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검찰 조사


“嚴問(엄문)에 허위자백한 것입니다”

오, 두 씨는 서울지방검찰청 인청지청으로 송치된 바로 다음날 안길수 검사 앞으로 불려갔다. 안 검사는 12월31일 당직 중 정시화 씨 등 3명의 변사 보고서를 받아, 타살의 낌새를 차리고 경찰에 수사를 지시했던 바로 그 검사였다. 안 검사에게 접수된 인천경찰서의 의견서는 “…피의자들의 위 소위는 형법 제250조 (1)항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압수물 및 참고인 등의 진술과 피의자들의 사실시인으로 범증 인정되오니 각 기소하심이 상당하다고 사료됩니다”로 결론짓고 있었다.
1975년 1월10일 안 검사에게 불려간 오휘웅 피의자는 그때까지의 태도를 표변했다. 검사와의 일문일답을 본다.


문: 피의자는 이와 같은 범행을 하였다고 하였는데 사실인가요(이때 검사는 사법경찰관 작성 의견서 기재 범죄 사실을 읽어주다).
답: 저는 방금 읽어주신 바와 같이 상피의자인 남편 정시화와 그의 자식 정연홍, 정연경을 살해한 사실이 없습니다.
문: 그러면 피의자는 경찰에서 왜 그러한 사실이 있다고 하였나요.
답: 경찰에서는 嚴問(엄문)에 못 이겨서 허위로 자백을 한 것입니다.

문: 피의자는 1974년 12월30일 저녁에 두이분의 집에 간 사실이 있는가요.
답: 예. 밤 8시15분경에 두이분의 집을 찾아가서 그 집 점포 안에서 두이분을 만나 방안에서 따라다 주는 소주 3잔 분량의 플라스틱 잔으로 인삼주 1잔을 얻어 마시고 밖으로 나갔다가 동일 8시25분경에 다시 두이분의 집으로 가서 두이분이가 방안에 있어서 군고구마 50원어치를, 그 집 점포 안에 들어가 점포 안 쌀가마니 위에 얹어 놓고 그 즉시 방안에서 두이분이가 점포로 나와 그 고구마를 잘라 먹는 것을 보고 귀가하였습니다.

문: 무엇 때문에 두 번이나 두이분의 집엘 찾아가게 되었나요.
답: 당시 제가 다니는 일련정종불교회관에서 사진을 찾으러 가면서, 가는 길에 별일 없이 들렀고, 두 번째는 칠공주사진관에서 전국대표자회의 기념사진을 찾아가지고 오다가 군고구마를 사가지고 볼일 없이 들렀던 것입니다.
문: 당시 방안을 보았는가요.
답: 두 번 다 방안을 보지 못하였고 노란 전등불만 켜 있었습니다.
문: 더 할 말이 있는가요.
답: 없습니다.

오 씨는 간단하게 경찰 자백을 부인하고 말았다. “엄문 때문에 허위자백 했었다”는 게 부인의 이유였다. 嚴問이란 엄한 신문, 즉 가혹행위를 동반한 문초로 해석할 수 있겠다. 오 씨에 대한 신문이 간단하게 끝난 것으로 봐 검사는 예기치 못한 부인에 놀랐던 것 같다.
경찰에서 하는 자백은 법정에서 피고인이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지만, 검사 앞에서 하는 자백은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이 우리 법원이 판례다. 이런 판례는, 우리 사회의 知的(지적) 엘리트인 검사가 고문 따위를 동반한 무리한 수사를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오 씨는 경찰 유치장에 있을 때부터 “나는 검찰에 송치되면 풀려나온다”고 자신만만했었다고 한다. 그도 경찰만 벗어나면 자유로운 분위기 아래서 자백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고 그것을 실천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을 죽일 때까지도 사랑

오 씨와 같은 날 검사의 신문을 받은 두 여인은 경찰에서 한 자백을 시인한 뒤 아티반을 먹이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문: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나요.
답: 1974년 12월29일 2시경 인천시 숭의동 소재 한국일련정종불교회에서 귀가 도중 오휘웅과 함께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문: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죽였는가요.
답: 1974년 12월30일 17시30분경 본인이 동년 12월20일경에 전진약국에서 400원을 주고 산 수면제(아티반) 10정을, 사이다 1병을 사다가 거기에 타서 그들에게 먹이고 그 전에 인삼주를 마시고 있었던 정시화에게 진로소주 2홉들이 1병을 사다가 먹게 하여 정시화와 정연경은 잠이 들어 있었고 동일 20시10분 오휘웅이가 와서 정연홍은 잠이 들어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점포 안에서 집에 있던 인삼주, 소주잔 3잔 분량의 플라스틱 잔으로 1잔을 제가 주어 마시게 하고 오휘웅이는 혼자 밖에 나가서 얼마 후에 다시 들어와서 모두 잠들었냐고 묻고, 저는 점포 안에서 망을 보고 오휘웅이가 이제 처치해 버려야겠구나, 하고 혼자 들어가서 노란 등만 남겨두고 전등불을 끈 다음 저의 자식과 남편을 차례로 노끈으로 목을 조르고 식칼로 남편의 목을 찔러 모두 죽여 버린 것입니다.
문: 더 할 말이 있는가요.
답: 저를 죽여주십시오.

