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은 또 전회 진술에서처럼 오 씨가 아이들까지 죽이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휘웅이는 딸은 시집을 가면 그만이지만 아들은 크면 복수를 하여 후환이 있으니 뒤를 깨끗이 한 후에 결혼을 하자고 한 일이 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오휘웅이가 그때 이미 남편과 아들까지도 살해할 마음을 먹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두 여인은 신경안정제를 남편과 아들에게 먹인 데 대해서도, 오 씨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남편과 아들을 죽이려고 그렇게 시켰던 것 같다”고 했다.
두 여인의 이 진술이 거짓이란 것은, 자기 손으로 남편에게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아티반을 먹여 놓았다는 것으로 입증된다. 두 여인의 살의가 없었거나, 아이들을 죽일 마음이 없었다면 미리 아이들에게 아티반을 다량으로 먹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두 여인은 자기가 교회에 갔다가 늦게 돌아오면 남편이 신경질을 부리기 때문에 아티반을 먹여 잠재워 놓았다고 했는데, 그날 두 여인은 교회에 가지도 않았다. 경찰 2회 신문에서 두 여인은 오 씨가 왔을 때 “나는 교회나 큰집으로 가기 위해 문을 닫고 있었다”고 했었다.
그러나 아티반을 먹인 사실이 들통 난 이후에는 큰집은 빠져버리고 “그날 교회에 가려고 문을 닫아서…”로 진술내용이 바뀐다. 이것은 아티반을 먹인 이유를 “교회에 가기 위한 것으로” 설명하기 위한 변경이 분명하다.
검찰에 넘어와서 두이분 여인의 진술이 바뀐 부분이 또 있다. 경찰에서 두 여인은, 범행 직후인 오후 8시40분께 신흥시장 입구에서 오 씨를 만났는데, 오 씨는 뒤처리를 잘하라고 하더란 것이다. 두 여인은 검찰신문에선 이 대목을 줄곧 빼먹고 있다. 신문 기록에서 이 만남의 장면이 실종되어버린 이유를, 서류상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아무도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월22일 5회 진술에서 두 여인은 또 다시 오 씨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문: 오휘웅은 현재까지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요.
답: 아닙니다. 그 사람은 틀림없이 제 앞에서 저의 남편과 자식들을 죽였습니다. 그 사람의 양심이 그렇게까지 야비하고 거짓말을 하면서 모든 것을 저에게만 미루어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오휘웅이가 그러한 범행을 한 사실이 없다면 왜 저를 좋아했고 제가 좋아하던 사람을 제가 이렇게까지 범행을 같이 하였다고 우겨대겠습니까. 지금은 자기 혼자만 살아보겠다는 욕심으로 양심을 속여 가면서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문: 오휘웅이가 범행을 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요.
답: 그 사람이 당시에 와서 군고구마를 사다 주고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방에 들어가서 죽였고, 다 죽였으니 뒤처리는 모두 알아서 하라고 하였으며, 강도살인인 양 소문을 내라고 텔레비전 값 20만 원 운운하면서 거짓말을 하도록 하게 한 것도 그 사람의 입으로 시킨 것입니다. 본인이 경찰에서나 검찰에서 범행 사실을 모두 시인하고 진술한 것이 충분한 증거가 된 줄 믿고 있습니다.
문: 더 유리한 증거나 진술이 있는가요.
답: 제가 검찰에 송치되기 바로 전날 유치장에서 오휘웅과 서로 마주보고 방을 정해 있었는데, 자기의 옆방에 있던 청년이 화장실에 갔다 오는 것을 불러서 저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하니까, 그 청년이 저에게 와서 “법원에 가서 말 잘해달라”고 전해주었고, 그러고 송치되던 날 아침에 오휘웅이가 자기의 방 벽에 손가락으로 “내가 죽고 사는 문제는 두이분에게 달렸다”라고 써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가 모든 문제를 저에게 미루어 버리는구나 생각을 하였고, 자기 혼자서 살려고 애를 쓰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1975년 1월17일 본인과 오휘웅이가 검사님 앞에서 대면을 하였을 때 본인이 오휘웅에게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저질로 놓고 왜 이제 와서 변명을 하느냐”고 하였는데, 그 말에 대하여 감정을 품고 동일 저녁 인천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저에게 “말 잘해줘서 고맙소. 편히 쉬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마땅히 죽어야 될 몸이나 오휘웅은 검찰에서 끝끝내 부인하는 것을 보면 모든 범행을 저에게만 책임을 돌리려고 하고 있고, 자기의 양심을 뻔뻔스럽게 속이면서 억지로 태연한 태도를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니 그를 죽이고 싶도록 얄밉고 괘씸하며, 이제는 그가 보기도 싫습니다. 아주 악독한 사람이니 그를 꼭 죽여주십시오. 그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오휘웅의 자술서
한편 오휘웅 씨는 1월10일 1회 신문에서 범행을 부인한 뒤 열흘 동안 인천 소년교도소에서 그냥 있었다. 1월17일부터는 가족과의 면회가 금지 되었다.
