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년대 전반부인 나의 대학 시절은 장발이 유행이었다. 대통령이 장발에 눈살을 찌푸리자 경찰들이 단속에 나섰다. 경찰들은 길거리에서 장발을 한 청년들을 잡아 휴대하고 있던 가위로 머리를 잘라버렸다. 개인은 개인이고 국가는 국가였다. 왜 국가가 개인의 머리 스타일까지 강요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학 일이학년 시절 나는 밴드그룹에 가입해 음악을 했었다. 자연스럽게 모두 다 장발이었다. 우리들은 항상 범죄자 같이 경찰관을 피해 다녔다. 공연을 할 때도 정보과 형사들한테 심사를 받아야 했다. 그들이 음악을 하는 우리를 옭아매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헌법을 보면 그런 권리가 있었다. 자기가 남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듯 다른 사람도 국가도 자기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되지 않았다. 우리는 힘도 없었다. 무저항주의가 아니라 그 힘에 무기력하게 굴복했었다.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들어와 있었다.

국가만이 그런 게 아니었다. 대학 졸업 무렵 앞이 막막한 적이 있었다. 소집영장이 나온 군복무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당장 밥과 잠자리가 없었다. 나는 장학금을 주는 재단을 찾아갔다. 법대 교수가 심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나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또 한 명이 나란히 교수실로 들어갔다. 교수가 우리 두 명을 보고 말했다.

“먼저 이발관에 가서 중같이 머리를 빡빡 밀고 다시 와. 대가리가 그게 뭐야. 면도칼로 밀어서 푸르스름한 빛이 나올 정도로 해서 다시 와.”

대학 졸업을 얼마 앞 둔 시점이었다. 군대나 감옥 아니면 그런 머리 스타일이 없었다. 교수가 덧붙였다.

“우리 재단의 돈을 받게 되면 모든 자유를 몰수당해야 한다. 내가 지정하는 아주 깊은 산 속의 암자 뒷방에 틀어박혀야 한다. 중들이 무문관 수행을 하듯 그 암자에서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정해진 절밥만 먹어야 한다. 그리고 잠시 마을로 내려가려면 그곳 책임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락에 떨어진 상황에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줄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내 옆에서 같이 면접을 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말씀대로 먼저 머리를 빡빡 깎고 왔는데 안 되겠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때는 교수님 책상을 뒤집어 엎고 가도 됩니까?”

피차 비슷한 궁박한 상황일텐데도 정말 대단한 용기였다. 상대적으로 내가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깎고 와 봐.”

교수가 탐색하는 눈길로 그 친구에게 말했다. 역시 보통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교수실을 나와 지하의 이발소로 내려갈 때였다. 그 친구가 혼잣말 같이 내뱉었다.

“지가 주는 돈도 아닌데 말이야. 재단에서 주는 돈 가지고 자기가 생색을 내고 있어.”

백지장 같이 하얀 얼굴의 그의 눈동자에서는 강한 파란 불빛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걸 기회로 친해졌다. 그 다음해 여름 문경의 깊은 산골 천년고찰인 대승사에서 같이 공부할 때였다. 어스름이 감돌던 어느 날 저녁 일주문에서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난 자유주의자이고 개인주의자야. 남을 지켜주겠다고 법을 공부한다면 먼저 자기를 지킬 줄 알아야겠지. 아무리 그 교수가 스파르타 식으로 우리를 공부를 시키려는 뜻이라고 하더라도 자유를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 남이 내 특성을 침범하는 게 정말 싫어.”

우리들은 금족령에 걸린 채 법서만을 봐야 했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중 한 명이 다른 사람의 동향을 담당 교수에게 보고하는 체제였다. 용수철은 누를수록 튀는 것 같았다. 나가지 못하게 하니까 더 나가고 싶었다.

나는 수시로 절을 나갔다. 시외버스를 타고 몇 시간 시골길을 달려 읍으로 나가 다방에서 차 한 잔이라도 마셔야 숨통이 틔었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도 시작했다. 그곳에서의 나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사법시험에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쫓겨났다. 연기했던 군복무 때문에 장기 직업 장교가 되어 버렸다. 젊은 날 초라했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오십 년 가까이 세월의 강이 흘렀다. 당시 눈에서 푸른 불꽃을 튀기던 친구는 판사 생활을 하다가 나와서 자살을 했다. 장학생 담당 교수님도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얼마 전 장학금을 심사하는 자리에 앉았었다. 앞에 와 있는 젊은이의 얼굴에서 그 옛날의 주눅든 나의 모습을 보았다. 마음이 스산하고 춥던 그 시절 나는 좀 더 따뜻한 대접을 받고 싶었었다. 내가 받고 싶었던 대로 면접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