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설)을 보름 가량 앞두고 중국에선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톱 뉴스가 떴다. 중국의 주석 호금도가 97세의 과학원로 전학삼(錢學森)의 병상을 찾아 진심에서 우러난 세배를 올린 미담(美談)은 일부 국내 신문에도 소개되었다. 해마다 중국의 주석과 총리는 설날 또는 발걸음도 잘 떼지 못하는 과학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생일에 이 국가의 어르신들을 찾아 뵙는다. 그들은 천하를 통일한 유방이 고향 패현의 부로(父老)를 찾아  뵌 것보다 더 자주 이들 국가 원로를 찾아 뵙는다. 놀랍게도 한국인이 공산독재 국가로 낮추어 보는 중국의 주석과 총리는 재임 중에는 고향을 찾아가는 일이 없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공손하게 부모님 이상으로 과학원로를 공대한다. 올해는 명예와 부가 보장된 미국 생활을 접고 지지리도 못 사는 고국으로 돌아가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탄과 수소폭탄, 인공위성)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한 전학삼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국가 원수보다 수십 배의 권력과 권위를 가진 공산 국가의 주석이 오체투지하듯 몸을 낮춰 89세의 원로 수학자 오문준(吳文俊)도 찾아 뵈었다. 기술의 기초가 과학이라면 과학의 기초는 수학임을 백 마디 미사여구보다 그렇게 행동으로 세계최강 미국의 국가 원수에게도 숙이지 않는 고개를, 우리나라 같으면 탑골공원에도 못 가고 뒷방에 누워서 저승사자가 부르기만을 짓무른 눈으로 바라고 있을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에게, 깊숙이 숙이는 모습을 중국의 국가 원수가 13억 국민에게 몸소 보여 준 것이다.  

 이보다 약 일주일 전, 한국의 들뜬 신문과 방송은 '작은 정부'에 대한 인수위의 계획을 다투어 톱 뉴스로 보도했다. 분석과 해설도 폭죽을 터뜨리듯 요란했고 꽃가루를 뿌리듯 찬란했다. '작은 정부'에 대한 공감대는 국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거기 놀랍게도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폐지한다는 안이 들어 있었다. 만약 중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날로 인수위가 해체되었을 것이다. 더욱 놀랍게도! 분단고착부로 전락한 듯한 통일부와 페미니즘 우상화의 비너스 신전으로 비상한 듯한 여성부에 대한 말은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오르내렸지만,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에 대한 말은 신문이든 방송이든 침묵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큰 키와 작은 몸무게로 군 면제받은 한 청년에 대한 특집방송과 기획보도가 1년 내내 계속되기도 하고, 도롱뇽 몇 마리에 대한 자비심 때문에 비공식적인 단식 세계기록을 세운 한 비구니에 대한 줄기찬 추적방송과 선정(煽情)보도가 국민을 네 편 내 편으로 쫙 가르기도 하고, 불법은 아니지만 법망을 살살 피한 한 기업의 편법 상속에 대한, 매출의 80%를 외국에서 올리는 그 기업의 상속에 대한 '침튀김'방송과 '쌍칼'보도가 10년을 계속하기도 하는 은근과 끈기와 소신의 나라에서, 어찌 선진조국의 알파요 베타이고, 선진강국의 기역이요 니은이고, 아시아 지도국의 첫째요 둘째인 과학기술에 대한 철퇴내림에 대해 이리도 조용한지 모르겠다. 그 흔한 사설, 그 넘치는 칼럼이 이명박의 신문에도 노무현의 신문에도 이를 주제로 하여서는 하나도 실리지 않는다. 방송이야 권력자만 바뀌면 어제까지 한 일은 깡그리 잊으니 애초에 기대도 않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정말 '나쁜 신문이요 나쁜 방송'이다.

 예산 규모 2위인 교육부보다 예산이 두 배가 넘는 보건복지부를 둘로 나누어 보건 부문은 음식과 질병의 밀접한 관계를 고려하여 농수산식품부로 복지 부문은 육체와 정신의 웰빙을 함께 고려하여 문화부로 보낼 수 있을까. 또는 법무부를 경찰업무와 통합하기 위해 행정안전부로 옮길 수 있을까. 

 과학기술을 둘로 쪼개어 과학은 교육과학부로 기술은 지식경제부로 옮기면 작은 정부가 되고 세계 7대 선진강국이 되는가. 과연 그런가! 선진국에서 한물 간 기술을 베껴 먹던 시절에도 과학과 기술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하나로 묶어 선진국으로부터 갖은 설움을 받아가며 18년 국가 원수가 팍팍 밀어 주어 발전시킨 결과, 그를 토대로 하여 이제 로열티도 1년에 40억 불을 주기만 할 아니라 20억 불을 받기도 하는데,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로열티 무역을 역전시킬 수도 있는데,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이 일란성 쌍둥이 같아야 하는 선진강국을 눈앞에 두고 한 칼에 둘로 갈라 부모(장관)도 없이, 대한민국에서 외국박사가 제일 많은 곳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목소리 약한 비정치적인 분들에게 본인의 의사 한 번 물어 보지도 않고 선거의 전쟁에서 버려진 전쟁 고아라도 되는 양 덜컥 따로 따로 입양해 버린단 말인가. 누구 마음대로! 무슨 자격으로!

 우리나라보다 개혁개방이 17년 늦은 중국도 오래 전부터 과학과 기술만이 아니라 수학도 한데 묶어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앞장서서 장려하고 격려하고 지원하는데, 수학은 고등학교 때 '정석'만 풀면 되는 줄 알고, 이제 과학기술마저 둘로 갈라 이산가족을 만들어 버리겠다고 크나큰 기대를 안고 탄생한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가 자신들이 그렇게 욕하던 점령군의 권력으로 서슬 퍼런 칼을 휘두르고 있다.  

 머잖아(5년은 순식간) 정권이 바뀌면, 새 정권은 좌우 성향을 가리지 않고 제일 먼저 할 일이 과학기술부와,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에는 앞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정보통신부를 부활시킬 것이다. 그런 세월을 거꾸로 가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는 말없는 두 충신의 귀양살이 계획을 또는 두 미래 성장동력의 눈치 밥 먹이기 기획을 중단하기 바란다. 역사를 입에 올리기는 쉽지만 막상 역사의 물줄기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으면 그 역사의 흐름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것이 바로 권력의 마력이다.   

 지금부터 500여년 전에 한 영명한 왕이 미신과 아집과 위선에 가득 찬 삼천리 금수강산에 어떻게 당시 기준으로 세계최고의 과학기술을 진작시켰는지, 그가 왜 대왕의 칭호를 받고 멀리 폴란드에까지 그의 이름을 딴 고등학교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는 머리도 식힐 겸 주말에 9시 40분의 한 드라마를 보며 또박또박 메모를 하며 배우기 바란다. '우생순'이 눈물샘을 자극한다면, '과학기술 대왕'은 아편의 열 배 스무 배 되는 천연 아편(PEA)을 분비시켜 줄 것이다.   

                   (2008.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