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紀行(1)/어떻게 야만이 一流를 만들었나?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은 영국과 시실리를 정복, 一流文明을 건설한다.
이번 여름, 尙美會 여행단과 함께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나의 취미 때문이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草原지대, 징기스칸, 몽골, 기마군단, 흉노, 투르크(돌궐)에 흥미를 느껴 1996년에 몽골벨트 취재를 두 달 간 한 적이 있다. 몽골족은 세계사의 지배민족이다. Born to rule, 다른 나라와 민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태어난 종족이다. 지배를 당하여 고생한 민족과 나라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세계사를 지배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계사에서 몽골족과 더불어 지배민족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은 로마인과 게르만이다. 로마문명이 무너진 5세기 이후 유럽은 게르만족 세상으로 변한다. 고트, 반달, 프랑크, 롬바르드, 부르군디, 앵글로, 색슨 등 게르만의 여러 종족이 유럽을 석권, 王朝를 세우고 지배집단이 되었다. 유럽의 지배층이 5세기를 前後하여 로마인에서 게르만족으로 교체된 이후 지금까지 그런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게르만족 주도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네더란드,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은 게르만족과 그 후예들이 지도층을 형성한 나라이거나 파생하여 만들어진 나라이다. 1류국가 랭킹을 내면 늘 最上位圈에 든다. 미국에선 스칸디나비아 이민들이 많이 사는 도시와 시골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바이킹은 게르만족 중 가장 늦게 文明化, 기독교화 하였다. 어떻게 보면 게르만족의 순수성과 野性을 가장 오래 보존하였던 이들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던 바이킹이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이 3大 바이킹 국가이다. 이들은 10~11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다른 게르만족보다는 약500년이 늦었다.

바이킹은 전형적인 지배민족이다. 원정, 약탈, 정복, 통치, 정착, 탐험이 特技다. 이동을 많이 하는 민족일수록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아랍상인, 지금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세계를 싸돌아다닌다. 이동은 사람을 낯설고 위험한 환경에 던져 넣기 때문에 사람을 똑똑하게 만든다. 훈련시킨다.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조직을 만들고 키우지 않을 수 없다.

이동의 범위가 가장 넓었던 민족은 바이킹 이전엔 흉노, 투르크, 훈족과 같은 유목민족이었다. 이들은 野生에서 생긴 野性의 군사력, 즉 騎馬전술과 활로 文明세계를 흔들었다. 草原으로 이어지고 草原에 이웃한 중국,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이 이들의 진출 목표였다. 로마세계를 무너뜨리는 계기도 4세기 훈족의 유럽 등장이었다. 몽골 고원에 살던 흉노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훈족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유럽의 동쪽에 살던 게르만족을 쳤고, 밀린 게르만족은 로마 문명권으로 밀고 들어갔다. 로마제국의 멸망 과정이 이런 연쇄반응으로 촉진된 셈이다.

유목기마민족은 말과 칼로 세계를 정복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제국을 건설한다. 몽골, 투르크, 게르만, 바이킹 같은 지배 민족은 나라를 부수고 나라를 세우는 전문가들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도 기마민족이 토착민을 정복하여 세운 국가이다. 고대와 중세에 유목기마민족 계열의 정복왕조가 많이 등장하는데, 18세기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18세기의 세계를 호령하던 4大 제국은 淸(중국), 무갈제국(인도), 오스만 터키, 그리고 大英제국이었다. 청은 여진족, 무갈제국은 징기스칸의 후예를 자칭하던 우즈벡 출신의 기마민족, 오스만 터키는 오스만족(투르크족의 일파)이 세운 제국이었다. 무갈은 이란어로 몽골이란 뜻이다. 4대 제국 중 세 제국이 유목기마민족 계통이고 영국은 바이킹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바이킹이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정착, 公國을 만들어 힘을 키운 다음 윌리엄 공의 지도하에 영국으로 쳐들어가 앵글로-색슨족 지배층을 一掃하고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와 언어와 성격을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정복왕 윌리엄의 32代로 분류되기도 한다. 영국의 국가적 성격, 영국인의 기질은 1066년의 노르만에 의한 영국정복으로 뼈대가 형성되었다.

