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태양이 교도소의 철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후끈한 바람이 끈적한 페인트 냄새와 함께 콧속으로 들어왔다. 접견실로 들어가는 길목에 벽에 붙은 표어가 보였다.

‘순간 한 번의 인내가 살인을 면하게 한다’

그랬다. 분노의 불길에 휩싸인 사람들이 남을 해치고 자신도 화상을 입고 들어와 신음하는 곳이 교도소다. 분노가 끝난 순간 상대방은 이미 생명이 끊어진 경우가 많았다. 화단의 한 그루 후박나무가 쏟아지는 열기를 받고 독이 서린 듯 짙은 녹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접견실로 들어갔다. 강철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재판에서 자기가 없었을 때  증인들이 뭐라고 했을까 퍽 궁금한 눈치였다. 내가 물었다.
“죽은 송양숙의 언니가 왜 그렇게 강철윤씨를 증오하죠?”
원인이 분명 존재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짧게 대답했다.
“일부러 쇼로 그렇게 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내가 솔직한 느낌을 얘기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그 여자는 말이죠. 내가 자기 동생과 살 때부터 나를 자기의 사부(師父)쯤 되는 남자무당으로 여기더라고요. 전생에 나는 중이고 그 여자는 내 아래서 밥을 짓던 보살이였대요. 이승에서 다시 만난 거래요. 그 여자가 다른 젊은 남자하고 만나 연애할 때면 밤에 꿈속에 꼭 내가 나타나서 자기를 혼내더래요.”
비닐하우스 안에 있던 신당(神堂)이 떠올랐다. 그들 사이에는 무속세계에서의 독특한 얽힘과 스밈이 있는 것 같았다.

“송양숙이 죽기 전에 협박 한 적이 있어요? 죽이겠다고?”
법정에서 언니가 그렇게 증언했었다.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진짜 그런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내게 돌아오게 하려고  말했던 건데….”
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사실 같았다.
“죽은 여자를 사랑했습니까?”
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물었다. 여태까지 그는 입만 열면 죽은 여자에 대한 원망과 비난이었다. 그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한 박자 쯤 지난 후에 그가 대답했다.

“사실은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 여자가 사는 아파트까지 찾아간 겁니까?”
“그랬습니다.”
“그러면 왜 찾아가서 그 호프집 앞 계단에서 때렸습니까?”
언니의 증언내용이 그랬다.
“경찰은 내가 그 여자를 때리고 혁대를 풀어 목을 조르고 하면서 다섯 시간을 괴롭혔다고 조서를 만들었습니다. 창피한 소리지만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때렸겠습니까? 아닙니다. 사실 거기서 섹스를 했습니다.”
“그럴 거면 동네 여관이라도 가지 그랬어요?”
“그 여자가 가지 말자고 했어요. 그리고는 건물 계단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느라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쩌면 여자가 강철윤을 그렇게 달래서 보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스포츠머리형의 범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강철윤이 아니라면 진짜 범인은 누구라고 생각해요?”
내가 물어 보았다. 그는 접견실 콘크리트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물었다.
“죽은 여자의 전남편이 범인일 가능성은 없어요? 그동안의 태도를 보면 자기 여자를 빼앗겼으면서도 전혀 반응이 없었어요.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닙니까?”
전남편의 행동은 일반적인 논리나 감정에 맞지 않았다. 
“그 여자의 전남편은 아닐 겁니다. 내가 살면서 얘기를 들어보면 그럴 위인이 되지 못해요.”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가정주부는 법정에서 스포츠머리의 남자를 봤다고 증언하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무렵 저는 빡빡머리였습니다. 조금만 길면 면도기로 방안에서 정리하니까요. 스포츠머리라고 하면 사실 마음에 짚이는 사람이 있긴 있어요.”
“누군데요?”
내가 물었다.
“죽은 송양숙의 전남편 친구입니다.”

“어떤 관계였는데요?”
“이건 그 여자와 같이 살면서 직접 들은 얘긴데요. 남편의 친구인 그 사람은 가끔 그 집에 와서 술도 마시고 잠도 잤다고 그래요. 그러다 하루는 남편이 일찍 출근했는데 그때 남편친구가 덤비더래요. 그 후로는 이따금씩 서로 만나 그런 관계를 계속해 왔다고 그랬어요. 제가 그 여자와 동거하기 전에 더러 제 차로 집까지 데려다 줬어요. 밤늦게 그 남편친구라는 남자가 골목에서 기다리다가 양숙이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나타나 집적대는 걸 두 번이나 차안에서 본 적도 있어요. 그 남자가 스포츠 머리였어요. 내가 알기로 그 사람밖에는 없는데….”

