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형 확정

“誤判이란 결론, 곧 나오더라”

오 씨 가족은 2심이 끝나자 변호사를 돈 들여 선임할 수가 없게 됐다. 그때까지 변호사 비용은 오휘웅 씨의 동생 오문석 씨가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해 번 돈으로 충당했었는데, 2심이 끝나자 더는 돈을 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오휘웅 씨가 상고한 뒤 아버지 오기남 씨는 무료 변론과 국선 변호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오 씨는 먼저 당시 신민당 의원 박한상 변호사를 찾아가 무료 변론을 요청,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실질적인 도움은 國選(국선)인 이범렬 변호사로부터 나왔다.

李 변호사는 서울지법 부장판사 시절인 1971년에 사법파동의 발단이 됐었던, 이름난 변호사였다. 사법파동의 불씨는 이 부장판사의 잇따른 무죄 선고에 대한 검찰의 보복성 있는 대응이었다. 그만큼 무죄선고를 많이 내렸던 이 변호사는 변호인으로서도 무죄 판결을 많이 받아낸 사람이었다.
李 변호사는 “國選으로 선임됐을 때, 처음엔 그 사건을 아주 가볍게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量刑(양형)부당 정도로만 짐작했습니다. 공판 조서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여섯 장쯤 읽으니 저절로 담뱃불을 끄게 되더군요. 우선 사건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國選이란 생각은 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해볼 만하다는 의무감부터 생겼습니다. 誤判(오판)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서에 나타난 그런 시간 안에선 오휘웅이 살인을 할 수가 없다, 그가 살인기계라서 아무런 감정 없이 여기저기를 부리나케 쫓아다니며 기계적으로 팍팍 목 졸라 죽인다 해도 그 시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더군요.”

李 변호사가 1975년 12월19일자로 작성한 상고이유서는 독특한 스타일의 名文(명문)이다. 사람들이 으레 보아 온 길고 무미건조한 법률문장이 아니다. 선언문이나 기사체를 연상시키는 짧고 명쾌한 문장에다가 개탄과 분노의 솔직한 표현까지 섞어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변론서다. 이 변호사는 이 상고이유서를 등사하여 여러 부 만들었다. 그중 한 부를 가지고 서울고법을 찾아가 2심 재판부에 건네주었다. 상고이유서를 2심 재판부에 줄 필요는 없는데 참고를 하라는 뜻이 있었던 모양이다.
2심 재판부의 주심이었던 주환석 판사는 이 변호사가 돌아가자 상고이유서를 서랍에 집어넣으면서 “마음대로 안 될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짜로 박한상 변호사가 작성한 상고이유서에는, 오 피고인에 대한 유죄선고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 검찰에서 한 자백을 비판하는 이런 요지의 대목이 있다.

두이분의 자살에 대한 인천 소년교도소장의 ‘재소자 자살 통보서’를 보면 “자살동기를 추측컨대 남편과 두 자녀를 情夫(정부)와 공모하여 살해한 사실로 자신의 죄책감과…”로 되어 있는바, 도대체 판결의 결과가 있기 전에 교도소장까지 본건 피고인(오휘웅 씨)이 마치 공모하여 살해한 것같이 지적해 놓았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는 것은, 검사 앞에서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自認(자인)하고 진술한 그날, 거듭해서 자인서로써 자신의 범행을 진술했다는 점은 피고인이 부인하므로 고문에 의해 자백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검사의 신문이 있은 후, 적어도 교도소로 되돌아가 그 나름대로 자유스런 분위기에서 진술서를 작성해서 교도소장을 거치는 등의 절차 없이 검사 앞에서 자술서를 작성, 신문조서에 첨부하였다는 사실은 고문에 의해 자술서를 받고 이를 기초로 조서를 작성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검사가 고문을 한 일이 없다”는 것은 검사가 직접 고문을 한 일은 없다는 것이지 형사 대여섯 명이 매질을 하면서 조서를 작성했다는 사실까지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녹음테이프도 그렇습니다. 피고인이 시종일관 범죄사실을 시인하였다면, 또 증거가 충분하다면 진술서에 덧붙여 녹음을 하는 등 소란을 부릴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박 변호사는 상고이유서의 맨 끝에 가서는 “설사 위의 상고이유가 이유 없다 가정하더라도 지극히 애매한 사실관계에서 피고인을 사형시킨다면 뒤에 진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생명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 사형은 피해달라는 뜻의 양형부당론을 폈다. 이 논리는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범렬 변호사의 상고이유서 요지

1. 유죄 증거의 검토
① 이주순․지광남의 증언: 두 사람이 증언한 두이분의 자살 직전 이야기나 두―오의 대화는 두이분이 한 자백 이상의 신빙성이 없으므로 별개의 증거로 삼을 가치가 없다.

