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日마녀사냥
저   자 : 嚴相益
펴낸곳 : 조갑제닷컴
판   형 : 양장
페이지수 : 1권 540 쪽, 2권 532  쪽
출판일 : 2016년 11월 21일
판매가격 : 4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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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마녀사냥

3·1운동 선언문 작성자 및 주동자,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사람, 낙동강 전선 다부동 전투의 영웅, 일제하에서 일종의 정부 역할을 했던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 사장, 이화여대와 연세대학 총장, 한국어를 아름답게 가꾸고 고난의 시기에 한국인의 마음을 감싸주었던 시인과 소설가, 교과서를 통해 친숙해진 작곡가·극작가·화가·무용가, 대주교, 그리고 기업인.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이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하여 2009년 11월27일 국회에 보고한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의 면면이다.
민족기업, 민족언론, 민족대학으로 통하던 민족진영의 핵심 인물들, 한국 근대화의 개척자들 거의가 사후(死後)에 자기 변론의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反민족 행위자’로 저격되었다.

이 책 《親日마녀사냥》의 주인공 김연수(金秊洙)는 동아일보 설립자이자 정치인인 형 김성수(金性洙)에게 가려져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진 기업인이다. 김연수는 일본 교토제국대학 졸업 후 삼양사(三養社)의 전신인 삼수사(三水社)와 해동은행(海東銀行)을 설립하고 한국 최초의 주식회사인 경성방직(京城紡織)의 책임자가 되었다. 1939년엔 만주 봉천에 남만방적(南滿紡績)을 순 우리 자본으로 설립, 조선 최고(最高)의 기업인의 자리에 올랐다. 백씨 인촌(仁村) 선생을 도와 굴지의 사학(私學)의 모체인 고려중앙학원의 설립, 민족 언론기관 동아일보(東亞日報) 창설에 재정적으로 기여했다. 전경련(全經聯) 전신인 한국경제협의회 초대회장을 맡았고 사후(死後)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해방 직후 살기등등한 시절의 반민특위 재판부는 그를 ‘민족기업인’이라 평가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60년이 흘러 대한민국은 오늘의 시점에서 그 시절 사람들의 친일반민족행위를 규명하겠다고 나섰다. 김연수도 다시 반민족 행위자로 결정되었다. 당시의 판결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저자 엄상익(嚴相益) 변호사는 우연한 인연으로 김연수 궐석 재판의 영혼 변호를 맡았고,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위원회와 법정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 책으로 냈다. 김연수라는 나라 잃은 조선인과 그가 살아갔던 비상한 시대의 명암(明暗)을 한편의 소설처럼 그려냈다. 철지난 친일(親日)마녀사냥에 대한 분노, 통쾌한 반론, 인간과 역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때로는 문학적 표현으로 녹여낸 장대한 역사 드라마다.


살아본 적 없는 자들의 오만

엄상익 변호사는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에 몇 가지 핵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제시대는 과연 암흑시대였나?’
‘장수(고종)가 항복했는데 졸병이 죽을 때까지 저항하지 않았다고 벌을 줄 수 있나?’
‘일제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은 김연수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민족기업인으로 칭송했는데,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자신도 지킬 수 없는 잣대로 단죄하려는 것은 오만 아닌가?’
‘김연수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훈장을 준 대한민국과 그를 민족반역자로 몬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인가?’
‘인간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는 게 생존의 목표인가?’
‘친일(親日)’이란 말 앞에 얼어붙는 지적(知的)풍토에서 어떤 지식인도 발설한 적 없는 도발적 질문들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일제시대라는 공기를 두르고 산 기업인으로서 그 시대를 지배하는 정권과 소극적, 미온적으로 타협해야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런 행동은 법이 규정하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기업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지 항일(抗日)이 아니다. 항일 운동가에게 기업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 없듯이 기업인더러 항일 운동하지 않았다고 단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1949년 반민특위 재판부는 김연수가 기업 활동으로 번 돈의 힘으로 한국인의 실력을 길러 일본을 이기는 방향으로 고차원의 항일을 했음을 인정했다.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는 독후기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가치관과 논리적 대결의 뼈대는 1949년 반민특위 재판부(단심제)의 무죄 선고 對 60년 뒤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의 ‘반민족행위자’ 결정”이라며 1949년 반민특위의 김연수 무죄 선고 판결문이 친일 행위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단죄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역사적 문서라고 평가했다. 대한민국이 세워진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어제 일처럼 생생했을 일제시대의 행위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는 데 즈음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성숙된 역사관과 균형 감각이 스며있다는 것이다.
반면 60년 전의 무죄판결을 뒤집는 2010년 행정법원의 ‘식민지해 하에서라도 기업인이 자신의 기업 활동을 위해 식민통치에 도움이 되는 행위에 가담했다는 것은 내심의 동기가 어떠하였는지에 불구하고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반민족행위자’ 결정 판결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 판결의 논리라면 통일 후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한 약 300만 명 전원을 민족반역자로 처단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적 강압에 의한 굴복이었다는 항변은 ‘내심의 동기가 어떠하였든지 간에 그런 강압에 의하여 이뤄진 것이라는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 간단히 무시될 것이다.”

