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소련 대통령)가 미·소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일화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에게 “미국사회는 어떠한 사람도 백악관 앞에서 ‘레이건 타도하라’, ‘레이건 물러가라’ 외칠 수 있다.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가 “너무 자랑하지 말라. 소련도 어느 누구라도 붉은 광장에 나와서 크렘린 궁전을 향하여 ‘레이건 타도하라’고 외칠 수 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절대로 체포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재치로 화답했다. 이후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 대화를 남북관계에 적용시켜 보고 싶다. 오늘날 청와대 앞에서 누구든지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면서 ‘물러가라’, ‘타도하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북한은 어떨까? 북한주민이 주석궁으로 달려가 한국의 특정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면서 ‘물러가라’, ‘타도하라’ 해서 그 사람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누구든지 주석궁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아무리 김정일정권에 유익하다 하더라도 허락 없이 주석궁 앞에 나타나면 잡혀가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1983년 미국 버클리대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시절, 이때는 중국이 등소평 집권 시기로 공산당 고위급 간부들을 대거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에 해외 연수를 보냈다. 이들과 심정적으로 매우 가깝게 지내면서 북한에 대해 자주 질문했었는데 계속 외교적 수사로 말하던 중 진심을 털어놓았다.

“남한에서 북한을 평등이 보장된 사회이고 주체적인 사회라고 말하고 있는 이른바 남한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훗날 북한이 무너졌을 때 북한 전체 주민들에게 무릎 꿇고 빌어야 할 것이다.”

1983년 김일성이 살아 있던 때에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는 중국 공산당 고위급 간부들이 한 말이다.

1975년 유럽의 모든 국가·미국·캐나다가 핀란드 헬싱키에 모인 ‘헬싱키 회담’에서 몇 가지 중요한 합의를 이루어 냈다.

‘현상유지원칙’으로 현재의 유럽의 지도를 바꿔서는 안 된다는 합의 사항이다. 많은 자유주의자들이 헬싱키 합의를 통렬히 비판했으나 이 속에는 소련제국을 해체시킬 수 있는 ‘트로이 목마’가 담겨 있었다. 소련 통치자 브레즈네프는 현상유지를 한다는 데 만족하여 합의를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권에 대한 인권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비록 소련이 인권조사를 제약했다 하더라도 체제 안에서 주민들의 인권 실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바깥세상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10년 동안 소련의 통치를 뿌리로부터 허무는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북한은 소련 해체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 세계에서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김정일정권은 주민들을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울부짖음이 전세계에 울려 퍼져 큰 응답이 일어나길 바라마지 않는다.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