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경찰 수사


“아줌마, 방 불이 꺼졌어!”

1974년 12월30일 오후 10시40분쯤이었다. 수인역(남인천역)에 가까운 인천시 중구 신흥동 2가 1번지 삼성라사 여주인 이옥련 씨(당시 40세)는 가게 안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이 씨는 가끔 유리창 너머로,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쌀가게 ‘시화상회’쪽을 힐끗힐끗 살펴보고 있었다. 이 씨는 시화상회 안주인 두이분 씨(당시 27세)가 “큰집에 가는데 집을 좀 봐 달라”고 부탁한 것을 마음에 새겨 두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그때 창 너머로 두 씨가 보였다. 두 씨는 닫힌 시화상회의 쪽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머리만 넣어 둘러보더니 쪽문을 닫고 이 씨의 가게 쪽으로 건너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두 씨는 “아주머니, 내가 큰집으로 갈 때는 문고리를 걸어 두었는데 지금 보니 벗겨져 있어요”라고 했다. 이씨는 “큰집에 갈 때 자물통을 채우지 않았단 말입니까”하고 물었다.

두 씨는 대답을 하지 않고는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시어머니한테 가서 20만 원 사기당한 얘기를 했더니, 요즘 너희들이 안색이 좋지 않아서 무슨 일인가 했었다,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가 보구나,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두 씨는 또 시키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아주머니 여기 앉아서 우리 집 잘 안 보이죠?”
“왜 안 보여” 하면서 이 씨가 시화상회쪽을 바라보니 쪽문이 열린 채였다. 이씨는 “문이 열렸어, 어서 가봐”라고 두 씨의 등을 밀었다.

두 씨가 나가자 이 씨는 혹시 도둑이라도 들지 않았나 싶어 따라 나섰다. 두 씨가 먼저 캄캄한 점포 안으로 들어섰다.
“아줌마, 방 불이 꺼졌어! 방문도 열렸어!”
두 씨가 겁먹은 듯 말했다. 이 씨는 강도가 들어와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겁이 와락 났다. 손을 휘저으며 “어서 나와, 점포 불 켜고 나와!”라고 소리 쳤다.

두 씨는 나오지 않고 전등을 켰다. 이 씨는 바깥에서 쪽문을 통해 환해진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점포 안에는 쌀가마니가 쌓여 있고 안쪽에는 단칸방이 있었다. 두이분 씨는 방문턱에 걸쳐 엎어져 “아이, 어떻게” 하면서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두 씨는 남편 정시화 씨(그때 38세)가 엎어져 있는 그 위로 엎드려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방안의 모습이 이 씨의 눈 안으로 확 들어왔다.

방안 왼쪽 벽에 붙은 장롱 문이 열려 있었고, 옷가지가 방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이씨는, 역시 강도가 들었었구나 하는 생각을 굳히고 허둥지둥 길 건너 고무신가게로 뛰어갔다(이 씨가 1974년 12월31일에 인천경찰서에서 진술한 목격담).

혀가 빠진 시체로 발견되어

여기서 고무신가게 엄인환 씨(당시 57세)의 증언을 듣는다(1975년 1월21일 검찰 진술조서).

“10시40분경 동아방송에서 나오는 연속극 ‘김두환’을 듣고 있었습니다. 거의 끝날 무렵이었는데, 밖에서 삼성라사 주인 아주머니가, 급한 일이 생겼으니 빨리 나오라고 뛰어 왔습니다. 시화상회로 갔더니 쪽문만 열려 있고 점포 안에는 형광등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두이분이는 방문턱에서 다리를 점포로 걸친 채 정시화의 상체 위에 엎드려서 허우적거리고 있어서 저는 직감적으로 연탄가스 중독이구나, 생각이 들어 방안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우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차례로 안아 들고는 점포 안에 서 있는 삼성라사 아주머니와 저의 처 신갑균(45세)에게 건네주면서, 길에다 내다 눕혀놓으라고 했습니다.

저와 삼성라사 아주머니는 두이분을 정시화의 몸에서 떼어 점포 바깥으로 끌어내고, 제가 정시화도 꺼내려고 하는데 불빛에 보니 목에 넥타이가 한 바퀴 둘려서 비비 꼬여 있어서, 그것을 빼어 버리고 엎어져 있는 정씨를 바르게 눕혀 보니 혓바닥이 입 밖으로 나온 채 죽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옆을 보니 식칼이 있어, 옆으로 치워 놓고, 저도 겁이 나서 밖으로 뛰어 나오는데, 누가 신흥동파출소에 신고했는지, 순경 한 사람과 방범대원 둘이 와서 그들 세 명을 택시에 싣고 인천 도립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정시화는 방문 가에 엎어져 있었는데 머리는 윗목인 장롱 쪽, 다리는 아랫목인 부엌문 쪽으로 뻗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옮기느라고 아이들의 목에 매인 노끈은 보지 못했고, 정시화의 입과 코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두이분이는 정시화의 등에 엎드려 ‘아빠, 아빠’라고 하다가 말이 없어져서는 그 여자도 연탄가스에 중독된 걸로 생각했습니다.”

