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씨를 저주한 두 여인

검사가 “오휘웅은 검찰에 와서 그런 범행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요”라고 묻자 두 여인은 이렇게 답했다.
“이제 와서 자기만 살 욕심으로 모든 것을 저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하는 생각이고, 틀림없이 저와 오휘웅이가 같이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와서 쓸데없이 변명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되며, 또 이제까지 그를 위해서도 여러 가지로 벌을 덜 받게 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지금 생각하니 괘씸하며 너무 비인간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와 같이 책임을 지고 처벌을 같이 받으려고 칼이나 노끈을 주거나 한 사실도 없으면서 그 사람이 진술하는 대로, 그렇다고 해주었던 것입니다.”

두 여인은 1월4일 경찰 신문에서는 “그(오 씨)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고 앞으로 형을 받고 나올 수 있다면 같이 살 생각입니다”고 했었다. 남편과 아들을 죽인 바로 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 두 여인은 이제는 저주를 하고 있다. 이 심경 변화의 원인은 오 씨의 범행부인이었다(그는 범행책임을 두 여인에게 떠넘기는 진술은 하지 않았는데, 두 여인은 오 씨의 범행부인을 자기에의 책임전가로 받아들이고 흥분했던 모양이다).

오 씨가 “같이 했다”고 할 동안에는 그를 계속 사랑한다던 두 여인은, 오 씨가 공범을 부인하자 증오로 돌아선다. 한 순간에 사랑이 미움으로 바뀐 것이다. 정말 오 씨가 범인이라면, 즉 앞길이 창창한 총각의 몸으로 남편, 자식 다 딸린 가난한 유부녀와 같이 살기 위하여 살인을 했다면, 설사 살려고 범행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노골적인 저주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 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또 그 사실을 두 여인이 잘 알고 있다면, 실은 두 여인의 단독범행이라면, 오 씨가 두 여인을 대신하여 살인의 책임을 떠맡은 진술을 할 때, 그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과 연민의 정을 갖고 있다가, 그가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하자, 나름대로의 배신감과 외로움, 그리고 모든 책임을 혼자서 지고 가야 한다는 당혹과 공포로 해서 오 씨에 대한 미움이 불타기 시작했다는 추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심리는 너무나 변화무쌍한 것이므로 그런 추리는 다른 정황이나 증거와 함께 판단해야 할 하나의 자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사랑이 미움된’ 두 여인의 이 심리는 이 사건의 진실의 문을 여는 하나의 열쇠임에는 틀림이 없다.

“시간 고쳐라고 했다”

안길수 검사는 경찰에서 참고인 신문을 받았던 여러 증인들도 다시 불러 조사했다. 대체로 경찰에서 한 진술을 되풀이했다. 이 진술들 중에는 애매한 내용도 더러 있었다.
정시화 씨의 형 정봉화 씨는 경찰과 검찰에서 똑같이 진술하기를 범행 당일 밤 8시30분께 시화상회에 들렀었다고 했다. 쪽문을 열려고 당겼으나 안으로 잠겨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점포에도 불이 없고 방안에도 불이 없어 캄캄했다”는 것이다.

8시30분이면, 오․두 씨의 경찰진술에 따르면, 범행진행 중의 시간이다. 두 사람은 또 범행 중 문을 당기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또 범행 중 다른 불은 껐지만 방안의 노란 전등은 켜두었었다고 했다. 실내구조(가게와 방 사이의 문에는 유리창이 붙어 있다)로 보아 그랬었다면 정봉화 씨가 문틈으로 들여다봤을 때 방안이 캄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방 밖의 가게가 불이 꺼진 상태였다면 방안의 노란 불빛이 새나오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경찰은 오 씨의 진술과 정봉화 씨의 진술이 부합하는 점을 강조하여, 오 씨의 진술이 다른 부분에서도 신빙성이 있어 보이게끔 하려고 했지만 진술내용을 따져서 비교해 보면 이처럼 서로 엇갈리는 부분이 발견되고 정 씨의 증언을 믿는다면 오히려 오 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게 된다.

