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도 UFO 실체 인정
미국보다 먼저 UFO에 대해 국가적 조사를 하고 이를 공개한 나라는 프랑스이다. 이번 미국 정부의 보고서 내용도 프랑스와 비슷하다.
장 자크 벨라스코는 약 20년간 프랑스 정부의 UFO 담당 기구 책임자였다. 그는 UFO에 관한 세계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프랑스 인공위성 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1977년에 UFO 담당 기구가 설립되자 관계하게 되었고, 6년 뒤 책임자가 되었다. 1983년부터 2004년까지 그는 UFO 현상을 정부 차원에서 조사·분석하는 일을 지휘하였다. 퇴임 후 풍부한 사례 조사 경험을 근거로 자유롭게 UFO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그는 UFO 전문 추적기자 레슬리 킨이 《UFOs》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판단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1954년 프랑스에선 전역(全域)의 도시권에서 100건이 넘는 비행접시, 즉 UFO 공식 보고가 접수되었다. 마다가스카르에선 수천명이 비행물체를 목격했다. 비행기 크기의 녹색 공과 럭비공같이 생긴 금속 물체가 떠다녔다. 사람들은 얼어붙었고, 개들은 짖어댔으며, 소들은 우리를 들이받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비행물체가 공중에 있는 동안 전력망이 마비되었고, (비행물체가) 사라지니 살아났다는 점이다. UFO 추적 기구인 GEPAN은 경찰, 헌병, 공군, 해군, 기상학자, 항공 관련 공무원들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천문학자, 물리학자, 법률 전문가 등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1977년에서 1983년 사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대부분의 UFO 관련 보고는 면밀한 분석 결과 해명이 가능했다.
2. 그러나 상당수의 현상은 기존 물리학, 심리학, 혹은 사회 심리학으론 설명할 수 없었다.
3. 설명할 수 없는 공중 현상의 적은 %는 물질적 근거, 즉 실체(實體)를 갖고 있다.
GEPAN(1988년 이후 SEPRA)은 1951년 이후 UFO 목격 사례들을 모두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통계분석이 가능했다. 우리는 4등급으로 분류했다.
A. 완벽하게 확인된 경우
B. 현상의 성격을 얼추 확인했지만 약간의 의문이 남는 경우
C. 자료 부족으로 식별이 안 되는 경우
D. 정확한 목격담과 질이 좋은 증거가 현장에서 확보되었는데도 설명할 수 없는 경우〉
물리적 흔적을 남긴 두 사례
프랑스는 미국과 달리 UFO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단을 보내 정밀분석에 나섰다.
1981년 1월 8일 오후 5시 프로방스의 한 마을에서 전기기술자 레나토 니콜라이가 정원에서 물펌프 집을 짓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서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려 돌아보았다. 달걀 모양의 물체가 정원에 착륙했다. 살며시 다가가니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날아오르는 물체의 배 부분을 보니 착륙용으로 보이는 두 개의 돌출부가 있었다. 착륙한 곳에 가보니 땅이 눌린 2m 반경의 두 원형 흔적이 있었다. 조사단이 가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무거운 것에 의하여 눌린 사실, 그리고 착륙 장소의 땅이 섭씨 300~600도로 가열된 사실도 분석을 통해 알아냈다.
다른 경우는 더 구체적이었다. 낮 12시35분에 목격자 집 앞에 지름 1m가량의 비행물체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지상 1m 위에서 20분 정도 정지했다. 목격자는 “달걀처럼 생겼는데 두 접시를 포갠 모양이었다”고 기억했다. 위는 청록색의 돔 모양이었다.
이 물체는 땅 위를 호버링(hovering)하다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그 바람에 풀이 벌떡 섰다. 조사팀이 가서 물리적·화학적 영향을 조사하였다. 풀의 수분이 말라버리는 등 강력한 전자기장(電磁氣場)의 영향으로 열이 난 것으로 분석되었다. 150건 보고 사례 중 15건이 D급으로 분류되었다. 정확한 목격담과 질 높은 증거가 있지만 기존 학설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란 이야기다. 이 중 반은 주변 환경과 비행기 장비에 전자기적 영향을 끼친 경우였다.
