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자의 초라함>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쪼그라든 초라한 구십대 노인이 부축을 받으면서 법정으로 들어가는 작은 사진이 보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치매노인이라고 했다. 얼마 전 그와 군대 생활을 같이 한 친구인 분을 만났었다. 모임에서 사람을 보면 누구냐고 수없이 묻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두뇌에 새로운 인물이 입력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그는 군사반란죄로 법정에 섰었다. 나는 그 법정의 방청객으로 하루종일 열렸던 삼십 번의 재판을 빠짐없이 지켜봤다. 검사가 전두환에게 물었다.

“일개 육군 소장이 참모총장이자 막강한 계엄사령관을 연행할 때 다른 보신책을 강구해 놓았죠?”
“검사님은 수사 상대방이 자기보다 강할 때 보신책을 강구하면서 수사합니까? 전 원래 머리가 나빠서 보신책 같은 건 착안하지 못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용감하게 덤빈 거 아닙니까?”

그걸 보면서 나는 옛 왕조시대의 반란을 떠올렸다. 장수 하나가 소수의 군사를 이끌고 궁(宮)으로 들어가 뒤엎어 버렸다. 그 다음은 벌벌 떠는 왕을 처리했다. 갈아 치울 수도 있고 삼국지의 조조처럼 껍데기 왕을 내세우고 실권자가 될 수도 있었다. 소수의 공수부대가 육본과 국방부를 치고 노태우의 부대가 중앙청을 장악했었다.

“최규하 대통령에게 하야 성명을 8월15일 하지 말고 다음날인 8월16일 하라고 했다면서요? 왜 그랬죠?”
“광복절은 경축일 아닙니까? 좋은 날 내려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그렇게 한 겁니다.”

“최규하 대통령에게 돈을 줬다면서요? 그리고 대통령이 된 거죠?”
검사가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뭐요? 내가 돈을 주고 대통령직을 샀다는 말입니까? 검사님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 말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대주셔야겠습니다. 증거를 대란 말입니다.”
전두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전두환 피고인은 이 법정에서의 진술을 앞으로 번복하지 않죠?”
검사가 다그쳤다.
“그야 바뀌면 처벌받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게 군사반란의 근원적인 힘인 것 같았다. 처벌받을 각오 말이다. 박정희가 삼천 명의 병력으로 한강 다리를 건너왔을 때 국군은 육십만 명이었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만 해도 칠만 명 가량 됐다. 실패하면 처벌받겠다는 각오가 정권을 잡게 된 힘은 아니었을까. 전두환도 비슷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검사가 그의 장수격이었던 허화평에게 물었다.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가 오월십칠일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정권을 잡았는데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전시라던가 적의 포위 공격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비상계엄을 선포할 요건이 안됐죠?”

“비상계엄의 요건을 누가 판단하느냐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국민여론이 과거의 그 요건을 심사하지만 그 때는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의 주체들이 상황을 판단하는 시대였습니다. 어느 경우나 주체세력이나 그 반대세력은 상황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됩니다. 당시 재야와 학생은 최규하 대통령, 신현확 총리, 전두환 사령관이 물러나지 않으면 오월 이십이일을 기해 전국적인 시위로 들어가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내왔습니다. 우리들은 그걸 위기로 본 거죠. 그래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겁니다.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전국적으로 소요를 일으킨다는데 그게 어떻게 위기가 아닙니까?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그렇게 단순한 잣대로 재면 안 됩니다.”

권력의 등에서 떨어져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였지만 당당했다. 재판장은 ‘항복한 장수는 목을 치지 않는 법’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칠년 내내 도심의 거리는 최루탄 연기에 절어 있었다. 시위대가 손에 든 쇠파이프가 아스팔트 위에 끌리면서 내던 메마른 금속성의 소리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군인들의 총 끝에 달린 대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특수하게 제조된 군인들이 허리에 차던 긴 박달나무 몽둥이에 얻어맞고도 늠름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민주화가 됐다. 죽은 사자는 살아있는 개만도 못하다. 건포도 같이 말라 쪼그라든 그를 보면서 연민이 느껴졌다. 권력이 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