1월21일 비로소 오 씨는 기록에 등장한다. 이날 그는 자술서란 걸 썼다. 범행 날의 행적을 쓴 것이다. 이 자술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고함을 변명하는 입장에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경찰과 검찰에서 오 씨가 쓴 자술서나, 말한 진술서는 검찰 1회 진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범행을 시인하는 전제 하에서 작성된 내용이었다. 1월21일의 자술서는 계속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오 씨가 주장하는 ‘진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때까지의 조서가 수사기관 측의 진실이었다면 이에 대치되는 피의자 측의 진실이 나타난 것이다.
저는 1974년 12월30일 오전 7시경에 일어나서 세면하고 7시30분경부터 8시20분까지 근행을 올리고 8시40분경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50분경에 집을 나와서 수인역 버스정류장까지 나와서 도자기 들어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주안에서 내려서 남구청 수도사업소에 9시10분경에 도착하였습니다.
9시30분부터 작업에 임하여 최석봉 씨와 함께 향군초소에서 카드 정리를 하고 있다가 11시30분경 용현동 및 숭의2동 방면으로 검침 작업을 나갔습니다. 작업을 끝마치고 오후 5시경 수도사업소로 돌아와서 작업 나갔던 경과보고를 최석봉 씨한테 한 뒤 오후 6시경부터 연말 망년파티가 있다고 해서 최석봉 씨와 함께 향군초소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6시가 조금 지나 약 20분가량 후에 파티가 열렸습니다. 그때 저는 최석봉 씨와 같이 술좌석에 참석하여 약주술을 야외용 컵 작은 잔으로 약 5컵 정도의 술을 마시고 나오려고 하니 최석봉 씨가 술 조금 더 하고 서로 인사와 얼굴도 알 겸 놀라고 하기에 그 자리에서 동료들이 권하는 술잔을 3컵 정도를 더 마시고 향군초소로 나와서 최석봉 씨에게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우리 내일 만납시다”하고 오려니까 최석봉 씨가 “원 집에 좋은 것이라도 있느냐” 하면서 최석봉 씨는 사업소 안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을 때 저는 발길을 옮겨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시간으로 약 오후 6시45분 내지 50분이 다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공고 입구까지 걸었습니다. 걸어갔다가 다시 선배님의 구두를 맞춘 잔돈 500원을 못 주었기 때문에 그 돈을 줄 겸해서 주안까지 올라왔으나 그 선배님도 안 계시 길래 저는 ‘그럼 내일 종무식 할 때 찾아 주어야지’ 이렇게 마음먹고 주안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숭의동 장안극장 앞에서 내렸습니다.
거기서 숭의동 삼륜주차장 앞 인송살롱 3층 회관에 들어갔을 때 회관벽시계가 7시20분을 가리키고 있더군요. 그때 회관에는 많은 신도들이 제목을 봉창하고 있었으며 저도 맨 앞에서 여러 신도들과 제목을 같이 불렀습니다. 얼마를 부르고 있으니까 술이 확 올라오더군요. 그때 저의 뒤에 앉은 아주머니(이옥룡)가 술냄새가 확 풍긴다고 하길래 “죄송합니다” 하면서 그 자리를 일어나서 사무실로 들어갔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사무장님이 계시더군요. 거기서 사무장과 담배를 피우면서 각 지구 교재대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시간을 보니 오후 8시5분이 다 되더군요. “사무장님, 저는 먼저 실례합니다” 하면서 사무실을 빠져나왔습니다. 회관을 나와서 오후 8시10분경 두이분 씨 댁을 들러 보니 두이분 씨가 부엌에서 일을 하더군요. 저가 두이분 씨보고 “어떻게 오늘 아무데도 안가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두이분 씨가 조그만 커피 잔으로 방안에 들어가서 저도 모르게 인삼주를 한 잔 따라주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술을 안 먹는다고 하니 두이분 씨가 그 술을 버리겠다고 해서 그 술을 받아먹었습니다. 그 술을 받아먹고 곧바로 칠공주사진관을 들어갔습니다. 사진관에 들어갔을 때는 오후 8시20분경이 되었습니다. 사진을 찾고 보니 잔돈 50원이 남았습니다.
잔돈 50원을 가지고 신흥동파출소 앞 군고구마 장수한테 군고구마 3개 50원을 주고 사서 집에 가는 도중 고구마 3개라도 주고 가야지 하고 고구마 봉투째 그대로 두이분 씨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두이분 씨가 군고구마 한 개를 집으면서 반을 갈라 저를 주길래 “나는 그런 것 먹지 않습니다” 하며 반을 자른 고구마의 껍질을 벗겨서 주면서“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오려고 하니 두이분 씨가 하는 말이 “오늘 저녁 20만 원 꿔준 사람이 돈을 가지고 오면 시어머니와 같이 큰집에 가기 때문에 아무데도 못 갔습니다 ”하고 말을 하더군요.