18세기 4대 제국 중 청, 무갈, 오스만 터키는 말과 활을 主武器로 삼은 육상세력이었다면 대영제국은 배를 잘 모는 해양세력이었다. 19~20세기로 접어들면 육상세력은 退潮하고, 해양세력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는다. 영국과 미국이다. 영국은 동물의 힘을 기계의 힘으로 바꾼 산업화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陸上 기마민족 세력은 산업화가 늦었다. 1840년의 아편전쟁은 영국이 淸을 산업화된 武力의 힘으로 굴복시킨 전쟁인데, 기마민족에 대한 해양세력의 최종승리를 상징한다.

몽골기마민족 계열과 바이킹 계열이 세계사의 2대 지배족인 셈인데, 전쟁과 통치 방식은 달랐지만 그 내용과 본질은 비슷한 점이 많다. 기동성, 개방성, 실용성, 尙武정신, 정직성, 관용 같은 것들이다.

바이킹과 그들이 프랑스에 정착하여 세운 노르만 公國은 一流국가 제조기였다. 나는 이 점에 흥미를 느낀다. 어떻게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야만상태로 남아 있었던 바이킹이 一流국가, 一流문명, 一流건축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나?

첫째 바이킹은 가장 넓게, 가장 위험하게 싸돌아다닌 사람들이다. 8세기말에서 시작하여 약300년 간 계속되는 바이킹의 대이동 시대 그들의 행동반경은 굉장했다. 고향인 스칸디나비아를 출발한 바이킹 船團은 유럽, 지중해, 중동은 물론이고,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거쳐 콜롬버스보다 500년 먼저 北아메리카에 도착한다. 노르웨이-스웨덴 바이킹은 볼가 강을 따라 黑海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키에프 公國을 건설했다. 이 공국이 성장하여 오늘날의 러시아가 된다. 러시아라는 단어의 原形인 ‘루스’는 스웨덴 말이다.

바이킹은 동로마제국의 傭兵, 특히 황제 근위대에서 활약하였다. 제1차 십자군의 선봉은 노르만이었다. 바이킹이 이렇게 행동반경이 넓었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 지리, 정치, 인종과 접하면서 적응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여행은 독서와 같다고 한다.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과 같은데, 책읽기보다는 훨씬 생동하고 써 먹기 좋은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얻는다. 바이킹이야말로 여행을 가장 많이 한 민족이다.

둘째 노르망디 公國의 하이브리드 역할이다. 人種도 동물처럼 純種보다는 雜種이 강하다. 노르망디는 바이킹과 프랑스의 문화적 융합과 인종적 混血의 場이었다. 양쪽의 좋은 점이 노르망디 사람들 속에서 종합되고 발전하였다. 서기 800년 무렵부터 바이킹은 英佛 사이의 도버해협을 통하여 프랑스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부르고뉴에서 發源, 이 해협으로 들어가는 세느강은 노르망디 평야를 관통한다. 바이킹은 해협에서 세느강을 타고 들어와 이 지역을 약탈하고, 885년엔 파리를 포위하기도 했다.

911년 프랑스 왕은 충성을 서약 받고는 바이킹 부족장에게 노르망디 지역을 公國으로 떼어주었다. 유럽에서 가장 풍요한 평야지대를 차지한 바이킹은, 노르망디, 즉 ‘북쪽에서 온 사람들의 땅’에서 騎士-귀족층으로 변하는데, 기독교로 改宗, 프랑스 문화를 배우고 수용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바이킹이다”는 의식을 견지하였다.

바이킹은 좋은 것을 받아들이면 금방 자기 것으로 만드는 특징이 있어 열렬한 기독교 세력이 되었다. 10세기부터 유렵에서 일기 시작한 교회 개혁 운동과 이이 따른 수도원 짓기 붐에 편승했다. 바이킹의 野性과 프랑스의 知性을 겸비한 이들은 정복자 기질을 숨기지 못하고 11세기에 이탈리아 및 영국 원정에 나선다.