② 두이분의 진술: 두이분은 두 가지 대죄를 저지른 용서 받을 수 없는 여자다. 남편과 자식을 죽였고, 무고한 남자를 살인범으로 조작하려다가 끝내 자책으로 자살했다. 세 사람의 피살자는 두이분이 혼자서, 그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이다. 변호인은 본 사건에 대한 진술처럼 전후가 모순되고 부조리에 충만된 지리멸렬한 진술을 본 적이 없다. 두이분의 진술은 절대적으로 신빙할 수가 없다.

먼저 범행공모의 시기를 진술로서는 알 수가 없다. 10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과 자신의 혈육을 죽이는 일인데 번뇌와 주저와 결단과 또 이런 것의 반복이 무수히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千仞斷崖(천인단애)에서 뛰어내리는 결단과 방법․시기 등에 대한 결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진술에선 두 사람의 구체적 의사 합치가 언제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두이분은 왜 수면제(아티반)를 탄 사이다를 먹였는가? 남편이 자신의 늦은 귀가를 질책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즉 일찍 잠재우려고 먹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두이분은 그날 외출도 하지 않았으므로 질책당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남편과 아이들에게까지 먹인 이유는 간단하다. 연약한 여자의 손으로 건장한 남자를 살해하려니 피해자의 항거불능상태, 즉 숙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피고인(오휘웅)의 살해 동기가 모호하다. 한때 두이분과 가벼운 邪戀(사련)이 있었다고 해도 혼담중의 총각이 아이까지 딸린 가난한 유부녀와 살기 위해 살인을 할 수는 없다. 절박한 동기 없이 살인한다는 것은 경험법칙상 있을 수 없다.

범행이 두 사람의 공모 끝에 감행된 것이라는 두이분의 진술과 배치되는 사정이 너무나 많다. 어두운 상태에서 오휘웅은 어떻게 선반 위의 칼, 줄칼, 노끈, 그리고 옷장 안의 넥타이․마후라 등을 찾아내 범행에 사용할 수 있었단 말인가? 계획된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찾아온 오휘웅이 범행 직전에 사진관에서, 군고구마 장수에게 신분을 노출시킨 처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범행 직전에 군고구마를 나눠 먹으면서, 찾아온 사진을 나눠보면 한 장 다오, 안 된다 하는 식의 유장한 행동을 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피고인(오휘웅)이 범인이라 전제한다면 이런 점은 경험칙상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결국 두이분의 진술은 유죄―그것도 살인죄―의 증거로서는 결코 채용할 수 없는 것이다.

③ 피고인의 자백: 살인 동기를 “…두이분이 팔을 끌어들여서 술김에 다 처치해버리고 같이 살겠다는 마음이 들어…”라고 검찰에서 진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거짓이다. 피고인은 불교인이다. 개를 때려잡아 달래도 주저했을 것이다.

어떤 자백을 진실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의 하나로 ‘비밀의 폭로’라는 말이 있다. 진범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오휘웅의 진술을 점검하면 그 내용은 두이분의 선행된 진술을 답습한 것으로 새로운 바가 없다. 달리 객관적인 유죄의 증거가 없는 경우 이런 자백은 유죄의 자료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국 피고인이 진범이란 증거는 기록상 존재하지 않는다.

2. 반증
① 부재증명: 그날 저녁 피고인에겐 범행시간이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살해된 시간은 그날 오후 6시~8시55분 사이라는 점만이 분명할 뿐 정확한 살해 시간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살해 시간에 피고인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추궁하지 말고 피고인의 행적을 추궁, 피고인이 범행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오후 6시 이후 피고인이 망년회, 교회 집회에 참석한 다음 8시~8시10분 사이에 두이분의 집을 향해 불교회관을 떠났음은 확정적인 사실이다. 회관~두이분 집의 거리는 도보로 빨라야 약 13분(보통 15분)이 소요되는 정도다. 두이분 집에서 두이분을 만나 인삼주 한 잔 얻어 마시고 몇 마디하고 사진관으로 떠날 때까지의 시간은 적어도 2분을 잡아야 한다. 두이분집~사진관 사이 거리는 걸어서 약 2분이다. 사진 찾고 나와 군고구마를 사서 두이분집에 오려면 적어도 왕복 6분은 걸림으로써 피고인이 두 번째로 두이분 집을 찾은 것은 오후 8시21~8시31분경이 된다.