검사 1회 신문 나흘 뒤(1월14일) 두이분 씨는 다시 안 검사 앞에서 두 번째 신문을 받게 되었다. 이날 신문에서 두 여인은 주로 정시화 씨 및 오휘웅 씨의 관계에 대해 진술했다.


본인은 나이 22세 때인 1967년 3월1일 인천시 경동 소재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동년 8월경에 혼 인신고를 하였으며 중매결혼을 한 것입니다. 1967년 9월경 저의 장남 정연홍을 낳았고 1969년 12월경에 저의 장녀 정연경을 낳았는데 모두 본인이 낳았습니다. 결혼 초부터 생활이 어려워서 본인이 직접 나서서 화장품, 석유, 꿀, 참외, 오이, 고구마 장사를, 철을 따라 바꿔가면서 행상을 하였고, 남편 정시화는 결혼 전부터 왼쪽 다리 전체가 불구가 되어 가늘고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다리를 절어 노동하기에 힘들어 하였고 그래서 생활을 도우려고 여름이면 아이스케키 등의 행상도 하다가 거의 실업자로서 놀고 있었고 생활은 본인이 모두 꾸려나갔습니다.

서로가 별 싸움도 없이 원만하게 살아왔는데, 1972년도 말경에 숭의동 소재 교육대학 부근에서 하숙을 치다가 제대로 되지를 않아서 현주거지인 인천시 중구 선화동 30번지로 이사를 와서 1973년 1월 초순부터 40만 원에 점포 집을 전세 얻어 20만 원으로 미속상회를 남편과 같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그 전보다 술을 더 많이 먹기 시작하여 밤이나 낮이나 술을 마시고 양곡배달을 하면서 노상에 떨어뜨리고, 술에 취해서 배달도중 길에 던져버리고, 또 길에서 그대로 쓰러져 잠도 자고, 또 가끔 술에 취해서 밖으로 나가 쓰러져 있고 하여 항시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그를 뒤따라 다녀 봐야 하여서 제가 술을 마시지 못하게 말렸고 술을 못 마시게 잔소리를 한다고 심하게 구타는 하지 않았으나 자주 다투게 되었으며 날이 갈수록 술을 더 심하게 먹고 밖에서 얼굴 등을 깨여서 들어오고 그리고 술김에 수금한 돈을 낭비해서 그 일로 싸우면서 서로 성격도 맞지 않고 같이 살 수가 없으니 이혼을 하자고 1973년 초부터 가끔 그런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 8월 초순경부터 오휘웅이가 저를 좋아하고 자주 저의 집을, 같은 신자임을 빙자하여 찾아오고 또 그 무렵부터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저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저에게 정시화와 이혼을 하고 결혼을 해달라고 하면서 너무 저를 사랑해 주어서 저는 점점 정시화가 싫어지기 시작하였고 또 가끔 정시화와 다투면서 자주 이혼을 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이혼을 하여 자식을 하나씩 나누어 갖자고 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성 생활에 있어서도 정시화에 대하여 불만이 있었는데 1970년부터 정시화의 정력이 감퇴하여 1주일에 1, 2회씩 성교를 요구하였으나 저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먼저 자기의 성기가 시들어 일을 채 끝내지 못하는 것이었으나 현재까지 참고 살아왔습니다.
저의 자식에 대하여는 범죄를 할 때까지도 변함없이 애정으로 길러왔습니다.

모든 책임 오 씨에게 전가

1월15일엔 두 여인에 대한 3회 신문이 있었다. 여기서 두 여인은 아티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진술해 갔다.


1974년 12월29일 21시경 오휘웅과 같이 동 교회에 갔다가 귀가 도중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괴롭고 잠을 잘 수가 없고 집에 저녁에 늦게 들어가면 남편이 야단을 쳐서 제가 먹으려고 또다시 신경안정제 10정을 사 갖고 있다고 하였더니, 그러면 그 약을 내일 저녁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모두 먹이라고 하였는데 사건이 나고 생각해보니 저의 가족을 그 약으로 잠재워 놓은 다음에 그 기회에 살해하려고 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그 약을 먹여두라고 하였을 때에 제가 교회에 갔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늦게 온다고 화를 내고 야단을 쳐서 그 약을 먹고 자면 제가 늦게 와도 모르게 하기 위하여 먹이라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을 먹여 놓고 있으면 자기가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저녁에 제가 그 교회에 가든 가지 않든 저의 집에 들러 가곤 하였습니다.

