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이 ‘처리’가 깨끗이 ‘처치’로 바꿔져

오휘웅 씨는 1월5일에 자술서를 썼다. 이런 종류의 자술서는 피의자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수사의 참고자료로 삼기 위해 수사관들의 지시에 따라서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자술서에서 오 씨는, 두 씨와 처음으로 정을 통하고 나오는데, 두 씨가 남편과는 여섯 달도 못갈 것 같다고 했으며, 그러면 석 달 안에 남편과 자식들을 깨끗이 처치하라고 했고, 날짜는 지정해주지 않았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두 여인은 “제가 할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어요”라고 했으며 그 나흘 뒤(12월19일)에도 오 씨는 “혼자서 두 남자를 섬길 수 있겠느냐”면서 남편과 아이들의 처치를 독촉했다는 것이다.

오 씨는 자술서에서 오후 8시40분이 조금 지나서부터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는데, 삼성라사에 두 씨가 손에 피를 묻힌 채 나타난 것은 8시35분이란 증언이 있었다.
오 씨는 또 1월1일자 녹음과 1회 신문조서에서는 여자아이(정연경)부터 죽였다고 했는데, 이 자술서에선 남자아이(정연홍)부터 죽였다고 바꿔놓고 있다. 범행의 실체에 관계된 핵심진술이 바뀐 것이다. 자기가 체험했다는 사실을 이처럼 다르게 진술한 것은, 고의적 조작인가, 아니면 체험하지 못한 사실을 창작하는 데서 생긴, 본인도 눈치 채지 못한 실수인가. 고의성이 있는 거짓말이라면 무슨 목적이 있을 것이다. 살해순서가 바뀌면 살인자에게 과연 어떤 이득이 돌아올까.

자술서를 쓴 다음날(1월6일) 오 씨는 제3회 피의자 진술을 했다. 여기서 오 씨는 중요한 번복을 또 했다. 그때까지 오 씨는 사건이 난 그날 밤에 두 여인 집에 세 번 갔다고 말했었다. 첫 번째는 숭의동 회관에서 바로 갔고, 두 번째는 사진을 찾아가지고 갔고, 세 번째는 집에 가서 밥을 먹고 갔다는 것이었다. 오 씨는 “세 번 간 것이 아니고 두 번 간 것입니다”고 했다.

“…집에 갔다가 온 것이라고 진술한 것은, 그날 집에서 정기 집회가 있었으며 그때 제가 집에서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말하려고 집에서 저녁을 먹은 것으로 말씀을 드린 것이올시다.”

오 씨의 이 실토에 경찰은 기뻐했을 것 같다. 오 씨가 집에 갔다가 온 적이 없다면 범행개시 시간은 오 씨의 진술을 근거로 할 경우 ‘8시40분 직후’에서 ‘8시20분 직후’로 당겨질 수 있었다. 오 씨가 두 번째로 두 씨 집에 나타난 시각은, 오 씨의 진술을 종합할 때 8시20분대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범행을 신속하게 끝내면, 두 씨가 8시35분께 피를 손에 묻힌 채로 삼성라사에 나타날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요컨대 오 씨의 진술번복으로 그의 시간표에서 20분 정도가 비게 됐다. 이 여유시간은 경찰의 곤혹스러움을 어느 정도 풀어준 것 같았다.

이날 이후로 경찰이나 검찰 조서에서는, 두 여인이 1월4일 진술에서 20여 분이나 앞당긴 범행관계 시간표가 다시 나타나지 않고 ‘8시20분대에 범행’이란 오 씨의 진술로 거의 통일된다. 20분 앞당긴 두 씨의 진술이 무리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필요도 없게 됐다고 판단한 때문인지도 알 수 없다.

뒤에 드러난 사실로 미뤄 오 씨가 이날 두 씨 집에 두 번 나타난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오 씨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오후 8시30분을 전후하여 집에 있었음을 주장, 부재증명(알리바이)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던가. 오 씨는 그런 목적이었다고 진술했다. “8시30분께 집에 들렀다가 다시 두 씨 집에 갔다”는 진술이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이것이 반드시 “8시30분경에 오 씨가 집에” 있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나중에 오 씨는 “8시30분경에 귀가하여 좌담회에 참석했다가 곧 잤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서 오 씨는 1월1일 신흥동파출소로 연행됐을 때, 명함에다가 “7시20분부터 8시5분까지 회관에 있었다”는 내용을 적어 신도에게 전달하려고 갖고 있다가 들킨 적이 있어, 알리바이 조작 혐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 뒤 오 씨가 그 시간대에 회관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로 나타났었다.