오트빌 부족은 이탈리아 남부와 시실리를 정복, 시실리 왕국을 세우고 윌리엄 공은 영국으로 쳐들어가 정복왕조를 건설하였다. 거의 동시에 이뤄진 정복이었다. 이들 노르만 세력이 경영하기 시작한 영국과 시실리 왕국은 11~13세기 유럽에서 가장 풍요하고 역동적인 나라였다. 좋은 제도를 만들고 피정복자를 너그럽게 다스렸고, 기술자를 우대하고 商工을 장려하였다.

노르만 세력은 두 지역에 수많은 城과 성당을 남겼다. 특히 로마네스크 식 건축을 확산시켰다. 노르만의 정복을 계기로 영국은 운명이 바뀐다. 침략만 당하던 약한 나라에서 침략하는 강한 나라로 탈바꿈하면서 비로소 유럽 문명의 本流에 들어온다. 영국에서 노예거래와, 항복한 귀족에 대한 사형을 금지시킨 이는 윌리엄 정복왕이었다. 16세기~17세기엔 노르만 사람들이 신대륙 개척에 앞장선다. 캐나다, 루이지아나, 플로리다 등등. 바이킹과 유럽문명의 혼혈인 노르만이야말로 바이킹보다, 유럽보다 더 우수한 자질을 가진 세력으로 改良된 셈이다.

셋째는 인종적 우수성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바이킹 시절부터 체격과 체력이 좋고 知能이 우수했다. 성격도 남자답고, 영웅적 삶과 죽음을 동경하였다. 체력-지능-정신력에 더하여 조직력과 배를 만들고 부리는 기술이 뛰어났다. 바이킹과 노르만이 만들거나 큰 영향을 끼친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一流국가이다. 中世의 시실리 왕국, 영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영국계 나라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이다. 미국에선 스칸디나비아 이민들이 많이 사는 도시와 시골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나는 2010년엔 스칸디나비아, 올해 3월엔 시실리와 나폴리 여행을 통하여 바이킹과 노르만을 취재하였다. 지난 7월12일, 파리로 향하였다. 노르망디가 목표였다. 대한항공 보잉 747 점보는 만원이었다. 몽골 고원을 지나면서부터는 고도를 3만8000m까지 높여 파리 도착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인천공항 출발이 낮 2시라서 줄곧 낮 지대를 통과하는 비행이었다. 비행기를 타면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책 한 권 분량을 矯正(교정) 보았다.

파리도 만원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바캉스를 즐기려고 바깥으로 나가 시내를 텅 비워주었는데 그 공간을 세계 도처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메웠다. 특히 중국인들이 많았다. 작년엔 8500만 명, 올해는 1억 명의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한다.

마침 7월14일은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이었다. 에펠탑을 중심으로 불꽃놀이를 하는데 구경꾼들이 세느강 주변을 메웠다. 혁명을 가장 소중하게 기념하는 나라인 프랑스는 그야말로 혁명의 나라이다. 1789년 대혁명, 루이 16세 처형, 단두대, 2만 명 처형, 단두대를 만든 사람도 처형, 나폴레옹 전쟁, 왕정복고, 나폴레옹 탈출, 워털루,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나폴레옹 3세 등장, 쿠데타로 황제 등극, 1870년 普佛전쟁 패배, 파리 콤뮌으로 3만 명 피살,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젊은이들 300만 명 戰死, 마지노 요새 건설, 左右대립으로 國論분열, 1940년 독일군에 패배, 레지스탕스 운동, 1944년 드골의 파리 입성, 1958년과 1961년 군사반란 등. 대혁명 이후 224년간 프랑스는 전쟁과 평화, 영광과 수치, 혁명과 쿠데타가 오고가는 소란스러운 歷程을 걸어왔다. 정치가 左右대립형이라 내부 갈등은 계급적 증오심으로 폭발, 피를 부르기 쉽게 되어 있었다. 혁명 수출국으로서 프랑스는 러시아의 선배이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화려하고 장대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는가, 이게 늘 내가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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