조선 민족으로 태어나 일본 국적으로 살아야 했던 시절에 ‘밖으로 강적과 싸우고 안으로 빈곤에 울면서’(반민특위 판결문中) 한국 자본주의의 싹을 틔워간 민족기업인 김연수는 정말 민족반역자인가, 《親日마녀사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책 속으로 |

“정부수립 직후 반민특위(反民特委)에서 그 기준 때문에 어떻게 고민했습니까? 일제시대를 다 같이 살아본 사람들이 그 문제에 부딪쳐 심사숙고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판결문들을 보면 그런 고뇌를 느낄 수 있어요. 그때는 당사자도 증인도 살아있고 자료도 많이 남아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당사자도 죽고 증거도 증인도 없는데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위원회의 조사관들이나 위원들에게 누가 그런 역사해석의 독점권을 줬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지금의 조사관들은 도대체 누군지 신분들을 모두 감추고 있어 알 수가 없어요. 역사학자도 아닙니다. 법률가도 아닙니다. 그들의 정체가 뭘까요?”

<필자의 말, 본문 중에서>



“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의사나 열사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너무나 외면한 순수론이 아닌가? 지난날 의병들이 봉기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항거했는데도 일본은 끄덕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일본은? 그때에 비해 열 배 백 배 국력이 증대됐는데… 물산장려 운동도 실패하고 민립대학 운동도 돈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애국심이 아니고 조직인데 말이야, 무력도 없는데 조직도 없다면 어떻게 일본하고 대항하라는 거야?”

<동아일보 김성수(金性洙) 사장>



“고종(高宗)이 나라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그러면 그 밑에 있던 항복한 신민(臣民)들의 태도는 어때야 하겠습니까? 전쟁에서 장수가 항복을 했을 때 그 밑에 있던 졸병들에게 각자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적(敵)과 싸우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순응했던 것과 친일(親日)은 분명히 구별해야 됩니다. 어떤 인간을 친일파라고 하면 그 사람 생애(生涯) 전체에 있었던 한 1~2퍼센트가 되는 걸 가지고 99퍼센트의 긍정적인 면을 부정하는 겁니다.”

<조갑제(趙甲濟) 기자>



“저희 위원회에서는 한 인간의 전인격을 판단한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이 살던 중 한 시점에서의 어떤 행위가 친일이냐 아니냐만 지적하는 겁니다.”
내가 다시 되받아쳤다. “친일 반민족 행위의 문제는 그렇게 단선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인간도 오랜 인생을 살면서 순간의 실수나 얼룩 같은 오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실수나 오점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더러운 인간이라고 단정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1권 | 한국 자본주의의 개척자들
화보 … 8
序文 … 17
歷史가 독과점의 대상일까?_嚴相益

