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시 독수리에 꼼짝 못하던 암탉이 병아리를 거느렸을 때는 덤벼든다. 이를 보고 모성 본능은 위대하다고 한다. 맞다. 하지만 언제나 그럴까.

1918년 사막같이 뜨거운 암석투성이의 카프카즈 준령 길이다. 수만 명이 뱀꼬리마냥 수 킬로미터 늘어서 몇 날 며칠이고 흘러간다. 그루지아(조지아) 현지인들의 반란으로 러시아 군민이 피난하게 된다.

성성한 사람도 쓰러질 판에 부상병들은 그냥 놔두고 떠나간다. 이는 그 정교한 독일군도 독소 전쟁시 그랬다(한 독일 병사의 수기). 군대가 이 정도이니 사민들은 더 심각했다. 아이들을 태운 마차의 말이 지쳐 쓰러진다.

생기는 대로 낳던 시기이라 다섯 이상의 아이들이 마차 위에 있었다. 그중 걸을 수 있는 아이만 데리고 떠나는 부모들, 누구도 그때 우는 이도 찾는 이도 없다. 아니 그럴 힘이 모두 없는 것이다. 해가 질 무렵에야 수레에 남겨진 아이들은 아빠 엄마가 다시 오지 않음을 실감하고 목놓아 운다. 그마저 목이 쉬어 가느다래지더니 조용히 죽어간다.

한편 부모들도 밤이 되어 좀 쉬고 나니 마차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이 난다. <따냐 야!, 빠웰 아!> 하며 몸부림친다. 그렇다고 찾으러 갈 수도 없는 엄혹한 현실. 모성 본능·부성 본능도 힘이 좀 있을 때만 작동하는 피난길이다.
(소련 작가 쎄라비모비치 1924년 작 <철의 흐름>, 이는 1967년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비극은 1918년 소련 공민 전쟁 시의 러시아 사람들만 그랬을까. 가까운 친지 어머니는 6·25 전쟁 때 이런 회상을 들려주었다(김동옥 현재 95세).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판에 남자들은 닥치는 대로 여자를 끌어안는다. 죽기 전에 씨 남기려는 본능의 힘을 당할 수 없는 여자들은 그 난리판에 임신되어 아이를 낳게 된다.

겨우 탄 피난길 기차 위에 맨몸도 가누기 힘들고 그 앞날도 그렇다. 아이 엄마 하나가 그런다. 이거 집어 던질까. 그러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던져 버린다. 그리고 몸에 힘이 좀 생길 때이면 가슴속 어디에선가 치밀어 오르는 죄책감으로 통곡하다 미치는 이들도 있었다.

미국 첫 여성으로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의 <대지>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중국 국공 내전으로 자기 한 몸도 가누기 어려울 때 부인이 해산을 한다. 그런데 사산을 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죽은 아이를 보니 목 졸라 죽인 흔적이 있다. 그래도 모르는 체한다. 저 아이가 살아도 키울 수가 없어 죽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죽은 아이를 묻으려니 굶주린 개들이 노려본다. 아무리 쫓아도 눈독을 들이고 가지를 않는다. 힘이 진하여 얕게 묻은 아이를 물어가는 개를 이길 수 없었다.

위의 모든 비극들은 전쟁 같은 난리 속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전쟁이 아닌 북한에서 일어난 비극은 이보다 더 비참했다. 아이를 버릴 정도가 아니라 잡아먹었다는 실례는 너무 많다. 여기에 한 줄이라도 적자니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아 생략하련다.

2025.01 28 이민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