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브레진스키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는 주한미군과 관련한 흥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브레진스키는 카터 행정부 때 대통령 안보보좌관을 지낸 폴란드 이민 출신 학자입니다. 카터 대통령이 1977년에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했을 때 그는 안보보좌관으로서 실무를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미국 군부 등 여러곳의 반대로 미군철수는 좌절되었는데 브레진스키는 철군 반대 입장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는 위의 책에서 만약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서 철수하면 일본의 군비증강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통일 후에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떠나면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다가는 반일감정과 사대주의의 전통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서서히 중국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도 주일미군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 할 수가 있고 만약 주일미군까지 철수하면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일본과 한국이 사이가 좋아지고 미국이 이것을 보장한다면 한반도의 통일 이후까지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대외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과거의 소련과 같은 패권국가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중국이나 러시아가 그런 위치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러시아는 지금 개방의 후유증으로 내출혈 상태이니까 걱정이 덜한데 중국은 경제개발의 성공으로 21세기의 언젠가는 미국과 패권을 다툴 것이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미국은 일본 및 한국과 손잡고 중국의 코앞에 삼각동맹을 내놓아 중국의 패권국가화를 견제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은 이런 삼각동맹의 연결고리인 것입니다. 이 연결 고리는 두 점을 갖고 있는데 어느 한 점만 이상이 있어도 나머지 한 점에 무거운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한국내의 반미운동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 미국입니다. 브레진스키는 한반도의 통일이 중국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할 때, 즉 미국과 일본이 통일한국의 뒤에서 칼을 들이대는 모습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어야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동의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