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난다고 태연했다는 오 씨

이로써 경찰의 열흘간 수사는 끝났다. 이 기간에 두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는지 몇 사람의 증언을 소개한다.

오 씨에 대한 수사를 맡았던 형사들은 “키가 작고 통통한 몸집을 가진 오휘웅은 덤덤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체력은 좋고 저력이 있는 사람 같았고, 고집도 센 것 같았다”고 했다.
지금은 인천의 모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안덕훈 씨는 당시에 인천경찰서 조사계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석 달 앞두고 유치장 감독으로 배치되어 열흘쯤 오 씨를 살펴봤었다.

“30년 동안 경찰관 생활을 했지만 오휘웅은 도저히 살인범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살인범들은 붙들리면 순순히 자백하고 나선 후련해 하면서 기가 팍 죽어버리는 게 보통입니다. 그는 기가 죽지도, 부끄러워하는 빛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고민하거나 당황하지도 않았고 태연자약했으며 검찰로 넘어가면 풀려나올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범인이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습니다. 두이분은 담요만 덮어쓰고 종일 경만 외고 있었어요.”(1984년 8월 인터뷰)

안 씨는 “오 씨가 고문을 당하는 걸 봤느냐?”는 나의 물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에서는 으레 하는 것 아닙니까. 둘 가운데 누가 먼저 자백했는지는 문제가 안 되지요. 어차피 양쪽을 오가면서 두들겨 맞추는 건데…. 경찰이야 일단 검찰에 사건을 넘기면 그 사건이 재판에 넘어가 무죄가 되던 유죄가 되던 별 관심을 두지 않지요. 간첩사건이야 확정판결이 어떻게 나오는지 꼭 알아보지만.”

경찰 유치장에 있는 열흘 동안 오 씨는 바깥으로 불려 나와 다섯 번이나 녹음, 진술조서, 자술서를 통해 ‘순순히’ 범행을 털어놓은 것으로 기록돼있다. 안 씨에 따르면 그런 오 씨가 유치장 안에선 자신의 결백이 밝혀지리란 확신에 차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반된 두 얼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 씨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천재적 이중인격자인가. 아니면 어떤 분위기에 위압되고 있었던가.

“난 억울합니다. 변호사 사주시오”

1년 뒤 오 씨의 아버지 오기남 씨는 이즈음의 상황에 대해 일지를 작성, 담당 변호사에게 자료로 제출한다.


1월2일: 오전 9시 강보금 씨와 같이 오휘웅을 면회하기 위해 인천경찰서에 가서 면회를 청했는데, 거절당하고 오휘웅의 식사만 넣어주었음.
1월3일: 또 면회를 갈까 해서 강보금 씨와 같이 인천경찰서 구내식당에서 기다리던 중 정시화의 장형과 담당형사 등이 구내식당 옆방에 들어가서 무슨 회담인지 약 2시간 후에 나왔음.
1월5일: 면회 거절당했음.
1월6일: 식사대금만 넣어주고 면회 거절당했음. 그때도 정시화의 장형과 담당형사 등이 구내식당 옆방에 들어가서 1시간 동안 회담하는 것을 보았음.
1월7일: 역시 면회 거절당했음. 이날 오후 3시경 인편으로 전문한 바에 의하면 현금 1만 원만 가져오면 면회할 수 있다고 함.
1월8일: 오후 4시30분경 잠깐 면회하였음.
1월15일: 비로소 인천 소년교도소에서 첫 면회를 하게 되었는데, 휘웅의 말에 의하면, “변호사를 사주세요, 저는 억울합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책값 3100원과 소지품은 인천경찰서 형사계에 압수되었으니 아버지가 찾으세요.” 그리고 언변이 활발하였음. 면회가 끝난 후 그 동지 말에 의하면 자기는 경찰로서 15년 이상 근무하여 모든 죄수를 보아 왔으나, 중범자들은 부모가 면회 오면 머리를 숙이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상례인 데 반하여 이 사람은 절대 죄인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으니 변호사를 사주라고 말하였습니다.
1월17일: 검찰청으로부터 면회를 금지시켰다 하여 그 후로 면회를 못했음.
7월1일: 비로소 면회 금지 조치가 풀렸음.

오기남 씨의 이 기술이 사실이라면 오휘웅 씨는 가족과의 면회가 제약되어 방어권 행사에 큰 어려움을 겼었을 것이다. 검찰에 넘어간 뒤 딱 한 번 가족 면회가 허용되고 이틀 뒤부터 다시 금지되어 여섯 달 동안 계속 금지되었다면 오 씨는 불공평한 조건에서 검찰 측과 대결했음을 알 수 있다.

형사소송법상의 한 원칙은,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이 공평한 룰 안에서, 또 대등한 입장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재판부는 이 공방전을 통해 드러나는 증거들을 살핀 뒤 심판을 내리는 레퍼리[주심]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오 씨에 대한 면회제한은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을 제약함으로써 당사자 대등주의 정신을 위배한 것이다. 물론 변호인 접견은 허용되었겠지만, 불리한 입장에 있는 피고인으로서는 누구보다도 가족의 조력이 아쉬운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