밭 변두리 대추나무들을 화목감으로 찍어 없앴다고 한다. 이런 판에 내 것이 되지 않을 모든 물건, 가축이 남아 나질 않게 된다.
이러한 후과가 지속되는 과정인 1959년부터 재일 교포들의 귀국 사업이 시작되었다. 장벽을 쌓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공산권에서는 대탈출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이곳에서 만은 거꾸로 인 것이다.
당시 일본은 625 한국전쟁 특수로 인하여 고도 성장기에 있었다. 실업은 1 내지 2%로서 완전 고용 상태, 하루가 모르게 발전하여 제 2의 경제 대국에 진입하기 전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재일 교포들의 이른바 귀국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자유로운 곳에서 가장 억압된 곳으로 향했다. 가장 풍요한 곳에서 가장 바싹 바른 곳으로 간 것이다. 그것도 지상낙원이란 꿈을 안고 갔기에 충격은 누구보다 컸던 것이다.

이 암흑 같은 때에 진실의 빛이 있었다. 그것이 북한 방문기인 <낙원의 꿈은 사라지고>이다. 바로 북송 시초인 1960년 8월 방문기 이다. 이 책은 바로 골동품 가치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골동품과의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책을 제때에 제대로 전파되었더라면 수많은 재일 동포 귀국자들의 고통은 사라졌을 것이다. 마침 반공을 국시로 한 516 남한 정권이 탄생하였기에 이 만큼 좋은 반공 자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에 너무 아쉬웠다. 오히려 진실을 말한 저자가 궁지에 몰려있었다. 저자는 뇌출혈이 올 정도로 외부의 압박과 가족과도 결별 당하는 외로움에 있었다. 또 책 자체가 초판으로 끝났고 그 남아 절판 상태임에 더욱 아쉬웠다.

아쉽기 짝이 없어도 지나간 것은 지나 간 것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그래서 재판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중요성은 현재도 유효하다. 아니 지난날보다 더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66년 전의 북한이 저 정도였는데 지금도 변함없고 오히려 더더욱 나빠진 것이기 때문이다.
골동품 같은 이 책 제목을 알게 된 것은 재일교포 출신 박영숙 여사의 딸인 탈북자로서 첫 법무사 임윤미를 통해서이다. 필자가 운영하는 <남북 지식인 플렛폼> 톡방에 알게 된 임윤미에 의하면 - 재일교포 출신 어머니가 64년이 지난 이 책을 또렷히 기억하고 계셨다고 한다. 마침 이 책의 저자 오귀성이 있는 히로시마에 살았다고 한다. 조총련에 속하지 않아 객관적 귀국 정보를 알게 된다. 이미 북송된 귀국자들의 편지 등을 통해서이다.
그러기에 부모 형제 온 가족이 귀국하는 분위기였지만 가지 않으려고 가출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예상은 오귀성의 책을 통해 더욱 확신하게 된다. 그 만큼 진실이 담긴 책으로서의 위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30년대의 영국 반공작가 조지오웰의 한국판인 것이다.

하지만 박영숙 여사는 놀랍게도 종래 북한으로 간다. 부모 형제가 다 떠나가 홀로 남은 20살 처녀로서 고독은 자살할 정도였다. 마침 지나던 사람의 구제로 살아났다. 궁여지책으로 부모님과 형제가 있는 북한으로 가는 것이 사는 길처럼 보였다. 마침 막내딸인 자신을 가장 이뻐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이라니 도리를 지켜드려야 했다. 열악한 북한임을 책 보고확신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 그래도 부모 형제가 있는 곳이니 살 맛이 있겠지 하는 감성이 이성을 이긴 것이다.

열악한 북한임을 각오는 하였지만 정작 가보니 상상을 초월하였다. 냄새부터 역겨워 죽을 맛이었다. 목욕을 못하는 북한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 된장인지 인분인지 모를 정도의 식품에서 나는 냄새로 인하여 한동안 밥을 먹을 수 없었다 한다.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나 수영장에 수영복을 입고 나가면 모두 구경거리로 쳐다본다.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나 수영복 차림을 천상 볼 수 없는 북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대로 결혼하여 아이 셋을 낳고 살았다. 하지만 경제 문화적 낙후보다 훨씬 무서운 정치가 가정을 난도질한다. 불행은 둘째 오빠에게 먼저 닥친다. 일제시대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다닌 수재임이 북한에서는 간첩으로 의심받아 한순간 끌려가 사라진다. 이것이 부당하다고 말했다고 셋째 오빠도 끌려가 사망한다.

불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첫째 아들이 그다음은 둘째 아들 마저 즉 아들 모두 황당한 이유로 감옥에 끌어간다. 면허 가서 만난 아들은 <엄마! 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럼에도 옥사 당한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가슴에 묻는다고 이 충격으로 남편마저 병사한다. 자신도 죽고 싶었으나 남은 딸 하나 때문에 죽지 못해 하다 탈북한다.

이 불행은 수많은 북송 재일교포들의 단면이다. 지상낙원, 어머니 조국이라 믿고 찾아간 이들에게 원한을 끼친 북한정권은 아직도 존재한다. 평화시 자국민 300만명을 아사시키면서 핵과 미사일로 평화를 교란하면서 말이다. 이런 정권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의지로 66년 전 오귀성 재일교포가 북한방문기로 나선 것이다. 오귀성의 이런 용기와 의지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재판하려는 것이다.

이 소중한 책이 있었음을 알게 해준 박영숙 재일교포 탈북인 여사께 감사하다. 아신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지만 그 한을 풀어드리려 이 책을 재판하려 한다.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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