독립적으로 UFO를 조사한 도미니크 바인스타인은 조종사들이 목격한 1305건의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UFO는 상업용이나 자가용 비행기를 대하는 것과 군사용 비행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자(前者)에 대해서는 (UFO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데 반해 군용기에 대하여는 적극적이고 때로는 적대적이었다. UFO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의도적 행태를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UFO가 원자력이나 핵폭탄과 관련 있는 시설 상공에 자주 나타난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이는 전략적 의도로 읽히는데 이번 미국 보고서도 비슷한 견해였다.
‘UFO=외계 물체’라는 같은 결말로 향하는 각국 정부
최근 들어 여러 나라가 자국(自國)이 조사한 UFO에 대한 자료들을 공개하고 있다. 2004년 이후 브라질, 칠레, 프랑스, 멕시코, 러시아, 우루과이, 페루, 아일랜드, 호주, 캐나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이 기밀로 분류한 자료들을 대중에 공개했다. 수십 년간 UFO를 연구한 우루과이 공군은 2009년 관련 자료들을 공개했다. 공군 연구팀을 이끌던 아리엘 산체스 대령은 “UFO 현상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적 분석에 기초했을 때 외계에서 왔다는 가설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UFO 전문가 중 신뢰도가 가장 높은 사람 중 한명인 레슬리 킨 기자는 《UFOs》라는 책을 쓰기 위하여 각국 정부에서 UFO 연구를 담당한 사람들을 취재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사실상 “외계에서 왔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국방고등연구소에서 활동하던 12명의 전현직 국방 관계자와 과학자들로 구성된 프랑스 심층위원회(COMETA)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프랑스에 보고된 UFO 목격 사례를 조사했다. 이들도 보고서에서 “외계에서 왔다는 가설(假說)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벨기에에서는 1989년 말부터 1990년 중반까지 약 2000건의 신빙성 있는 UFO 목격 사례가 집중적으로 보고됐다. 벨기에 공군은 이 중 650건을 조사했고, 500건에 대해선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300건 이상은 300m 이내에서 UFO 추정 물체를 목격한 사례이고 200건은 목격 시간이 5분 이상이었다.
최소 250명이 목격한 벨기에
삼각 UFO 사건
당시 벨기에 공군에서 작전총괄직을 맡은 윌프리드 드 브로우에르 예비역 소장은 레슬리 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실에 집중하며 외계에서 왔을 가능성에 중점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다만 벨기에에서 목격된 사례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고 이 연구는 외계에서 왔을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1989년 11월 29일 벨기에 오이펜 지역에서 총 143건의 UFO 목격 사례가 보고됐다. 최소 250명이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UFO로 추정되는 물체를 봤다는 것이다.
목격자 중에는 경찰관도 여러 명이었다. 벨기에 연방경찰인 하인리히 니콜과 후버트 본 몬티니는 이날 오후 5시15분쯤 오이펜과 독일 접경지대에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들은 차 안에서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불빛이 쏟아지는 들판을 발견했다. 들판 위에서 삼각형 물체가 3개의 불기둥을 아래로 쏘고 있었다.
물체 중간에서는 붉은 섬광(閃光)이 나오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하늘에 멈춰 있었다. 그러다 독일 국경 쪽으로 천천히 움직이다가 다시 오이펜 쪽으로 돌아왔다. 니콜과 몬티니는 이 물체를 추격했다. 물체는 오이펜 상공에 30분 이상 머물렀는데, 이를 봤다는 목격자가 많다. 이후 이 물체는 인근 베르베에 지역에 있는 길레페 호수 쪽으로 이동했다. 약 한 시간 동안 호수 위에 멈춰 있었다. 니콜과 몬티니는 차에 앉아 이를 계속 지켜봤다. 물체는 계속 땅을 향해 붉은 불빛을 쏘고 있었다.