사건 당일 밤 오 씨 집에서 있었던 일련정종 교인들의 좌담회 참석자인 송안섭 여인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을 때는 “좌담회가 그날 밤 9시10분경에 끝났는데 오 씨가 중간에 들어온 시간은 거의 다 끝났을 때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월22일 송 여인은 검사 앞에서 다시 같은 질문을 받았다.
“좌담회를 마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계속 공덕담을 하고 있어서, 지루한 생각이 들어 시계를 보았더니 밤 9시10분경이었습니다. 그 후 약 15분 내지 20분이 지나서 좌담회를 마치고 오휘웅이 보여주는 서울 문화재회의 기념사진을 구경하고, 그로부터 불교지도를 받고 난 다음 오 씨가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답한 송 씨에게 안 검사는 “동일 저녁 진술인이 오휘웅을 처음 본 것은 언제쯤인가요?”라고 물었다.
“오휘웅이가 좌담회에 들어와서 신도의 질문을 4명 받아 가지고, 2명으로부터 공덕담을 들었던 것으로 보아 동일 오후 21시40분경으로 생각되나 정확한 시간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송 씨의 진술기록은 앞뒤 모순이 심하다. 경찰 진술과도 너무 다르고, 같은 검찰 신문조서 안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다. 오 씨가 좌담회 중에 들어왔다고 해놓고, 그 시간을 21시40분이라고 했다. 21시40분이면 좌담회가 끝난 훨씬 뒤가 아닌가.

문제는 이런 모순된 시간 증언 ‘21시40분’이 검찰조서에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진술서 끝에는 미리 인쇄된 ‘위의 조서를 진술자에게 읽어준바 진술한 대로 誤記(오기)나 증감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무인케 하다“고 적혀 있고 송 씨의 서명과 손도장이 찍혀 있다.

송 씨의 모순된 증언에 대해 검사가 지적한 구절은 없다. 그렇다면 21시40분이란 기록은 기록자의 실수인가. 그렇다면 그 잘못된 기록을 읽어주었는데도 송 씨는 그냥 손도장을 찍은 것일까. 엉겁결에? 무턱대고? 분위기가 무서워서? 아니면 송 씨의 횡설수설을 수정 없이 그대로 기록한 것인가, 아니면 21시40분이란 진술내용을 읽어주지도 않았단 말인가. ‘21시40분경’이란 기록이, 그것도 오 씨의 부재증명 여부에 핵심적인 증언이 되는 진술이 조서에 실리게 된 배경을 안다면 그때의 신문․수사 분위기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984년 8월 나는 송 씨를 만나 물어보았다. 도수가 높은, 두꺼운 렌즈의 안경을 낀 송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글을 잘 읽지 못해요. 경찰에서 제가 진술한 것을 적었다가 읽어주는데 뭐라고 하긴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중요한 것인 줄도 몰랐고요.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는 어떤 사람이 조서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읽어보더니, 부하인 듯한 사람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되니 시간을 고쳐라”고 명령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명령한 사람을 재판정에서도 만났습니다.”

어리숙해 보이는 송 씨는 요컨대 자기가 말한 내용이 조서에 정확히 기재됐는지 확인해 볼 만큼 대가 차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분명히 검찰에서 오 씨가 밤 8시30분에 집으로 와서 좌담회에 참석하는 걸 보았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21시40분이란 조서기재 내용은 20시40분의 착오로 보이는데, 중요한 것은 21시40분이란 시간이 기록될 수 있었다는 수사 분위기다.

두 여인, 살해 계획의 부인을 시도

안길수 검사는 1월22일엔 두이분 여인에 대해 다섯 번째의 신문을 했다. 이날 두 여인의 진술에 나타나는 특징은 오 씨에 대한 책임전가가 전회 진술 때보다 더욱 심해졌다는 점이다.