두 여인은 1월9일 경찰에서 진술할 때는 “오휘웅이가, 수면제를 먹여 놓으면 내가 와서 처치하겠다고 해서 먹여 놓았다”고 했었다. 이날 진술에선 오 씨가 그렇게 명시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으며, 범행 뒤에 생각해 보니 오 씨의 교사대로 행동한 것임을 알았다는 취지로 변경했다.
그런데, 1월9일경 경찰에서 오휘웅 씨는 두 여인과 함께 신문받는 자리에서 두 여인의 말(오 씨가 두 여인에게, 아티반을 먹여 놓으면 처치하겠다고 했다는 진술)이 사실이라고 시인했었다. 검찰에서 두 여인은 경찰에서 한 그 말을 부인해버렸다. 그렇다면 오 씨는 경찰에서 자포자기적으로, 또는 강압에 의해서 자기에게 불리한 허위사실도 그냥 시인해버리고 있었다는 추리가 가능해진다.

1월16일엔 두 여인에 대한 네 번째 신문이 있었다. 안 검사는 범행을 부인한 오 씨에 대한 신문은 중단한 채 두 여인을 집중적으로 신문하고 있다. 그 사이에 오 씨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나중에 검토하기로 한다.
두 여인에 대한 검사의 네 번째 신문은 범행 부분에 집중되었다. 여기서 두 여인은 주목할 만한 진술들을 많이 했다.


문: 경찰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오휘웅은 1974년 12월29일 21시경 숭의동 소재 한국일련정종불교회 회관에서 귀가 도중 내일 저녁에 수면제를 모두 먹여 놓으면 자기가 와서 죽이겠다고 하여서 제가 수면제를 먹인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피의자는 前回(전회)의 진술에서 피의자의 남편과 자식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것은 그들을 살해하려고 잠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피의자가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라고 하는 줄 알았다고 하였나요.

답: 본인이 경찰에서 그와 같이 진술한 것은 사실이나 당시는 마음이 너무 괴롭고 수사관이 저의 사실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귀찮아서 그렇게 진술해 버린 것이고 사실은 당시 오휘웅이가 수면제를 저의 남편과 자식들에게 먹여 두라고만 하였는데 당시 저의 생각에는 제가 저녁 늦게 교회에서 돌아오면 남편이 항상 신경질을 내면서 야단을 쳐서 수면제를 먹여 놓으면 본인이 늦게 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수면제를 먹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사건이 난 후에 오휘웅이가 저의 가족을 살해하기 위해서 한 하나하나의 행동을 종합해보니 오휘웅이가 저의 가족을 살해시키려고 먼저 수면제를 먹이라고 한 것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두 여인은 또 범행과정을 설명하면서 “(오휘웅이가)그 즉시 다 처치해 버려야 된다, 불을 꺼버리라”고 하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고 진술, 살인 그 자체도 오 씨의 자의적 행동인 것처럼 설명하여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남편과 두 자녀가 죽은 것을 확인한 뒤엔 “이제는 할 수 없구나, 자수를 하면 나도 오휘웅에게 죽을 것 같아서 강도가 들어와서 살해한 것으로 꾸미리라 각오하고…” 20만 원 사기설을 퍼뜨리고 다녔다고 했다. 살인에 자신은 수동적 입장에 있었음을 강조하다가 한발 더 나아가 ‘오 씨의 위협’까지 들고 나와 자기의 범행 은폐기도를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20만 원 사기운운'은 두 여인이 사건이 나기 보름 전부터 이웃에 퍼뜨리고 다닌 거짓말이므로 오 씨가 시켜서 그랬다는 이 진술은 허위다.
이런 모순된 진술도 하고 있다.


문: 당시 오휘웅이가 다 처치해버려야 된다고 하였는데 당시 피의자도 남편과 자식을 모두 죽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나요.
답: 본인이 귀청에 써낸 저의 진술서에도 말했지만 저의 남편만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설마 저의 자식들까지 죽이겠느냐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자식까지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문: 오휘웅이가 당시 살해할 때에 피의자가 도와준 것은 무엇인가요.
답: 본인은 오휘웅이가 방에 들어갈 때 점포의 불을 시키는 대로 꺼주고 점포 출입문을 잠그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문: 그러면 피의자의 가족을 살해한다는 것을 언제 알았는가요.
답: 오휘웅이가 다 처치해버려야 된다고 하고 불을 꺼달라고 하였을 때입니다.

두 여인은 경찰에서 오 씨와 같이 사는 데는 아이들이 방해가 되기 때문에 죽일 결심을 했다고 말했었다. 이날 신문에서도 아이들에게 아티반을 사이다에 타서 먹였다고 시인했고, 오 씨가 “다 처치해버려야 한다”고 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남편만 죽일 줄 알았다는 허무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여인은 오 씨에게 노끈을 던져주었다는 경찰에서의 진술도 부인했다. 노끈, 식칼, 톱날칼, 마후라, 넥타이 등 범행도구는 모두 오 씨가 “있는 곳을 평소부터 익히 알고 있어서 자기가 꺼내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고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