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의 일이다. 일년 동안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한 마디 해 주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너를 봐 왔다. 너는 앞으로 뭘 해도 잘해 낼 거야.”

그 감사한 한 마디는 내 영혼에 깊이 새겨지면서 칠십 평생 삶의 큰 힘이 됐다. 사람을 만드는 것도 말이고 망치는 것도 말이었다. 인간의 말이란 단순한 소리의 파동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음파였다.

중학교 삼학년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 모든 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항상 남을 대할 때 겸손해야 한다.”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그 겸손이란 한 단어가 머리가 허옇게 되도 잊혀지지를 않는다. 겸손이 삶의 최고의 무기인 줄을 늙어서야 깨달았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였다. 나는 서울대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되지 않았다. 아직 어렸던 그때 나의 정신세계는 단순하고 좁았다. 그때 내가 좋아하던 학교 선생님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게 무슨 문제야. 살아가다 앞에 벽이 막고 있으면 돌아가면 되는 거야. 이 사람아 자네 학교 선배이기도 한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년을 공장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대학을 들어갔어. 인생에서 그런 맴돌고 정지하는 과정도 필요해. 밥이 뜸이 들 듯 인생도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 선생님의 말에 나는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방향을 돌렸다. 말 한 마디에 마음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니까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 무렵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서울법대를 나온 사람들 중에 고시 낭인이 제일 많아. 그 대학을 갈 성적이 안 되는 네가 고시에 도전하더라도 합격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빨리 자신을 알아야 하는 거야. 피라미가 상어가 되겠다고 꿈을 꾸어서는 안되는 거야. 너도 아버지같이 회사원이 되고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게 어때? 말단사원인 나는 사장보다 더 행복해. 사장은 경영을 하느라고 골치를 썩고 있지만 나는 주말이면 낚시를 가고 등산을 가고 집에서는 작은 화단에 나팔꽃을 심고 방에는 새를 키우잖니? 그런 게 행복이야. 쓸데없이 출세주의자가 되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방 안의 책장에 가득 꽂혀있는 세계문학 전집, 전후문학, 한국문학책들을 놓고 흐뭇해 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철학을 그 후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절망의 바닥에 떨어졌을 때에야 깨달았다.

법과 대학 시절이었다. 교수님과 친구 두세 명이 같이 점심을 먹고 학교 부근의 다방에서 차를 마실 때였다. 교수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흔히 도박이나 술에 중독되기도 하고 남녀관계로 사고가 나기도 하지. 그런데 그건 일반화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이해하고 동정을 할 수도 있어. 그런데 마약보다 더한 독한 게 있어. 권력에 중독이 되면 그 사람은 평생 거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해 주지도 않고 동정도 하지 않고 말이야. 그러니 절대로 권력에 중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게.”

나는 좋은 분들의 좋은 말로 깎여지고 만들어져 온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말의 공해로 가득차 있었다. 주위에 보면 만나는 사람들에게나 심지어 자식에게까지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이 많았다. 건달영화를 보면 쌍욕으로 시작해서 슬랭을 쓰고 욕으로 끝난다. 버스 안에 탄 중학교 여자아이들의 입에서 거친 쌍욕이 줄줄 나오는 걸 보고 놀란 적도 있다. 지하철역에서 핸드폰을 든 젊은 여성의 입에서 슬랭과 저질욕이 설사같이 쏟아져 나오는 걸 듣기도 했다.

팟캐스트의 사회자로 유명한 인물은 그의 말에 걸린 대상을 비방하고 짓이겨 버리는 걸로 인기를 유지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대통령 후보의 형수에 대한 욕은 챔피온급이다. 마음에 독기가 있으면 그 말에도 독기를 품게 마련이다. 말을 삼가지 않는 세상이다. 말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말은 그 사람이다. 그것을 내보내는 사람의 인격 그 자체다. 고상한 말을 쓰면 고상해지고 상스러운 말을 쓰면 상스러워진다. 깨끗하게 하는 것도 말이다. 더럽게 하는 것도 말이다. 말로 말미암아 천국에 가기도 하고 말로 걸려 넘어져 지옥에도 간다. 예수는 마지막 날에 자기가 한 말들을 심판받는다고 했다. 겸허하고 진실한 청정한 말들 속에서 숨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