1. 親日派의 땅 소송 … 32
2. 부글거리는 여론 … 34
3. 공청회 풍경 … 38
4. 申鉉碻 총리의 친일시비 … 42
5. 화가의 아들 … 46
6. 종교 지도자의 손자 … 50
7. 조선 인민민주주의입니까 … 52
8. 어느 공산주의자의 고백 … 56
9. 金相浹 총장의 現代史 요약 … 60
10. 金氏家의 손자 … 68
11. 門中회의 … 72
12. 제국의 후예 … 80
13. 역사의 岐路에 서서 … 84
14. 계약 … 90
15. 始祖 김요협 … 95
16. 明堂과 名家 … 101
17. 무역하는 地主 … 107
18. 후손의 感想 … 114
19. 金氏家의 유적 … 120
20. 宗孫과 맏사위 … 125
21. 조선의 詩人 … 129
22. 벼슬과 낙향 … 137
23. 위원회의 소환 … 143
24. 趙甲濟의 논리 … 153
25. 洪命憙와의 인연 … 158
26. 동양척식회사 … 164
27. 민권사상 … 170
28. 유학 가는 소년들 … 175
29. 조선행 3류 일본인들 … 181
30. 金秊洙의 유학 … 188
31. 일본 풍경 … 194
32. 조선 유학생들 … 200
33. 학교사업 구상 … 206
34. 중앙학교 인수 … 213
35. 尹潽善家 공장 인수 … 221
36. 꼬마사위 金容完 … 227
37. 중앙학교 … 232
38. 고등학생 김연수 … 238
39. 조선인 주식회사 운동 … 243
40. 경성방직의 좌초 … 253
41. 차별 … 259
42. 東京과 京城 … 266
43. 겁먹은 일본인 … 271
44. 정치인 사이토 … 277
45. 東亞日報 창간 … 284
46. 고뇌하는 예비기업인 … 291
47. 민족 분열과 동아일보 … 298
48. 경제福音 … 305
49. 大東亞共榮 … 311
50. 잠자는 조선 … 317
51. 산업조사위원회 … 325
52. 김연수의 귀국 … 331
53. 대감의 고무신공장 … 336
54. 별표 고무신 … 341
55. 농장회사 三養社 … 349
56. 孫佛 간척사업 … 355
57. 삼각산표 광목 … 362
58. 진상규명위원회 … 369
59. 재산추적 … 376
60. 대책회의 … 383
61. 家臣의 증언 … 390
62. 위원장 … 394
63.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 … 399
64. 법률가 위원 … 405
65. 강만길의 논리 … 409
66. 金相敦 회장 조사 … 415
67. 간척사업 … 424
68. 海里농장 … 430
69. 만주의 농장 … 436
70. 백두산 원시림 … 440
71. 첫 번째 염전의 탈환 … 446
72. 염전의 두 번째 탈환 … 449
73. 과거의 京城 포목상거리로 … 456
74. 太極星 상표 … 465
75. 朴承稷상점 … 470
76. 백윤수상점 … 476
77. 京紡의 장돌뱅이패 … 481
78. 조선인 실업가들 … 485
79. 애국심에 호소한 광고 … 494
80. “김 형이 짠 실로 온 겨레를 입히고…” … 500
81. 총독부 앞에 동아일보 신축 … 506
82. 京城 거리의 모던 보이들 … 511
83. 공산당 조직 침투 … 518
84. 보성전문 인수 … 523
85. 일본 백화점 진출 … 529
86. 일본풍 근대도시 京城 … 535


