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게임>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사건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는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전에 검찰총장을 지냈던 사람이었다. 만난 적도 인연도 없었다.

“나 누군지 알죠?”
전화 저쪽에서 그가 말했다.

“압니다.”
“지금 소송을 하는 상대방과 아는 사이인데 그 사람 불쌍한 사람이예요. 잘해 주세요.”

“상대방 대리인인 변호사십니까?”
이상해서 내가 되물었다.

“아니예요. 나는 검찰총장을 그만두면서 변호사 같은 거 안 하기로 했어요.”
“변호사 자격이 아니라면 지금 이게 뭐하는 겁니까? 전화 끊겠습니다.”

그의 태도를 도대체 납득할 수 없었다. 민사소송은 상대방과 벌이는 운동경기 같은 구조였다. 그가 도움을 주려면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서 싸우면 되는 것이다. 그의 어조에는 변호사는 비굴한 직업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검사라는 창을 통해 본 변호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토론회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검사 출신의 한 후보는 변호사란 돈만 주면 일하는 총잡이 같은 존재라고 했다.

변호사를 하던 초창기 조금만 일해도 피곤함과 회의를 느낀 때가 있었다. 내가 과연 가치 있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하늘에 있는 그분이 내게 적합한 일을 주신 것인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판·검사들 중에는 변호사는 자기들 때문에 먹고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때 나는 더 이상 변호사 일을 하기 싫었었다. 그때 일과 노동에 대한 나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준 선배가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차를 나누며 대화하는 중이었다.

“변호사를 해 보니까 정말 재미있어. 상대방과 게임을 하는 거잖아? 어떤 전략을 쓸까 구상하는 것도 즐겁고 상대방 눈치를 살피면서 손에 들고 있는 증거들을 카드놀이를 할 때의 패처럼 언제 내놓을까도 흥미진진하고 말이야. 그러다 마지막에 한 끝 차이로 이기면 그 승리의 쾌감이 짜릿하지. 나는 카지노에서 하는 도박보다 이 변호사 게임이 훨씬 즐겁고 재미있어. 도박장은 단순하게 돈을 걸지만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걸고 게임을 하잖아? 카지노에서 카드 한 장에 목숨을 거는 판인데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겠어?”
그의 한 마디에서 나는 정말 중요한 걸 깨달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내가 판사 생활을 하다가 나왔는데 그건 재미없었어. 남이 게임을 하는데 단지 외부에서 심판을 보고 판정을 해주는 국외자였지. 그런데 변호사가 되니까 게임 안에 들어와 내가 선수가 된 거야. 그게 훨씬 재미있고 짜릿해.”
그는 다른 판사들과는 인생관이나 직업관이 달랐던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더러 법정에서 혼이 나고 진상 의뢰인에게 트집을 잡혀도 불평을 하지 말아. 자네가 받은 돈에 그런 고통들에 대한 위자료가 다 포함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재미있는 게임을 맨날 하는데 돈도 많이 따라온 것 같아. 집 없는 내 동생들 아파트 한 채씩 다 사줬으니까 말이야. 판사를 계속했다면 어림없는 일이지. 난 법원장도 싫고 대법관도 싫어 그냥 변호사만 죽을 때까지 할 거야.”

그 선배는 내게 직업적인 각성을 주었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백발의 변호사가 됐다. 엊그제도 나는 감사하면서 법정으로 갔다. 아직 현역의 전문직업인이다. 일을 통해 사회에 참여한다. 나의 노동은 철학자 헤겔의 말처럼 나의 실현방법이다. 마르크스의 고통스러운 소외된 노동이 아니다. 내가 들어갔던 법정의 젊은 재판장이 이런 부탁을 했다.

“당사자가 딱해 보이네요. 그가 처한 구체적 사실들이 적힌 서면을 제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의 의뢰인은 중증의 장애인이었다. 혼자서 물 한 잔도 마실 수 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이불을 덮고 자기도 불가능했다. 이불에 묻혀 죽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라도 옆에서 돌보지 않으면 그는 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움직이는 한두 개의 손가락으로 자판을 눌러 나와 소통하고 있었다. 하늘에 계시는 그분이 내게 맡긴 사건이었다. 나는 기적을 봤다.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가 다가와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를 돕고 있었다. 하늘에서 눈같이 내리는 만나같이 착한 사람들이 보내는 작은 성금이 그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주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살덩어리 같은 그를 목욕시키면서 혼자 몸을 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인지 깨달았다고 봉사자는 내게 말했다.

나는 장애를 가진 그의 삶과 기적을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 법원에 제출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다. 변호사는 게이머 같다는 선배와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글로 만드는 일이 변호사인 나의 노동이었다. 그 글 속에 인간의 삶과 법의 본질을 담으려고 노력해 왔다. 변호사업은 내 삶의 소재였다. 살아있는 생생한 묘사를 하기 위해 소설을 공부하고 수필들을 읽었다. 나의 노동은 힘들지만 달콤한 문학적 여정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각 사람마다 재능과 일을 주었다. 보석을 깎는 사람도 있고 나무를 다듬는 사람도 있었다. 염색쟁이도 있고 매듭을 꼬는 사람도 있었다. 그분은 주신 일을 사람들이 좋아하게 프로그램을 설정해 놓은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이 곧 숙련에 통한다. 그 일을 하는 것이 놀이자 휴식이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조각으로 뉴턴은 그의 물리연구로 칸트는 그의 철학으로 평생 노동을 삼았지만 피곤해 하지 않았다. 가장 완전한 휴식은 휴식이 필요하지 않은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그 분이 주신 일이라면 농사를 짓건 물건을 만들건 그 자체가 놀이이며 휴식이다. 사람이 자기에게 알맞은 일을 하면 피로하지 않다. 믿는 사람에게 노동은 은혜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