두 여인은, “오 씨가 그날 밤 7시20분쯤에 처음 나타나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아티반을 먹인 사실을 확인한 뒤, 인삼주 한 잔을 받아 마시고 나서 말하기를 ‘지금 다 해치워야 된다. 앞집 삼성라사에 가서 텔레비전 3대를 가져오기 위해 며칠 전에 남편이 20만 원을 친구한테 주었는데 가져오지를 않는다고 말을 해두라’고 하고 나갔으며 시킨 대로 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조작이다. 이 거짓말의 구조는 분석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먼저 오 씨가 처음 나타난 시간을 밤 7시20분이라고 한 것이 흥미롭다. 그때까지 두 씨가 진술한 오 씨의 첫 번째 방문시간은 진술 때마다 다른 차이가 있으나 거의가 8시에서 8시20분 사이다. 객관적 증거로도 이 시간대에 오 씨가 나타났던 것은 틀림없다. 더구나 전회진술(1월16일)에서도 두 여인은 밤 8시10분경 오 씨가 첫 번째로 시화상회에 들어섰다고 했었다. 그런데 왜 이번엔 그 시간을 한 시간이나 앞당겼을까?

이 거짓말의 두 번째 조작은 오 씨가 첫 번 방문 때 “다 해치워버리겠다”는 말을 했다는 부분이다. 그때까지 두 여인은 시종일관 오 씨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두 번째 방문 때였다고 진술했었다.

세 번째 조작은 오 씨가 맨 처음 나타나자마자 두 여인에게 ‘20만 원 사기설’을 퍼뜨리도록 시켰다는 부분이다. 위의 두 가지 조작은 이 세 번째 조작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작인 것 같다.

두 여인의 이날 진술 나흘 전인 1월18일 안 검사는 삼성라사 주인 이옥련 씨를 불러 다시 신문조서를 받았다. 이 자리에는 이 씨는 경찰에서는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했다. 즉, 사건 당일 오후 7시경 두이분 여인이 삼성라사로 건너오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예의 그 20만 원 사기 사건을 이야기하고, 남편이 속이 상한다고 술을 한 병 사오라고 하여 소주를 사다 주었으며, 자기도 사이다 한 병을 사다 먹었는데 토해버렸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갔다고 진술했다. 이 씨는 경찰에서는 8시40분경에 두 여인이 들려 20만 원 사기 운운하는 이야기를 했다고만 진술했었는데, 실은 그보다 1시간40분가량 전에도 들러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갔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 씨의 이 진술은 이틀 전 두 여인이 한 진술, 즉 자기는 오 씨가 살인하는 것을 방관만 했다는 변명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씨의 진술로 미루어볼 때 오 씨가 두 여인 집에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두 여인은 범행을 결심, 강도로 위장하기 위한 전초잡업으로 ‘20만 원 사기설’을 퍼뜨리고 다녔다. 뿐 아니라, 남편에게 술을 사다 준 사실과 그 이유도 미리 말해 두었고, 사이다를 마시고 부작용이 생겼다고 하며 아이들의 변사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꼬투리를 뿌려놓은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두 여인의 측에서 치밀하게 오래전부터 계획하여 온 범죄라는 것이 된다.

이날 5회 신문에서 한 두 여인의 조작된 진술은 이옥련 씨의 그런 진술에 대한 반격으로 풀이된다. 오 씨의 1차 방문시간을 7시20분까지 끌어내림으로써 두 여인이 7시 직후 삼성라사에 나타나 20만 원 사기 운운한 것이 실은 오 씨가 1차 방문 때 한 지시에 따른 것임을 보이려 한 것이다.
1시간을 앞당긴 거짓말이 워낙 무리라서 두 여인의 이날 진술대로라면 오 씨는 오후 7시30분부터 8시 사이에 범행을 했다는 얘기가 되어 오 씨의 무고함을 말하는 게 되고 만다(그 시간에 오 씨는 불교회관에 있었음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