2권 | 오만과 편견
87. 石造건물의 꿈 … 556
88. 산업조사위원회의 격론 … 561
89. 만보산 사건과 華僑 보호 활동 … 566
90. 만주사변과 만주시장 … 570
91. 경제조사위원회의 토론 … 575
92. 기회가 된 中日戰爭 … 581
93. 사라져 가는 민족정신 … 585
94. 민족적 轉向 … 593
95. 만주에 방직공장 … 599
96. 정치폭풍 … 606
97. 조선인 재벌의 탄생 … 612
98. 만주·중국 특수로 흥청대는 도시 … 618
99. 崔南善의 고민 … 624
100. 조선인 지원병 제도 … 630
101. 노다이사건(乃台事件) … 634
102. 軍國의 물결 … 638
103. 기자의 代筆 … 650
104. ‘全민족적 저항’에서 ‘全민족적 협력’으로 … 656
105. 末期的 상황 … 661
106. 1945년 8월15일 봉천 … 666
107. 親日 단죄론 … 674
108. 좌익의 공장 점령 … 682
109. 反民特委 발족 … 688
110. 무엇이 ‘反민족’인가 … 693
111. 金昌國 위원장 … 701
112. 李完用의 반론 … 707
113. 재판장의 생각 … 710
114. 郭善熙 목사의 설교 … 717
115. 소설가 鄭乙炳의 고백 … 721
116. 3·1운동 사건 법정 … 725
117. 左右 대립 … 730
118. 진짜 앞잡이 … 735
119. 李奉昌의 증언 … 741
120. 張夏成 교수의 설명 … 759
121. 崔普植 기자와 한 인터뷰 … 767
122. “법정에서 공개 구술 변론하라” … 778
123. 李光洙와 만나다 … 781
124. 두 마을의 이야기 … 786
125. 잡지 時事좌담회의 성숙한 모습 … 793
126. 잡지에 실린 1930년대 조선의 日常 … 799
127. 法이 없는 암흑시대가 아니었다 … 806
128. 응답하라 1930년대 … 811
129. 일본 군복을 입은 조선 청년들 … 818
130. 저항과 협력의 시대 … 827
131. 最後의 나날들 … 833
132. 金東仁의 ‘속 亡國人記’ … 841
133. “그들이 미워하는 건 대한민국입니다” … 845
134. 법정의 역사논쟁 … 851
135. 徐淳泳 재판장의 고민 … 859
136. 金相浹 총리 발탁의 진실 … 863
137. 李文烈의 분노 … 868
138. 핵심 위원과의 논쟁 … 871
139.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오만 … 897
140. 日本人化의 예 … 900
141. 잡혀가던 날 … 904
142. “제 정신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 911
143. 거절 못한 이유 … 918
144. “민족의식으로 뭉친 회사” … 924
145. 태극과 무궁화 … 931
146. 無罪 … 939
147. 전쟁 속 財界의 변화 … 949
148. 쓰러질 때까지 사업 … 957
149. 주홍글씨 … 962
150. 드라마와는 다른 재벌家의 풍습 … 969
151. 손자의 추억 … 976
152. 비자금을 안 만드는 그룹 … 984
153. 김연수의 私生活 … 993
154. 직원이 본 김연수 … 1006
155. 富者가 치러야 할 代價 … 1017
156. 판결 … 1022
157. 屍身의 기증 … 1028


부록
反民裁判 金秊洙 판결 全文 … 1032
金秊洙 一家 가계도 … 1044
金秊洙 年譜 … 1045

讀後記 … 1051
親日마녀사냥에 대한 도발적 질문_趙甲濟




| 저자·嚴相益엄상익 |

6·25전쟁이 끝날 무렵 피난지인 평택 서정리역 부근의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경기중·고교를 졸업하고 1973년 김상협(金相浹) 총장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긴급조치 등으로 휴교기간이 길던 시절 깊은 산골의 사찰과 강가 등을 방랑하며 독서와 사색으로 생활했다. 1978년 육군 장교로 입대해서 휴전선 지역의 부대에 근무하다가 부대를 방문한 김상협 총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장교로 근무하던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1986년 작은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변호사 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도(大盜) 조세형과 탈주범 신창원의 변호를 맡아 범죄 이면에 있는 인권유린과 또 다른 진실을 칼럼이나 논픽션 형태로 세상에 알렸다. ‘변호사 저널리즘’을 표방하며 성역이었던 교도소·법원·검찰 내부에 감추어진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청송교도소 내의 의문사를 월간 <신동아>에 발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호의 인물을 탄생시켰다. 은폐된 모 준(準) 재벌 회장부인의 살인청부의 진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7년 소설가 정을병(鄭乙炳) 씨의 추천으로 소설집을 발간하여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어서 소설 ‘검은 허수아비’, ‘환상살인’ ‘바보변호사’ 등을 발표하고 그 외 ‘거짓예언자’ 등 10여 권의 논픽션 및 수필집을 썼다.
문인협회 이사, 소설가협회 운영위원, 추리작가협회 이사와 대한변협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20여 년간 국민일보, 한국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칼럼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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