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의 마지막 모습

오 씨는 그때 인천시 남구청 수도과 검침원으로 취직한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두이분 씨를 알게 된 것은 여섯 달 전인 4월에 두 씨가 일련정종을 다시 믿게 되면서였다고 했다. “애정관계나 성관계는 없고 두 씨가 30~40명 교인들 가운데 반장이기 때문에 알고 지내는 정도다”고 말했다.

오 씨는 정시화 씨와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동생이 정 씨와 함께 제일연탄 하치장에서 일했고, 동생이 다쳤을 때 정 씨가 도와준 적이 있어 친밀해졌다”고 진술한 오 씨는 “정 씨는 저의 형뻘이 되므로 정 형이라고 불렀으며, 1주일에 한두 번씩은 제가 찾아가서 술을 사주면서 불구의 몸이라고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얻으라고 격려해 왔다”고 덧붙였다. 정 씨는 어릴 때의 추락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고 다녔던 것이다.

오 씨는 정 씨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오휘웅 씨의 동생인 오태석 씨(당시 23세)도 인천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오 씨는 정 씨가 시체로 발견되기 네 시간 전인 오후 6시40분께 정 씨 집, 즉 시화상회를 찾아갔었다고 말했다. 오태석 씨는 약값을 꾸러 갔었는데, 두이분 씨는 한 푼도 없다고 거절했고, 정 씨는 비상금이 있다면서 1000원을 빌려주더라는 것이다.

오태석 씨는 이 돈을 갖고, 다니던 병원으로 갔으나 담당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오후 7시40분께 다시 시화상회로 가서 꾼 돈을 돌려주었다고 했다. 그때 정씨의 남매는 방안에서 놀고 있었고, 정 씨와 두 씨 부부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오 씨가 돈을 돌려주고 나오는데 정 씨가 불렀다.
“태석아, 술 한 잔 받고 가라.”
재빨리 옆에 있던 두 씨가 나섰다.
“우리 주인 양반은 술을 많이 마셨으니 그냥 돌아가세요.”
오태석 씨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제 3자에 의해 목격된, 정 씨와 두 남매의 살아 있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오후 7시40분경에도 세 사람은 살아 있었고, 그때 정 씨는 술을 상당량 마신 상태였음이 밝혀졌다.

경찰은 사건 당일에 정 씨나 두 씨를 만났거나 그의 가게를 찾아갔던 사람들을 잇달아 불러 조서를 받았다. 정시화 씨의 형인 정봉화 씨(당시 42세)는 그날 밤 8시30분께, 그러니 정시화씨가 시체로 발견되기 2시간 남짓 전에 동생 집에 갔었다고 말했다. 정봉화 씨는 막내 동생과 함께 큰형 집에 문안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시화상회에 들렀었다는 것이다.

그때 가게 문은 완전히 닫혀 있었다. 정 씨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불도 켜져 있지 않고 캄캄했다. 쪽문을 당겨 보아도 안에서 잠겨 있었다. 막내 동생은 “형수가 또 호랑이(일련정종)교회에 간 모양입니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두 형제는 그대로 돌아갔다.

자살위장에 일단 성공

뭐니 해도 두 씨와 함께 정씨 등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삼성라사 주인 이옥련 씨는 주요 참고인이었다. 이 씨는 12월31일자 경찰 신문조서에서 두 씨가 사건 당일 오후 8시40분께 이 씨의 양복점에 들러 “아주머니, 속상해 죽겠어요”라고 하소연을 하더라고 했다. 하소연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단다.
“어떤 사람이, 텔레비전이 남에게 넘어가게 됐는데, 20만 원을 주고 이 텔레비전을 사 오면 이문을 남기게 된다고 해서, 남편이 20만 원을 주었다. 오늘 오후 7시가 그 사람이 텔레비전을 갖고 온다는 시각인데, 안 오는 것을 보니 사기당한 것 같다. 남편에게 따지니 당신은 알 것 없다고 한다. 나는 큰집의 설 차림을 도와주러 가야 하는데 그 사람이 올지 모르니 가끔 우리 가게를 살펴봐 달라. 남편은 술에 취해 누워있다….”

이옥련 씨는 그 뒤 검찰에서 진술할 때는 두 씨가 오후 7시 직후에도 삼성라사에 나타나 20만 원 사기 운운하는 하소연을 했었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이 씨는 1시간30분 간격으로 같은 하소연을 되풀이해서 들은 것이다.

시화상회와 연립주택처럼 붙어 있는 점포는 지영의상실이었다. 가게 주인 장혜숙 씨(당시 35세)는 사건이 일어난 날 밤에 시화상회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장 씨도 한 15일 전 두 씨가 자기 집 부엌으로 건너와 남편이 20만 원을 사기당한 것 같다는 투의 이야기를 하더라고 진술했다.
두 씨는 20만 원 사기 운운 하는 이야기를,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상당 기간 ‘적극적으로’ 했음이, 이상의 진술로 미루어 분명하다.

정시화 씨의 맏형 정동화 씨(당시 49세)의 집은 시화상회에서 약 400미터 떨어진 중구 신흥동3가 19번지에 있었다. 정동화 씨의 아내 윤금순 씨(그때 46세)는 12월31일자 경찰진술에서 “시동생(정시화)은 원래 마음이 좋고 남을 잘 믿어 돈을 빌려 주고도 못 받는 일이 이따금씩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부부싸움이 있었습니다”고 했다.