오후 6시45분, 두 경찰은 또 다른 물체가 나타나는 것을 봤다. 물체의 상단은 둥근 지붕 모양이고 직사각형 창(窓)이 있었다. 안에서 불빛이 보였다. 물체는 시야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날아갔다. 오후 7시23분, 첫 번째 물체가 붉은 불빛을 더 이상 내뿜지 않고 남서쪽으로 날아갔다. 총 13명의 경찰이 오이펜 인근 여덟 군데에서 이 물체들을 봤다. 드 브로우에르 예비역 소장은 10명 중 1명만 이런 사례들을 신고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1500명 이상이 이 물체들을 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1989년 12월 11일 오후 6시45분쯤 벨기에 육군 소속 안드라 아몬드 대령은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이들은 차 오른쪽에 있는 물체에서 3개의 붉은 불빛이 나오는 것을 봤다. 이들은 차 밖으로 나와 이 움직임을 쳐다봤다. 물체에서 큰 불빛이 나오는데 보름달 2개 크기였다고 한다. 물체는 이 부부를 향해 불빛을 쐈는데 아몬드 대령은 겁을 먹어 차로 돌아가 도망가기로 했다. 차 문을 열자 물체는 왼쪽으로 돌아갔다. 삼각형이었다.
1990년 3월 30일 저녁에는 여러 경찰관이 UFO를 봤다는 신고를 했다. 벨기에 공군 레이더 기지 두 곳에서 이 물체를 포착했다. 벨기에 공군은 F-16 전투기를 출동시켰는데 이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레이더에 포착된 물체의 움직임은 인간의 기술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드 브로우에르 소장은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연락해 UFO를 목격한 날 미국의 스텔스 비행기가 비밀 작전을 수행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미국 국방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또한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비행물체를 만들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칠레 정부 UFO 담당자, “외계인 假說에 동의한다”
칠레는 1977년 민간 항공청 산하에 이상항공현상연구위원회(CEFAA)라는 기관을 설립해 UFO 연구에 나섰다. 이 기관은 1997년 봄 칠레 북부 아리카시(市)에서 이상한 항공 현상이 발생한 후 설립됐다. 이틀 연속으로 아리카시 서쪽 지역에서 불빛이 목격됐다. 이 불빛은 바다 위에서도 보였다. 민간인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천문학자들도 이를 봤다. 칠레 정부는 사람들이 목격했다는 불빛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발표했다. 칠레 정부가 공식적으로 미확인 물체가 영공에서 발견됐다고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2000년 7월, CEFAA는 미국대사관을 통해 UFO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니 미국의 관련 기관과 공조하자고 했지만 회신이 없었다. CEFAA가 많은 사례를 연구한 결과, 대다수는 다른 행성이나 기후 현상을 착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대로 된 분석을 할 정도의 자료나 증거가 부족한 경우도 많았다. 목격자가 증언을 거부하거나 범죄 기록이 있는 등 신뢰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최종 조사 결과 4%의 사례에 대해서는 정확한 설명이 불가능했다고 했다.
리카르도 버뮤데즈 산후에자 장군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CEFAA를 이끌었고, 은퇴 후인 2010년에 또 한 번 CEFAA 수장(首長)을 지냈다. 산후에자 장군은 “UFO가 존재하고 현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믿는다”고 했다. 그는 “UFO가 외계에서 왔다는 프랑스 COMETA 보고서의 결론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의 설명이다.
“아직까지 이 가설은 입증되지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지도 않았다. 나는 이 가설이 철학이나 종교의 영역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 가설이 황당무계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무시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과학적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브라질 방공사령관, “UFO는 실체 있고 지능이 있는 듯하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인 브라질에서도 UFO는 자주 출몰했다. 브라질 정부는 2008년 무렵부터 UFO 관련 자료를 대중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10년씩 잘라서 공개하고 있는데,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자료가 공개됐다. 공개된 자료만 약 4000쪽이 넘는다.