그래요, 그럼 빨리 가보세요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뒤 곧바로 집으로 향하여 좌담회 집회를 보았습니다. 그때 방안의 괘종시계가 8시30분을 가리키고 있더군요. 그때 용현지구부장인 이석홍 씨를 모시고 송안섭 신흥지구 담임을 모신 자리에서 회합을 열었고 오후 9시가 넘어 9시15분경 좌담회가 모두 끝나고 일부는 집으로 귀가를 하고 일부는 남아서 9시40분까지 질문을 하면서 대화를 피웠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하니 손님들이 전부 일어서더군요. 손님을 배웅하고 나서 저녁 조금 먹고 곧바로 저의 건넌방으로 건너와서 동생들을 깨워 안방으로 보내고 저는 술김에 바로 이불을 덮고 잠에 들어갔습니다.
얼마만큼이나 잤을 무렵 바깥 덧문을 계속 두드리더군요. 잠에서 깨어나 “누구요” 물으니까 “인천경찰서에서 왔습니다” 하고 찾더군요. 그때 어머니도 같이 나오셔서 어머니가 저에게 두이분 씨네 사고가 났다고 해서 무슨 사고냐고 물으니 어머니도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때 나는 옷을 입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가리키더군요. 어머니께서도 30일 밤 오후 11시경 파출소 및 도립병원에 갔다가 오후 12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왔다고 하시더군요.
그때 저는 형사진과 같이 새벽 2시에 신흥파출소에 도착해서 조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조서를 받으면서 형사분들이 살인사건이니 경찰에 협조를 해달라고 하기에 그때 저도 처음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975. 1.21
자술인 오휘웅
범행시간과 귀가시간
오 씨의 이 자술서 내용과, 그동안 범행을 시인하면서 진술한 내용을 비교했을 때 다른 부분은 시간이다. 즉, 오 씨가 그날 밤 두 번 두 씨 집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이 자술서에서는, 두 번째 두 씨 집에 들른 뒤 바로 집으로 향해 8시30분에 집에 도착, 좌담회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자백진술을 할 때는 두 번째로 두 씨 집에 들렀을 때 살인을 하고 오후 9시5~10분경에 집에 도착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오 씨 집에는 교인들이 수십 명이나 모여 오 씨의 귀가를 목격했었고, 그 기억이 생생할 때, 즉 불과 이틀 뒤 오 씨가 경찰에 연행됐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 교인들을 모두 불러서라도 증언을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조서는 송안섭 씨 한 명만 조사한 것으로 돼 있고 진술내용의 기록도 혼란스럽다. 좀 더 똑똑한 교인들을 신문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같은 문제로 기자가 취재를 했더라면 적어도 대여섯 명의 교인들을 만나 시간을 물어보고, 따져보고 했을 것이다.
교인들이 설사 오 씨 편에 있다 하더라도, 이 교인들의 기억은 훌륭한, 때로는 결정적인 수사자료이고, 인간의 생명에 관계되는 문제인 만큼 더 면밀한 목격자 조사가 있었어야 했다.
오 씨의 자술서와 비교할 만한 진술이 있다. 그것은 두이분 씨에 대한 제1회 경찰 신문조서의 전반부다. 여기서 두 씨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이 다 같이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진술한 내용을 비교해보자는 것이다.
│ 오휘웅 자술서 │ 두이분 자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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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화상회에 오氏가 처음 8시10분경 8시가 다 되어 설거지할 때
나타난 시간
2. 이때 머문 시간 ——— 약 10여 분
3. 오氏가 시화상회를 나와 8시20분경 ———
사진관에 들른 시간
4. 시화상회에 오氏가 ——— 오氏가 나간 지 10분 가량 되어,
두 번째 나타났을 때 시간 즉 8시10여 분+10분=8시20분경
5. 오氏의 귀가시간 8시30분 ———
위와 같이 대비해 보면 두 사람의 시간 관계 증언의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 일치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두 사람이 범행 뒤 미리 말을 맞추어 놓았다는 추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사전 타합의 증거는 없고, 그렇게 할 시간도 없었다. 범행 뒤에는 두 사람이 만난 사실도 없다(오후 9시에 신흥지물 앞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는 한때 나왔다가 사라져버림).
둘째, 두 사람이 기억대로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란 추리다. 특히 오 씨는 범행을 시인하는 과정에서도 숭의동 회관을 떠날 때부터 시화상회에 두 번째 나타날 때까지의 시간별 행동을 거의 일관되게 진술하였다.
적어도 오 씨가 두 번째로 시화상회에 나타난 시각은 8시20분대, 조금 더 좁히면 오후 8시25분 전후라고 봐서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여러 가지 구구한 시간 증언 가운데 ‘8시25분 전후’는 하나의 준거가 될 수 있다.
그 다음 준거로는 삼성라사 주인 이옥련 씨의 증언, 즉 오후 8시40분께(이 씨의 동생은 8시35분경이라고 진술) 두 씨가 손에 피를 묻힌 채 삼성라사에 나타났다는 진술이다. 이 증언이 맞다면 8시25분 전후~8시40분 사이에 3명의 살해가 이뤄졌다는 얘기가 된다. 15분 사이에 과연 세 사람을 차례로 목 졸라 죽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범인이 오, 두 씨 중 누구든 간에). 이 문제는 삼성라사에 두 씨가 나타난 시간 문제와 함께 더 검토해 봐야 할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