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봤다”

사건 날 좌담회에 있었던 이석홍 씨는 이날 증언에서 1심에서와 같이 오 씨가 8시30분경에 귀가하여 좌담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문: 신도들의 참석한 시간을 확인하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요.
답: 그런 이유는 없으나 중간에 오면 시계를 봅니다.
문(재판장): 피고인이 참석한 시간을 기억하려고 한 일이나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없단 말인가요.
답: 예, 그렇습니다.
문: 증인이 피고인이 참석한 시간이 오후 8시30분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한 것은 이 사건이 나자 당시 상황을 종합하여 보니 오후 8시30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요.
답: 당시 ‘간부가 왔으면’하고 기다리던 중에 간부인 피고인이 와서 시계를 보아 알았습니다.

“시간증언의 변경을 요구받았다”

이어서 1심에서도 증언했던 송안섭 씨가 나섰다.

문(변호인): 그때 피고인은 몇 시경 좌담회에 참석하였나요.
답: 20시30분에 참석하였습니다.
문: 그때 피고인의 태도가 이상하지 않던가요.
답: 평소와 다른 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문: 원심에서 한 증언은 사실과 틀림이 없는가요.
답: 네, 사실대로 진술했고 증언하기 전에 경찰관이 피고인이 참석한 시간이 20시40분이라고 진술하라고 하나 증인은 20시30분이라고 진술하였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문(검사): 피고인이 모임에 참석한 시간이 20시30분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요.
답: 증인이 시간을 보아서 정확합니다.
문: 증인은 검찰에서 피고인이 참석한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하였지 않는가요.
답: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으며 정확히 20시30분이라고 진술하였습니다.

문(재판장): 증인은 피고인이 참석할 때 시계를 보았다고 하였는데 그 시간을 기억해 두려고 시계를 본 것인가요.
답: 좌담회 결과 보고서에 출석한 시간을 명시하므로 보았던 것입니다.
문: 만약 보고를 한다면 반장책임이고 증인은 관계가 없지 않은가요.
답: 책임은 없으나 증인도 간부로서 관련이 있습니다.

문: 피고인 외에 다른 사람은 좌담회 도중에 참석한 사람이 없는가요.
답: 피고인 외에 4명이 있습니다.
문: 그 사람들이 참석한 시간은 몇 시인가요.
답: 한 사람만 19시40분에 참석한 것을 알고 나머지 사람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문: 다른 사람들이 참석한 시간을 잘 모르면서 피고인이 참석한 시간은 어떻게 정확하게 기억하는가요.
답: 일반회원들은 그렇지 않으나 간부들에 대한 출석사항은 보고가 되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당시 회원은 몇 명이나 참석하였는가요.
답: 25명 내지 30명이 모였습니다.
문: 그때 증인은 몇 시에 좌담회 장소에 출석하였나요.
답: 19시30분경입니다.
문: 증인이 도착한 시간이 정확히 19시30분인가 후인가요.
답: 증인 집에서 19시에 출발하여 정확히 도착한 시간은 모릅니다.
문: 증인 자신이 도착한 시간도 정확히 모르면서 피고인이 도착한 시간은 어떻게 정확히 아는가요.
답: 피고인이 참석할 때 시계를 보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문: 증인을 조사한 경찰관이 원심 증언 때 피고인이 좌담회에 참석한 시간이 20시40분이라고 증언토록 하였다는 말은 어떤 취지에서 한 말인가요.
답: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원심에서 물어보지를 않아 하지 못하여 여기에서 하는 것입니다.