이날 도립병원 응급실에는 마침 신흥동파출소의 김우식 순경(당시 40세)이 교통사고 관계로 나가 있었다. 오후 11시께 신흥동 파출소의 동료직원인 이희권 순경이 택시를 타고 허겁지겁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이 순경은 두 아이를 싣고 왔는데, 먼저 남자아이를 안아다가 김순경에게 건네주었다.

김 순경은, 받아 안은 어린아이의 목에 흰 끈이 감겨진 것을 봤다. 가느다란 끈은 아이의 목을 두 번 감고 있었고, 1센티미터 가량의 매듭이 되어있었다. 매듭을 짓고는 전혀 여유가 없게 잘라 김 순경은 이 매듭을 푸는데 애를 먹었다.

교란된 현장

응급실 당직의사 최미자 씨(당시 24세)는 청진기를 댔으나 남자아이는 이미 시체였다. 남자아이에 이어서 응급실로 들려온 여자아이의 목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끈이 매여 있었다. 간호원이 끈을 풀었으나 여자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두 아이는 외상이 전혀 없었다. 다른 택시가 실신상태의 두 씨와 죽어버린 정 씨의 시체를 싣고 왔다. 김 순경은 정 씨의 목에서 7센티미터 가량의 상처를 보았다. 칼 같은 것으로 그은 상처인데 깊지는 않았다. 목에는 또 끈 같은 것으로 세게 묶는 흔적이 피멍으로 남아 있었다.

김 순경은 다음 날짜 경찰 진술 조서에서 “제가 보기에는 아이 두 명의 목에 끈을 묶고, 자기의 목에도 끈을 묶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고 했다.
김 순경의 견해대로 경찰은 처음에 정 씨가 아들 연홍 군(8세), 연경 양(6세)을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했던 것 같다. 시체를 발견했을 때는 연탄가스 집단중독사고로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병원에 시체를 옮긴 뒤 목이 매인 것을 알아낸 뒤로는 ‘자살’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됐던 것이다.

자살이나 살인사건의 수사에서는 현장의 보존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건 현장은 수사의 원점이자 寶庫(보고)라고 한다. 수사의 실마리, 추리의 힌트, 물증, 살인자의 자취, 죽은 이의 암호와 같은 몸짓 따위가 보물찾기 장소에서처럼 뒤섞여 있는 곳이 현장이다. 노련한 수사관들은 수사의 진로가 막힐 때마다 현장으로 돌아와 방향감각을 모색한다. 용의자를 붙들었을 때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가려내 주는 준거도 현장에 있다.

이 사건에선, 그러나 처음부터 현장이 엉망으로 흐트러져버렸다. 시체들이 발견된 상황, 발견자들의 당황 따위로 미뤄 볼 때 현장이 보존되지 못하고 뒤죽박죽 돼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해도, 시체들과 칼, 넥타이 등 소도구가 현장을 떠나버리고 목을 맨 끈도 풀어버리는 바람에 그 뒤의 수사와 재판은 크게 영향을 받게 됐다. 출발부터 불안정한 바탕을 딛고 비틀비틀 달리게 된 것이다.

두이분 씨는 의심을 받지 않았다. 일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두 씨는 실신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져 곧바로 침대 위에 눕혀 치료받는 입장이 됐던 것이다. 두 씨는 정신이 혼미한 듯 침대 위에서 배설까지 했다. 모두가 충격과 슬픔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경찰에선 그런 두 씨로부터 대충 집안사정을 들었다. 두 씨는, 남편이 열흘 전에 친구에게 20만 원을 빌려주었는데 이를 받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부부싸움도 잦았다고 말했다고 한다(〈경기신문〉1975년 1월1일자).

경찰은 한밤중인데도 정시화 씨의 주변 인물들을 불러 참고인 진술조서를 받기 시작했다. ‘시화상회’로부터 5, 6분 거리에 사는 오휘웅 씨(당시 30세․인천시 중구 신흥동 3가 26)가 신흥동파출소에 불려간 것은 31일 새벽 2시께였다. 오 씨는 그 전에 이미 일련정종 교도인 두 씨 집안의 사고를 알고 있었다. 즉, 30일 밤 11시께 동네 아주머니 한 사람이 오 씨 집에 와서 두 씨 집에 사고가 났다고 알려 주었던 것이다.

오 씨의 아버지 오기남 씨(당시 59세)는 종교관계로 잘 알고 지내는 두 씨의 사고인지라 부랴부랴 인천도립병원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파출소에서 오 씨를 불러 참고인 진술조서를 받은 사람은 인천경찰서 형사계 정용달 경장이었다. 그 뒤 이 사건 수사의 실무팀으로 일하게 된 정 형사가 작성한 조서를 읽어보면 이날엔 오 씨에게 특별한 의심이나 선입감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