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말을 믿느냐로 생사 판가름

재판부가 오휘웅 피고인에게 죽음을 선고한 논리의 구조는 말이란 벽돌로써 만들어진 建造物(건조물)이다. 유죄의 증거로 삼은 것들 중에는 사체검안서나 군고구마 조각, 노끈, 식칼 등 형상물이 있기는 했지만, 어느 하나도 오 씨가 범인임을 확정짓는 힘을 갖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두이분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해도 다 그 방향으로 돌려질 수 있는 소도구들에 불과했다.

재판부가 유죄의 증거로 채택한 ‘말들’은 ① 오 피고인의 자술서나 진술조서에 나타난 자백부분, ② 두 피고인의 진술과 자술서, ③ 정기섭 수사과장과 오 씨의 대화 녹음, ④ 엄인환 씨의 현장목격 증언, ⑤ 이옥녀 씨의 두이분 씨의 손가락에 묻은 피에 대한 증언, ⑥ 송안섭 씨의 오휘웅 귀가시간에 대한 증언, ⑦ 이주순, 지광남 씨의, 생전에 두 피고인이 남긴 말에 대한 증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말들’은 오, 두 씨가 한 말과 증인이 한 말로 대별된다.

증거가 된 이 수많은 말들 가운데서도, 오 씨가 범인이 아닐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을 가진 말은 하나도 없다. 오 피고인의 자백진술이 핵심부분에서만 수십 번 바뀌고, 현장상황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지적한 대로다. 두 씨의 진술도 여러 번 오락가락하고, 거기엔 명백한 거짓말이 너무나 많다. 엄 씨의 현장상황 진술과 양피고인의 진술도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다. 이옥녀 씨의 진술은 오히려 두 피고인에게 살인의 의심을 던진다. 이, 지 씨가 증언한, 생전의 두이분 피고인이 남겼다는 말이 각색 없이 전달된 것이라 해도 수사과정에서 워낙 많은 위장진술과 거짓말을 한 사람의 말에 불과하다. 녹음은 유죄증거가 아니라, 보는 이에 따라선 무죄증거가 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필자에게는 지리멸렬의 극치로 보이는 이 말들이 오 씨에게 사형을 안겨줄 만큼 힘이 있었던 것은, 재판부가 그 말들을 ‘믿기로 했다는 점’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이 누구 말을 믿든지, 그것은 오 씨의 신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지만, 판사가 어느 쪽 말을 믿는가에 따라서는 인간의 생명이 죽고 산다. 이 재판은 인간의 생명이 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진 경우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판사가 피고인의 생사에 관한 ‘專斷的(전단적) 권한’을 가진 경우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일련정종교도 송안섭 씨의 경찰, 검찰, 법정 증언 가운데서 경찰 및 검찰에서 한 증언만 증거로 채택했다. 법정에서 한 송 씨의 증언은 오 씨의 귀가시간을 오후 8시30분이라고 하여, 그의 알리바이를 거의 성립시킬 만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 증언을 못 믿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송 씨와 함께 ‘8시30분 귀가’를 주장했던 이석흥 씨의 증언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배제해 버렸다.

만약 여기서 재판부가 이석흥 씨의 증언을 신빙성 있다고 판단했다면, 다른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오 씨의 무죄를 선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다른 증거들의 증거능력이 한 마디 말에 의해서 무력화 될 만큼 허약하다는 얘기다. 한 인간의 말을 믿기로 하느냐, 안 믿기로 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생사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물증 없이 정황증거만으로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모험인가.

“참 고민 많이 했어요”

나는 1984년 8월 서울 서소문에서 그때는 변호사를 개업하고 있던 김진우 당시 재판장과 오랫동안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김 변호사의 얘기는 그 요지가 대충 이러했다.

“그 사건으로 참 고민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그 판결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 사건은 처음부터 자백 중심으로 돼 있었고 수사도 잘 돼 있지 않아 판결에 애를 먹었습니다. 오휘웅 피고인이 꼈다는 장갑의 행방에 대해서도 수사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선고 단계인데 수사를 다시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선고를 내린 뒤 항소심 재판장한테 제가 찾아갔습니다. 1심에서 합의를 하기는 했는데, 2심에선 더 잘 살펴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녹음테이프(수사과장―오휘웅 대화)를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그 사건은 유죄, 무죄의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두이분 피고인은 오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니까 흥분하여 막 열변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여자가 자살하는 바람에 판결은 더 어려워졌지요.

오휘웅이 무죄라면 결국 두이분이 세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인데 여자가 과연 혼자 힘으로 세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남편을 죽일 수 있다 해도 아이들까지 죽일 수 있는가 하고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노인들한테도 물어 보았는데, 여자가 그럴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 사건이 항상 마음에 걸려요,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기록상으로도 유죄가 안 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배석 판사들과도 토의를 신중히 했는데, 증거법상으로는 유죄가 아니냐 하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재판이란 건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제도가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제도의 규칙을 안 따를 수가 없지요. 神과 제도는 같을 수는 없지요. 신은 완벽하지만 제도는 그럴 수 없습니다. 법정에서 오 피고인의 태도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재판부에 신빙성을 줄 수 있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어요. 항소심에서도 그랬던가 봐요. 1심까지는 줄곧 두이분 피고인과의 간통사실을 인정하다가 2심에 가서는 이것도 딱 잡아뗐어요, 잘되길 바랐는데….”

인간의 생명을 걸고 모험할 수야…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선 상고심보다 항소심이, 항소심보다는 1심이, 1심보다는 검찰수사가, 검찰수사보다는 경찰수사가 더 중요하다. 검사는 경찰의 수사자료에, 1심 판사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항소심 판사는 1심의 경과에 의해 판단상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최후심인 상고심에 가면, 이미 사실 판단의 정확성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고, 법리 적용의 정당성 여부가 쟁점이 되는 것이다.

오휘웅 씨의 사건은 가장 기본이 되는 초동 수사에서부터 엉망이 돼 있었으므로, 김진우 1심 재판장의 실토대로 선고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최근에 이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 보니, 인천경찰서의 당시 강력반 형사들은 그 지역반 형사들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하고 검사는 같은 논리로 경찰을 비난했으며, 1심 재판장은 경찰․검찰의 엉성한 수사를 비판했다. 재판이 좋은 작품이 되려면 형사, 검사, 판사. 변호사가 다 같이 본분을 지켜야 하는데 말이다.

한편, 이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수사가 잘못되어 판단상의 자료가 충분하지 못했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의심 가면 무죄’란 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면 되지 않았을까. 물론 피고인의 인권만큼 피살자의 인권도 중요하므로 어떻게 하든지 범인을 골라내 벌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확신이 서지 않은 피고인에게 모험을 해서까지 사형을 선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설사 범인이 아닐 확률이 10분의 1이라 해도 인간의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