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더라도, 일단 묻어두고 문재인 정권 타도라는 공동의 우선적 목표 달성을 위해 보수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


내가 아는 부산 사람 한 분은 문재인을 문재앙이라고 부른다. 나라 망치려고 대통령 된 놈이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탈원전부터 소득주도성장 그리고 이번 코로나 방역실패까지 지난 3년간 나라 망하게 할 짓만 골라서 해왔다고 분노한다. 부인이 공무원인데 남편 무서워서(?) 집에서도 문재인 두둔하는 말을 못한다고 한다.(본인 표현을 빌리면)

근데 특이한 건 이 분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에 대해 이 양반은 탄핵을 이해하는 입장이다. 쉽게 말하면, 박근혜는 탄핵당해 마땅하지만, 문재인은 그보다 더 못하니까 탄핵을 열 번 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는 최순실, 세월호 그 정도 (사소한 일로) 탄핵까지 당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못하고 있는 문재인은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해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이 분은 탄핵에 찬성했던 유승민, 김무성 등 배신자들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입장이다.

보수 우익이라고 해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태극기 세력이나 저를 포함한 여기 조갑제닷컴 회원님들은 원칙에 충실한 강경보수라면 중도 보수도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중도 보수표까지 모두 끌어와서 범 보수표를 다 합해야 좌파 후보를 겨우 이길 수 있다는 점이다.

레닌이 자신을 따르는 급진파(볼셰비키)만으로 러시아 혁명을 할 수 있었겠나? 제정(帝政) 러시아의 차르(tsar)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해 온건파인 멘셰비키와 연합한 것은 전술적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모두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필수적이라고 간주하고 사적 유물론을 따른다는 점에서 교집합(交集合)을 만든 것처럼, 현재의 한국 정치에서 문재인 정권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점에서 우파 보수와 중도 보수가 교집합을 형성해야 한다.

혁명 노선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지만, 차르체제 타도라는 우선적인 목표 앞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內 좌파가 연합했던 것처럼, 탄핵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더라도, 일단 묻어두고 문재인 정권 타도라는 공동의 우선적 목표 달성을 위해 보수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

김형오 공천위에서 공천한 사람 중 일부에 대해 탄핵에 찬성했던 사람을 공천했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컷오프(CUT OFF)당한 사람들 중에서도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렇지만 부산 사는 지방 사람이라서 정치판의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른다. 자기 사람 심기를 한다느니 정실 공천을 한다는 소리도 들리는데 김형오 위원장은 이런 구설(口舌)이 안나오게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탄핵에 찬성했던 사람을 공천했다고 해서 그 결과를 부정하거나, 그래서 4월 15일 기권하겠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 보수애국 시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투표날 기권하는 보수(성향 유권자)는 문재인이 제일 좋아하는 보수이고, 투표장에 가서 당선 가능성 무시하고 아무한테나 소신(?)투표하는 사람은 문재인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보수 유권자이다. 탄핵에 찬성했지만 그 사람을 공천했다면 지지율 조사결과 등을 감안해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아직은 중도 유권자도 상당히 많다는 현실적인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학교 다닐 때 유도를 하다 발목을 다쳤는데, 병원에서 치료받은 건 이틀이었지만, 다시 도장으로 돌아가서 운동을 시작하기까지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4년 전 예상외의 총선참패와 이어진 탄핵으로 한국의 보수세력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그렇게 왕창 망했는데 그게 금방 복구가 되겠나?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조급함을 버리고 현실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은 탄핵에 찬성했느냐 반대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 후보를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오직 문재인 정권 심판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