1986년 5월 19일 브라질의 전투조종사 여러 명과 레이더가 동시에 UFO를 목격한 사례가 있었다. 이 사건은 군대에서 UFO 문제를 다루다 전역한 호세 카를로스 페레이라 예비역 대장이 ‘브라질의 UFO’라는 글을 써 세상에 공개됐다. 지상 레이더에 UFO가 포착되고 이를 전투기 조종사들이 하늘에서 동시에 본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런 현상에는 실체가 있고 사람이 조종하고 있다고만은 볼 수 없다.〉
페레이라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방공사령부 사령관을 지냈고, 2005년까지 공군 작전총괄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는 방공사령관일 때 전투기 조종사들이 보고 레이더가 포착한 UFO 사례들을 조사했다. 그가 내린 결론 역시 지구적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란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나는 군대에서 UFO 문제를 접하며 우리가 우주를 얼마나 무시하며 대하는지 알게 됐다.〉
그는 지난 100년간 일어난 일을 되돌아보면 인간이 언젠가는 UFO같이 설명이 안 되는 과학 문제를 풀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지난 100년 사이 비행기도 만들고 달에도 가게 되는 등 항공 관련 기술이 크게 진보했다. 천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100년이라는 시간은 먼지 하나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지난 100년간 이런 일들을 이뤄냈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가 앞으로 100년, 1000년 후에 어떤 일을 이뤄낼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국방부는 UFO에 대해 회피적 태도를 취했고, 은폐하거나 무시하였다. 그 나라의 군사력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존재를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고, 인정한다면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UFO의 행태가 과시적이라기보다는 은둔적이라 숨기기도 좋았다. 특히 미국 공군과 연방항공청(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이 은폐나 무시(無視) 작전에 적극적이었음은 앞서 소개한 미국 국가정보국의 보고서가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좋은 예가 있다.
1987년 존 켈러한은 미국 워싱턴에 본부가 있는 FAA 사고조사반장이었다. 그해 1월 항공청 알래스카 지역사무소의 전화를 받았다. “1986년 11월 7일에 있었던 UFO 건에 대해 기자들이 문의하니 어떻게 대응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원칙적 대답만 하라고 했다.
“조사 중이라고만 하세요. 그리고 대화 테이프, 민군(民軍)의 항공관제 컴퓨터 레이더 자료 등을 모아서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 있는 FAA 기술센터로 보내주세요.”
이렇게 되어 그는 이 사건에 관계하게 되었다. JAL 1628편 보잉 747 화물기는 1986년 11월 7일 오후 앵커리지 공항을 이륙, 북쪽 상공을 비행 중이었다. 기장(機長) 데라우치 켄주 등 3명이 타고 있었다. 오후 5시부터 기장 등이 조종실에서 목격한 두 대의 UFO는 각각 항공모함 크기였다. 원반 모양인데 둘레에 색광(色光)이 번쩍거리며 돌고 있었다. 두 물체는 JAL 점보기를 따라왔다.
한순간에 두 UFO가 점보기 정면에 나타나 빛을 발사하는데, 눈이 부시고 조종실에서도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UFO는 점보기를 같은 고도에서 따라오면서 항로를 방해하곤 했다. 기장은 피해가려고 기체(機體)를 돌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보기의 레이더에도 잡혔고, 크기를 계산하니 항공모함 정도였다.
두 UFO는 31분간 점보기와 나란히 비행하면서 앞뒤를 오갔는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수초에 몇 마일을 이동했다. 점보기 앞 8마일에 있던 UFO는 수초 만에 7마일 뒤로 가 있었다. 관성(慣性)과 중력(重力)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통제하는 듯했다. 일본인 기장은 그 시각 상공에서 군사훈련이 있다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알래스카 관제소에 UFO라고 보고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