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눈물 젖은 朴正熙’ ④ -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어진 友情
‘장애인 친구’ 이준상을 향한 朴正熙의 따뜻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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友情

박정희가 3학년이었던 1928년, 구미면에서 유일한 소학교였던 구미공립보통학교는 연례적인 봄 운동회를 개최했다. 이 운동회에서 박정희의 동기생인 李俊相(이준상)은 달리기를 하다 넘어져 무릎을 다친다. 이준상은 구미면 중앙통에서 5대째 한약방 ‘永壽藥局(영수약국)’을 경영해 오던 李永壽(이영수)의 셋째 부인의 장남이었다. 지금 경북 구미시에서 살고 있는 이준상의 막내동생 李逸相(이일상)의 증언에 따르면 한약방을 하던 그의 부친은 민간요법을 쓴다며 무리하게 아들의 다리를 치료했다고 한다.

<아버지(이영수)께서는 상처에 뜨겁게 끓인 수은을 부으면 毒(독)한 기운을 빨아낸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어른은 그날 저녁에 형(준상)의 무릎에 뜨거운 수은을 들이부었지요. 아파 죽겠다는 형님의 팔다리를 여러 사람들이 잡고 ‘수은 찜질’을 했는데 그만 무릎 연골이 녹아내린 겁니다.>

이준상은 영원히 오른쪽 무릎을 굽히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학교를 계속 다녔다. 누구나 이준상에게 손가락질을 해댈 수 있었지만 학교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곁엔 항상 ‘대추방망이’라는 별명을 가진 2조(반) 급장 박정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이준상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이준상의 집은 학교에서 5분 여 거리였다. 박정희가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날이면 이준상은 正熙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함께 밥을 먹여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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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줄 맨 오른쪽이 박정희, 그 뒤 맨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이준상


박정희의 동기생 박승용은 사각형 양철 도시락인 ‘벤또’를 싸 갔던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점심시간에 ‘벤또’를 열면 박정희의 것에는 언제나 ‘서숙쌀‘이라고 불리던 좁쌀에 보리가 절반쯤 섞인 밥이 담겨 있었지요. 보통 아이들은 보리밥에 쌀이 좀 섞이기도 했는데 박정희는 좁쌀이 많아 단번에 가난한 집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런 도시락도 싸오지 못한 날이 많았어요. 그럴 때면 준상이 집으로 가서 밥을 얻어먹고 오곤 했습니다. 두 소년이 친하다는 사실은 동기생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요.>


“상준이 어디 있노. 상준이”

박정희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도 고향을 찾으면 이준상과 자주 어울렸다. 그때마다 곁에 있었던 이준상의 동생 이일상은 두 사람을 이렇게 비교했다.

<우리 형님은 육체적으로 약했지만 돈은 무척 많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지요. 반면 박정희 형님은 남에게 생전 지려고 하지 않았으나 돈이 없었지요. 두 소년은 그런 면에서 共生(공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참 순수했어요. 남이 어려움에 처하면 보고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니까요.>

이준상의 집안은 그의 아버지가 작고한 이후 가세가 급속히 기울어져 갔다. 5·16 혁명 이후 이준상은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 1963년 10월15일 선거에서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박정희는 경주에 있다가 生家(생가)를 찾아 구미역에 도착했다.

환영 인파를 대하자 박정희는 제일 먼저 “상준이(친구들에겐 ‘준상’이 ‘상준’으로 불림) 어디 있노. 상준이”하며 그를 찾았다. 박정희는 허름한 차림의 이상준을 찾아내 자신의 지프에 태운 뒤 生家로 이동했다. 이 사건 이후 구미에서는 가난한 장애인 이준상을 아무도 업신여기지 못했다. 1972년 이준상은 어릴 때 다친 다리를 또 다시 다쳐 골반까지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가 이듬해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때 대통령 박정희는 이준상의 병원치료비를 댔다.

기사본문 이미지
구미초등학교(구미공립보통학교의 後身)에 보관되어 있는 박정희의 성적표.
만점(10점)이 많고 특히 역사, 지리, 산술, 조선어 성적이 좋다.
6학년 때 성적은, 총 13개 과목 중 체조와 가사실습(9점)만 빼고
나머지 모두 만점이었다.
언론의 난
[ 2015-06-19, 15:16 ] 조회수 : 3112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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