“시간 고치라고 한 사람 1심 법정에서 보았다”

송 씨는 오 씨의 귀가시간에 대해 경찰에선 “좌담회가 끝날 무렵”, 검찰에선 “오후 9시40분”, 1심에선 “오후 8시30분”이라고 증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날 2심에선 “오후 8시30분에 집에 온 것이 틀림없다”면서 경찰에서도 그렇게 진술했는데, 다르게 기록한 것이란 요지의 말을 했다.
나는 이 책을 여기까지 쓰다가 잠시 중단하고, 인천으로 내려갔다. 삼성라사 사람들과 송안섭 씨의 증언이 너무 오락가락해 이들을 직접 만나 캐물어 보아야 답답하고 궁금한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1986년 5월8일 오후 송 씨를 만났다. 안경을 낀 51세의 주부인 송 씨는 어수룩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7년 전 자동차 사고로 뇌수술을 받아 기억력이 다소 약해졌다고 송 씨는 말했다. 송 씨는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정에 불려 다니던 것이 몸서리쳐지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답답하고, 두렵고, 떨리고요.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었어요. 그건 정말 지옥 같은 거였어요. 다른 사람은, 아무리 말해도 그런 기분을 모를 거예요….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몇 가지는 분명히 기억이 나는군요. 택시는 아닌데, 하여튼 형사들하고 몇 번 같이 차를 타고 다녔어요. 차 안에서 절보고는, 몇 시라고 말하라고 시키더군요. 저는 제가 알고 있는 대로 이야기하지, 누가 거짓말하라고 해도 시키는 대로 하는 성격은 아니어요.”

그러나, 그의 말과 다르게 적혀 있다는 검찰, 경찰 신문조서에는 분명히 송 씨의 서명과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여기에 대해 물어 보았다.
“저는 글이 짧아요. 진술을 끝내자 그 사람들이 한 번 읽어보라고 하는데, 읽을 줄 모른다고 하니까, 대신 읽어주는데, 가슴이 떨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조건 손도장을 찍었어요.”

송 씨는 “이것도 분명히 기억난다”고 말을 이어갔다.
“어딘가 불려가서 조사를 다 받고 나서인데요, 나를 조사한 사람이 그 기록을 높은 사람에게 보여주었어요. 그 높은 이는 선 채로 책상 위에 놓인 그 서류를 읽어 보더니, ‘이러면 오휘웅이의 알리바이가 성립되니까 시간을 고쳐라’고 명령조로 말하더군요.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는 제가 확인하지 않아서 모르지요.”

앞에서 썼지만 송 씨의 검찰 진술기록에는 오 씨의 귀가시간을 “오후 9시40분경”이라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다. 오후 8시40분의 誤記(오기)로 보이는데, 그런 기록이 기재될 수 있었다는 것은, 송 씨가 기록을 충분히 확인할 수 없었다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송 씨는 “시간을 고쳐라”고 명령하던 사람이 “미남으로 생겼고, 키가 늘씬한, 아래위로 쑥 빠진 사람이었다”고 했다. 송 씨는 그 사람이 1심 법정에도 나와 있더라고 했다.

“그때 제가 증인으로 나가 증언을 하는데, 흥분해서 손짓을 막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변호사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재판장 앞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겁이 나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으면서 재판장이 뭐라고 물어도 말을 하지 않고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있었어요. 한참 있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시간을 고쳐라’고 했던 그분의 안색이 영 안 좋아요. 나중에 그 재판이 끝나고 나서 오 씨 가족들이, 왜 그때 대답을 안했냐고 나무랍디다. 그때야 저는 아차 했습니다. 변호사는, 그분이 시간 고치라고 했던 부분에 대해서 물은 모양인데, 저는 영 엉뚱하게 해석을 하고, 그 기회를 놓친 것이지요. 변호사도 그렇지요, 제가 알아듣도록 다시 한 번 물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2심 증언 때는 제가 이야기를 좀 했어요. 저는 화가 나면 오히려 말이 잘 나오거든요. 어쨌든 오 씨가 오후 8시30분경에 돌아온 것은 확실해요.”

“오 씨를 살리기 위해서 꾸며낸 시간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제가 경찰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을 때는, 그 시간이 중요한 것도 몰랐다”고 했다. 송 씨는 “나는 어디 가서든 오후 8시30분이라고 말했는데, 적기를 제멋대로 한 것이다”고 거듭 주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