1월6일 진술조서에서 경찰관은, 두 씨의 남편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해놓으라고 두 여인에게 시킨 적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오 씨는 없다고 했다.
형사가 “그러면 전에도 두이분을 시켜서 피해자를 죽이라고 시킨 사실이 있나요”라고 묻자 오 씨는 “그것도 없으며 이 사건과 관련하여 벌써 말씀드린 대로 사전에 깨끗이 처치하고 같이 살자고는 하였습니다”고 답했다.
이 “깨끗이 처치하고…”란 표현이 묘하다. ‘처치’는 통상적으로 살해란 뜻으로 쓰이지만, 글자 한 자만 바꿔서 ‘깨끗이 처리하고…’라고 하면 반드시 살해를 뜻하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1월1일자 녹음에서 오 씨는 두 여인에게, “아이들을 같이 데리고 산다하더라도 성장한 뒤엔 꼭 부모를 찾고 말 것이다. 그러면 나도 괴롭다. 당신이 혼자 몸일 것 같으면, 또 뒤도 깨끗하면 내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했고 깨끗이 하는 기한을 여섯 달로 잡았다고 말했었다.
1회 신문조서에선 “딸린 식구가 있으니 깨끗이 이혼하면 같이 살겠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깨끗이’란 부사는 이혼을 설명하는 의미로 쓰였는데, 1월5일자 오 씨의 자술서에선 “3개월 이내에 남편과 자식들을 깨끗이 처치하라 하였으며…”로 바뀌어 살해를 지령하는 뜻으로 변하고 있다. 단어 몇 개가 달라지면서 ‘이혼종용’이 ‘살인교사’로 바뀐 것이다.

지문도, 핏자국도, 장갑도 발견 안돼

같은 날(1월6일) 경찰은 두 여인으로부터도 3회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았다. 두 여인은 “20만 원을 사기 당했다”는 말을 여기저기에 하고 다닌 것은 “처음부터 남편을 죽이고 뒤처리를 하려고 한 것이고, 제가 죽인 것이 아니고 빚을 진 자가 죽인 것으로 만들려고 그렇게 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고 했다. 시어머니 김월녀 씨의 진술에서 나오는 남편 독살기도설이나 오 씨가 새벽에 들어와 자고 갔다는 소문 등은 부인했다.

사건 당일 두 여인이 남편에게 소주를 사준 사실에 대하여 추궁하니까 두 여인은 “남편이 술에 취하여 소주를 사오라고 해서…”라고 대답했다. 형사가 다시 “평상시에 술을 마신다고 싸웠으면서 그날은 자진해서 술을 사 먹으라고 권유한” 이유를 따지자 두 여인은 “권유한 사실은 없으나 평시의 술 먹는 습관으로 보아 그냥 두면 다 마시는 것이어서 남편 혼자 다 먹은 것이올시다”고 했다.

이날 경찰은 현장검증을 했다. 검증은 시화상회에서 있었다. 오휘웅 씨와 두이분 여인은 순순히 범행을 재연했다. 2000명 가량의 구경꾼이 몰려들었고 날씨는 청명했다. 오 씨는 남자아이를 먼저 죽인 시늉을 했고 식칼로 정 씨의 목을 긋는 연기도 했다. 이 범행장면의 재연은 사진으로도 기록되었다. 그 사진들을 보면 갸름하고 윤곽이 또렷한 두 여인의 미모가 인상적이다.

경찰이 검찰로 넘긴 약 400쪽에 달하는 기록목록에는 1월6일의 현장검증서 바로 앞에 현장지문감정회시 기록이 붙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감정회시에 따르면 현장의 장롱 등에서 두이분 씨의 지문은 발견됐지만 오 씨의 지문은 현장 어느 곳에서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오 씨는 넥타이와 마후라를 꺼내기 위해 장롱을 만졌고, 인삼주를 얻어 마시면서 플라스틱 컵도 만졌으며, 노란 등도 껐고, 식칼을 잡고 정 씨를 찔렀다고 자백했었다. 넥타이나 마후라, 노끈에는 지문이 묻지 않지만 장롱, 플라스틱 컵, 칼 손잡이에는 지문이 묻어야 옳다.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오 씨는 범행 때 장갑을 꼈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정씨의 얼굴에 난 손톱자국은 설명이 안된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장갑에 대한 수사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진술서에도, 현장검증 기록에서도 장갑 문제가 거론되지 않고 있으며 이것을 묻지 않아서 그런지 오 씨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지문만큼이나 중요한 핏자국에 대한 수사기록도 분명하지 않다. 즉 오 씨가 그날 범행 때 입었던 옷에서는 정 씨의 피가 나오지 않았는데 두 씨는 마후라를 벗기는 동작 때문에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확률상 칼로써 목줄기에 상처를 낸 사람의 장갑이나 옷가지에 피가 묻었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주범에게선 피가 발견되지 않고 종범만 피가 묻어 있었다면, 이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또한 장갑을 끼고 칼을 썼기 때문에 다른 데 피가 묻지 않았다는 설명이 되려면 그 장갑을 찾았어야 했다. 지문과 피라는 ‘결정적’ 물증이 없다면 피 묻은 장갑이란 ‘유력한’ 물증이라도 제출됐어야 했다.

아티반을 먹였다

1월9일은 구속기간이 끝나는 날이었다. 이날 두 사람은 마지막 신문을 받았는데 이게 예사 신문이 아니었다.