피고인 오휘웅이 범인이라고 가정한다면 가장 빠른 범행 착수 시간은(8시21분)+(찾아온 사진을 두이분이 군고구마를 먹으면서 본 시간), 즉 8시21분에서 최소한 1~2분 경과한 시간이 된다.
범행 시간을 산출해보면, 의사 김갑환의 진술대로 한 사람을 목졸라 죽이는 데는 3~5분이 걸린다고 할 때 세 사람을 죽이는 데는 적어도 10~15분이 걸린다(범행 도구 찾는 시간까지 참작).
따라서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범행을 완결하고 두이분의 집을 나온 시간은 오후 8시32분~8시42분 사이이며 절대적으로 이보다 빠를 수는 없다. 두이분 집에서 피고인 집까지 걸어서 7분 거리이므로 피고인의 귀가 시간은 오후 8시39분~8시49분이었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피고인 집에 모였던 신도 증인들은 여러 번의 추궁을 받고도 오휘웅의 귀가 시간을 8시30분으로 고집하고 있다. 이들의 나이․직업 등으로 보아 위증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모두가 시계에 근거하고 시간에 민감할 수가 있는 사람들이다.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오후 8시40분 이전에는 절대로 귀가할 수가 없는데 8시30분에 귀가했으므로 피고인에게는 그날 범행 시간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이상은 회관 출발시간, 도보시간, 체류시간 등에서 피고인에게 가장 불리한 시간을 근거로 계산한 것이다. 그것은 양보를 거부하기 위해서다. 피고인은 그가 원하더라도 이 사건의 범인이 될 수 없다. 실체적 진실을 캐내는 법원은 모험을 피해야 할 것이다.

② 지문의 없음: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장롱 속에서 지문이 발견되어야(두이분의 지문은 발견됨)하는데 없었다는 것은 뚜렷한 물적 반증이다.

“억울하고 또 억울하고…”

오 피고인도 200자 원고지 60매분의 상고이유서(1975년 12월12일자)를 썼다. ‘존경하옵는 재판장님’이 수십 번 되풀이되는, 절박한 투의 글이다. 오 씨도 이때쯤에는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자기 직분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던 한 소시민이 인간관계의 인과로 두이분과 그의 남편 정시화를 알게 되고 우연하게도 사건 당일 그의 집에 들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억울하게도 죄인의 몸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실은 재판장님께 하나도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12월31일 새벽에 경찰서로 이끌려 가서, 사건 당일 저의 행적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피고인이 다닌 경로와 가택수사까지 한 뒤, 알리바이가 성립되어 저를 풀어주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날 다시 불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피고인의 지문이 있으면 법대로 처벌을 받을 터이니 고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해도, 서류 정리를 다한 다음 그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해놓고 압력과 고문으로 피고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다음 녹음하고 서류를 꾸몄으며, 증거물은 모두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뒤 검사님 앞에 불려나가서 사실 경위대로 이야기를 하였더니 검사님도 피고인의 무릎을 발길로 차면서 살인범이 시인하고 동정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부인만 한다고… 검사님으로부터도 경찰관과 똑같은 취급을 받고 이 세상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좋을지…

경찰관들이 검찰청까지 찾아와 고문을 가하고… 강제로 무인을 받았던 것입니다. 1975년 1월26일 밤늦게 인천경찰서 수사계장님(필자 注: 수사계장이 직접 형사사건 수사에 참여하는 일은 드물고 형사계장이 하는데, 오 씨는 직책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을 비롯해서 사법경찰관 5명이 고문무기를 갖고 와서 또 부인하면 이것으로 다시 한 번 지하실로 끌고 들어가서 달아야겠다고 하여 저는 살고 싶은 의욕을 등지고 수사계장이 불러주는 대로 자인서를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 씨는 두 여인과 1974년 12월15일 저녁에 육체관계를 맺었다는 것도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그날은 숭의동 불교회관에서 오후 9시까지 청년부 교학을 지도했으므로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두 여인에 대한 경찰 신문조서에는 최초로 정을 통한 날짜가 12월17일 저녁으로 되어 있고, 오 씨에 대한 녹음과 조서에는 12월15일 저녁으로 되어 있으며(여인숙은 같음), 참고인 조서에서 길조여인숙 주인 이부자씨는 12월18일 밤에 오․두 씨 두 사람이 투숙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적혀 있다.

오 씨가 두 여인과 친하게 지낸 것을 사실이고, 정을 통했음직도 하지만 그 날짜가 언제인지는, 한심한 경찰 조서로서는 알 길이 없다. 오기남 씨는 2심 공판에서 아들이 육체관계까지 부인하자 그 다음 면회 때 “했다면 했다고 하지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느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오휘웅 씨는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고 딱 잡아떼더라는 것이다.

오 씨는 상고이유서에서 “정 씨의 목을 식칼로 찔렀다고 한 것도 경찰이 고문하면서 시키는 대로 한 허위자백인데, 나중에 보니 식칼이 아니고 부러진 톱날로 만든 칼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했다. 오 씨는 상고이유서의 마지막에 이런 내용을 담았다.

“…죽음 그 자체가 두렵고 싫어서가 아니라, 남자가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할 일은 못하고 눈을 감는 것도 원통할진대 하물며 누명을 쓰고 젊은 청춘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억울하고 또 억울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