그 인물이 살인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찰의 용의선상에는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강철윤이 그런 주장을 하더라도 수사에 혼선을 주는 것이라며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내 나름대로 문제점을 던질 필요는 있었다. 죽은 여자의 전남편을 증인으로 신청할 계획이었다. 그의 입을 통해 스포츠머리를 한 친구를 물으면 수사의 단서가 될지도 몰랐다. 강철윤은 그 얘기를 나 말고 동생에게도 했다. 동생은 사람을 시켜서 계속 방청석을 살폈다고 했다. 일심법정에 조용히 스며들어 방청을 하고 갔다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있었다. 죽은 송양숙과 전남편과의 관계나 그 주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죽은 여자의 전남편에 대한 수사 자료를 찾아보았다. 부분 부분 나와 있는 진술들을 조심스럽게 조립하고 빈 부분을 추론하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조그만 택시회사에서 자동차정비를 하던 김영철은 스물두 살 때 송양숙을 만나 사귀다가 동거를 시작했다. 그가 군대에 갈 무렵 딸이 태어났고 제대 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송양숙은 보험회사를 7년 다녔고 화장품 외판사원으로도 다녔다. 그 후 그녀는 수지침을 배워 침을 놓으러 다녔다. 그녀의 성격은 외향적이고 활달한 편이라 이웃과도 금방 사귀었다. 성관계도 적극적으로 남편에게 요구할 때도 많았다. 그런 그녀가 수지침을 놔주러 다니면서 부터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고 밤 12시를 넘겨 들어오는 때도 많았다. 술 냄새도 나고 화장기도 짙어졌다. 걱정이 될 때면 그가 늦는 아내에게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서, “수지침을 놓는 건 좋은데 왜 이렇게 매일 늦어”하고 따졌다. 그러자 그녀의 반응이 점차 공격적이 됐다.

“왜 내가 당신한테 미안해야 하지?”
그녀는 화를 내고 달려들었다. 그녀는 그 후 밤이 늦어 핸드폰을 하면 받지 않았다. 들어오는 시간도 밤 두시를 넘기는 때도 많았다. 그가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으면 아는 언니 집이라는 대답이 고작이었다. 다 핑계 같았지만 그는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헤어지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가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집에 들어오는 게 동굴로 들어오는 것 같아. 당신이 나랑 계속해서 살면 나도 죽고 애도 죽어. 이제부터 각방을 써.”

그녀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에게 사정했다. 그녀가 마치 저주에 걸린 것 같이 보였다. 그는 그녀의 일시적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달랬다. 그 후 그들 부부는 다른 방에서 잤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늦게 돌아와 남편에게 선언했다.
“난 여태까지 결혼생활을 하면서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헤어져.”
그녀의 표정은 단호했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
남편이 물었다.
“더 이상 우리 아무 말도 하지 말아.”

그녀가 말을 단칼에 잘랐다. 남편은 결혼생활 십여 년간 보아오던 그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앞에 있는 것 같이 느꼈다. 사정해도 말려도 이미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와 법원으로 가서 합의이혼을 했다. 그녀는 그렇게 미련 없이 가버렸다. 아이도 두고 갔다. 무엇엔가 홀린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지났다.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진 아내 송양숙으로부터 핸드폰이 왔다.
“친정집으로 가 봐.”
그녀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그는 바로 처가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처가 식구들이 흥분한 얼굴들로 모여 있었다. 그를 보자 전처의 오빠가 소리쳤다. 

“양숙이가 그 놈한테 사기를 당한 것 같아. 동거생활을 하면서 얻어맞고 심지어 그 놈이 죽인다고 협박을 한다는데 같이 살게 하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그들은 차를 타고 강철윤의 비닐하우스로 몰려갔다. 그도 따라갔다.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자네는 들어오지 말고 밖에 있어”
송양숙의 오빠가 전남편이었던 그에게 말했다.

(계속)

그는 그녀와 법원으로 가서 합의이혼을 했다.
그녀는 그렇게 미련 없이 가버렸다. 아이도 두고 갔다.
무엇엔가 홀린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