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 진영이 내세운 구호는 “It’s the economy, stupid(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이 구호가 소구력이 있어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 문구는 그 이후에도 선거 등 여러 상황에서 자주 인용되곤 했다.

2024년 3월, 의료문제로 격랑에 빠진 한국에도 클린턴이 주목했던 것과 유사하게 ‘돈’이 문제다. 의대 정원 증원이든 어떤 사안이든 사실 ‘돈’을 떠나서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번 의료개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해관계 당사자인 정부, 의사, 국민 모두가 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필수의료 부족과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필수의료 수가를 대폭 인상하고 공공의료기관의 확충이 필요한데 이게 모두 돈이 없으면 되는 일이 아니다. 이 돈은 의료소비자이자 수혜자인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료비 증가분 역시 의료소비자의 몫이다.

모두 돈이 필요함으로 정부는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건강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함을 설명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나 집권당은 표를 의식해 감히 이를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의사 수를 늘리면 모두 해결될 것처럼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낮은 비용으로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면 누군가가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주 80시간, 연속 36시간 근무하는 전공의와 제때 식사도 못하고 3교대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수고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예약도 없이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고, 수술도 기다리지 않고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누린 공짜 점심이 없어져야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사직한 전공의들, 의사들을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으니….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지원을 위해 10조를 5년간 투입하겠다고 하고,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대형 대학병원들이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자 수천억을 대형병원에 지원하겠다고 한다.

대학병원의 전공의를 전문의로 대체해 운영해 전공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수련을 용이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증원된 2천 명 의대생 교육을 위해 1천 명의 교수도 뽑겠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필수의료 지원을 위해 지원한다는 10조는 건강보험재정을 사용하겠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2028년이면 건보재정 고갈이 염려되는데 여기에서 10조를 빼 쓰면 어쩌자는 것인지 대답이 없다. 대학병원별로 한 달에 수백억씩 적자가 나 전국의 대학병원 및 상급종합병원의 적자를 합치면 한 달에 수천억이 발생하는데 언제까지 지원이 가능할까?

2035년이면 고령화율이 30%에 달해 지금보다 의료수요가 45%가 늘어난다고 의료공급량(의사 수)을 늘려야 한다고 하면서 그때에 늘어난 의료수요를 감당할 건강보험 재정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추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남은 임기 3년 뒤에 벌어지는 건보재정 고갈이나 건강보험 시스템 파탄은 내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인가?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그것을 뒷받침할 재원이 없다면 空約이고, 마치 될 것처럼 말하면 詐欺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