문: (오휘웅 씨에게) 두이분으로부터 범행 전에 피해자들에게 수면제 등을 먹였다는 말을 들었나요.
답: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문: (이때 두이분을 입실케 하고) 피의자가 오휘웅에게 살해하라고 할 시 피해자들이 전부 잠들어 있었나요.
답: 네, 잠들어 있었습니다.
문: 그러면 그시 아이들도 음주케 하였나요.
답: 그런 사실이 없고 그날 저녁을 7시경 먹고 바로 아이들의 얼굴과 손,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문: 그러면 그시 수면제 등 약을 복용시킨 사실은?
답: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문: 그러면 그시가 초저녁인데 아이들이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는데?
답: 실은 제가 저녁을 먹기 전에 수면제 10알을 칠성사이다에 타서 아이들에게 먹였고 주인께도 먹였으며 그 외에 2홉들이 진로를 1병 다 먹였으며 저녁은 조금밖에 들지 아니 하였습니다(이때 피의자 두이분은 고개를 숙이며 체념의 빛을 보이다).
문: 그러면 누구가 먹이라고 하던가요.
답: 네, 실은 저분이(이때 오휘웅을 지칭) 전날 오후 9시경 교회에 갔다가 나오면서 수면제를 먹여 놓으면 자기가 와서 죽이겠다고 하여서 제가 수면제를 먹인 것이올시다.

문: 그러면 그시 어떤 방법으로 수면제를 먹였나요.
답: 네. 사건 나던 날 오후 5시 반경 제가 시장 입구에서 금 80원을 주고서 칠성사이다 1병을 사다가 그 속에 수면제 알 10개를 집어넣으니 조금 있더니 풀어져서 그것을 가지고 방안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는 작은 소주잔으로 여러 번 먹였고 주인은 큰 컵으로 몇 번인지는 모르나 주었으며 그 후 저녁을 먹이고 조금 있다가 씻겼더니 전부 잤습니다.

문: 그러면 수면제는 어디서 언제 누가 구입하였나요.
답: 제가 오휘웅을 만난 후 오휘웅이가 저를 아끼고 사랑하여서 남편도 있고 하여 괴로워서 죽으려고 일자는 기억치 못하나 두 번에 걸쳐 시내 율목동 동사무소 옆에 있는 백마약방에서 다섯 개씩 금 30원에 10개를 샀고, 그것을 제가 오휘웅이에게 보이면서 죽고 싶다고 하였더니 (저의 집에서) 오휘웅이가 가지고 나가면서 버렸으며 그시 제가 오휘웅에게 처음에는 죽고 싶었으나 생각해 본즉 죽을 필요가 없어서 준다고 하면서 수면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날짜가 기억치 못하나 시내 창영동 기찻길 있는 곳에 있는 약방에서 제가 주인여자에게 금 40원씩에 10알을 사가지고 있었으며 그시도 실은 괴로워서 산 것이고 주인여자에게 물으니 죽지는 않고 약을 먹으면 잠이 잘 온다고 하였습니다.

문: 그러면 오휘웅이가 무슨 말 끝에 수면제를 먹이라고 하던가요.
답: 제가 교회에서 저녁 9시경에 나오면서 오휘웅에게 늦게 집에 가면 남편이 강짜를 한다고 하며 귀찮아서 수면제를 샀다고 하였더니 그러지 말고 내일 저녁에 수면제를 모두 먹여 놓으면 내가 가서 처치하겠다고 하여서 먹인 것이올시다.
문: 그러면 결국 수면제를 먹였을 시는 죽이려고 한 것인데?
답: 네. 오휘웅이가 시키는 대로 수면제를 먹였고 오휘웅이가 저녁에 온다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잠들게 하였으며 오휘웅이가 왔을 시는 남편과 아이들을 죽이려고 한 것이올시다.

문: 그러면 최초에는 무엇으로 죽이려고 하였나요.
답: 네. 처음에는 칼로 죽이려고 하였으나 소리가 날 것 같아서 노끈으로 죽였고 오휘웅이가 와서 즉시 죽이지 않은 것은 그때 완전히 잠들지 아니하여서 기다린 것이올시다.
문: (오휘웅에게) 상 피의자 두이분의 진술이 사실인가요(이때 상 피의자 두이분의 조서를 읽어준바).
답: 네, 전부 제가 들은즉 사실이올시다. 제가 갔을 시는 죽이려고 간 것이올시다.
문: 그러면 계속하여 피의사실 중 일부를 속이는 이유는?
답: 할 말이 없습니다.

형사들은 이날 두 씨가 1974년 12월20일경 오후 7시께 수면제를 샀다는 전진약국 약사 신봉자 씨(당시 31세)를 불러 두 여인과 대면시키면서 조사를 했다. 신 약사는 두 씨가 샀다는 약은 아티반이며, 이것은 정신신경평온제로서 한 번에 한 알을 먹으면 잠이 잘 온다고 했다. 50알까지는 한꺼번에 먹어도 죽지 않으며 10알을 세 사람이 갈라 먹었다면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