윤 씨는 또 이런 진술을 했다.
“어제(사건 당일인 30일) 밤 9시30분경 제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저의 동서(두이분)가 와서 오늘 수금을 갔다 왔는데 수금을 하나도 못했다고 하였으며, 동서가 수금을 갔다가 집에 와서 보니 시동생(정시화)이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 20만 원 꾸어간 사람이 와서 술을 마셨는데 아무래도 꾸어준 돈을 받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며 술을 사달라고 한 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윤 씨는 또 두 씨가 윤 씨 집에서 만두속을 장만하는 일을 도와서 무와 당근을 썰어주다가 밤 10시40분께 돌아갔다고 했다.

12월31일자〈경기신문〉은 사회면의 5단 기사로 이 사건을 알렸다.
“정 씨는 10일 전 20만 원을 빌려주고 이를 받지 못해 고민해 왔으며 이로 인해 가정불화가 잦았다고 한다. …없어진 금품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경찰은 이 사건을 가정불화로 인한 자살이 아닌가 보고 있다.”
이 기사가 전해주듯 다음날 아침까지도 경찰은 정 씨가 두 남매를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런 추정의 근거는 두 씨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말해 둔 ‘20만 원 사기 운운’하는 이야기와 세 사람의 사망상태를 목격했던 김우식 순경의 견해 등이었을 것이다.

수사에 착수, 오 씨를 다시 불러가

변사자가 발견되면 경찰은 검찰에 변사보고서를 올린다. 검사의 지휘에 따라 변사체의 처리를 하게 된다. 자살이 확실하거나, 타살의 혐의가 없을 때는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할 것’이란 검사의 지휘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날 인천검찰지청의 당직 검사는 안길수 씨였다. 안 검사는 자살로 추정된다는 변사보고서를 접하고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인천경찰서 정기섭 수사과장과 함께 3명의 사체가 보존되어 있는 인천도립병원으로 갔다. 지금은 수원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안 씨는 1984년 8월 나와 만나 이렇게 회상했다.
“병원에 가 보니 영안실에서 두이분은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살결은 희고 몸집은 작은 여자였는데 요염한 얼굴이었습니다. 우는 모습이 뭔가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사과장에게 사체를 부검하고 저 여자 뒤를 캐 보라고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만약 그때 병원에 가지 않고 경찰 보고서만 믿고 사체를 유족에게 인계하라고 지휘했다면 이 사건은 자살로 종결됐을 것입니다.”

12월31일 온종일 경찰은 두이분, 정시화 씨 주변 인물들을 불러 조사를 했으나 뚜렷한 범죄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12월31일에 작성된 참고인 진술조서의 내용이 그렇고, 경찰이 31일 새벽 2시에 신흥동 파출소로 연행했던 오휘웅 씨를 이날 밤 9시께 풀어준 사실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오 씨는 경찰에서 자기를 데리고 다니며 사건 당일의 행적을 조사해 보고는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풀어주더라고 했다.

오 씨는 밤늦게 돌아와서도 일련정종 교인들과 함께 연말 학회에 참석했고, 그날 밤은 집에서 잠을 잤다고 그의 아버지 오기남 씨는 말하고 있다. 다음날인 1975년 1월1일은 오기남 씨의 생일이었다. 친척들을 초대하여 아침을 대접했다. 오휘웅 씨가 장남으로서 손님접대를 주관했다고 한다. 오휘웅 씨는 아침 식사가 끝난 뒤 동네 이발소로 갔다. 오 씨의 아버지는 종교관계 일로써 출타했다. 오 씨의 어머니 이남수 씨(그때 52세)와 친척들만 남아 있는데 경찰관이 찾아 왔다.
“신흥파출소에서 오휘웅 씨가 한 번 더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하니 보내 달라”는 전갈이었다. 이남수 씨는 사람을 보내 이발 중이던 오휘웅 씨에게 연락을 했다. 오 씨는 “왜 또 부르지” 하면서 제 발로 신흥동 파출소로 찾아갔다. 1일 오전의 일이었다.

인천경찰서는 그때 이 사건의 수사인력을 보강했다. 타살이 아닌 평범한 변사사건의 처리에는 그 지역반 형사 두 명이며 족한데, 좀 수상한 냄새가 나는 이 사건에는 다른 지역반에서 형사 5명을 뽑아 모두 7명의 전담반을 편성한 것이다.
그때 수인역전을 맡고 있었던 박인용 형사(순경·지금은 상업)도 이 수사에 참여하게 됐다. 박 씨에 따르면 오휘웅 씨를 일단 풀어주었다가 다시 불러 조사를 하게 된 데는 신흥동 파출소장의 정보수집 활동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파출소장은 두 씨와 오 씨의 이웃 주민들로부터, 오 씨가 두 여인과 평소 가깝게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이 무렵 정기섭 수사과장도 어떤 감을 잡았다고 한다. 병원에 있던 두이분 씨를 수사과장실로 불러 와 문초를 했더니 두 여인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이고, 아이고, 애들은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말라고 했는데…”라고 넋두리를 하더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