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하게도 모든 면에서 같은 지인이 있다. 생활 습관과 식성까지도 같다. 같으니 몇 시간을 얘기해도 지루하지 않다. 그렇게 동일한 분이지만 어쩌면 딱하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정선거 문제이다.

이분은 부정선거 신봉자이고 나는 아니다. 이분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이 문제를 논하면 저는 피한다. 그런데 어제는 본의 아니게 끌려 들어가 충돌했다. 나는 사실 지인에게 부정선거에 신경을 덜 쓰고 자기 일에 더 충실하라고 했다. 즉 살아오신 생의 업적을 글로 남기는 데 더 집중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지인은 부정선거를 공격 받았다고 화내며 새가 날아 갔다고(관계)하신다. 지인은 부정선거 근거가 수두룩한데 왜 나는 무시하느냐고 채근한다. 사실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단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부정선거 채근에 답할 수 밖에 없어졌다.

이 분이 부정선거를 신봉하는 것은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 총리 때문이다. 황교안이 제시한 부정선거의 분명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자신이 똑똑히 본 접히지 않은 빳빳한 선거 표 뭉치이다. 이는 외부 종이로 인쇄되어 반입된 부정선거 표라는 것이다.

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근거 자료로 답변했다. 대표적 부정선거 피해자로 나선 것은 민경욱 의원, 이분이 소를 제기하여 열린 연수을 재판 때 투표용지를 감정했던 신수정 충북대 목재종이학과 교수의 자료이다.

📌 투표지 감정 결과
①빳빳한 투표용지
겉으론 새것처럼 보여도 돋보기나 현미경으로 보면 접힌 흔적이 보인다
②신권다발 투표지
묶인 상태로 시간이 지나고 압력이 가해지면 새것처럼 보일 수 있다
③형상기억종이 논란
그런 종이는 없지만, 종이는 원래 상태로 회복하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④대량 위조 가능성
의심되는 투표용지와 선관위 용지의 성질을 비교했지만, 조작 흔적 없었다
자료: 인천 연수 투표 용지 관련 감정보고서 및 (2022년 2월) 감정인 신수정 교수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6307

지인에게 이런 자료를 제시해도 황교안에 대한 신봉은 변함이 없다. 이에 대해 나에게 보낸 지인의 답변 문자 그대로 올리면 이렇다.

<황교안…사건을 무수히 우수하게 해결한 실력으로 검사장까지 올랐고,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빛나는 경력으로 로펌으로 직행했더라면 편하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고 있었을 신분인데, 왜 춥고 배고프고 허접한 대접을 받는 자리에서 저러고 살고 있을까요? 신앙인의 양심과 책임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 듯이 보이지 않나요? >

전문가가 누구인지, 말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이런 답변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 이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님은 황교안이 교주이지만 나는 교주가 없어요. 단지 있다면 "사실교주" 밖에 없어요. 믿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남에게 화를 내지는 마세요.>

이 지인은 나보다 책을 많이 보신 분이다. 최근에는 <맨 얼굴의 독립운동사> 책도 나에게 선물로 보내주신 분이다. 오래 전부터 그 두꺼운 월간조선을 구독하셔 정치에 관심도 높으신 분이다. 당연히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 기자를 존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라고 한다. 그가 얄밉게도 부정선거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월간조선을 이 분보다 적게 보았지만 조갑제 기자를 다르게 본다. 이 지인이 황교안을 보듯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할 줄 아는 기자로 보는 것이 이분과 다른 것이다.

한 몸이라는 부부도 정치 얘기는 싸움으로 번지기에 금기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이를 초월하는 수준 있는 지인 가족도 계시다. 인권이 뭔지 몰랐던 탈북자인 나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신 스승 같은 김상헌 원로님의 가족이다. 저를 선정하여 유엔 북한 인권 1차 회의를 위해 제네바(2003년)와 핍박받는 세계 기독교인을 위한 오슬로 모임(2014년)에 함께하셨다. 이 통에 우물 안에 개구리인 저의 시각을 세계화시켜주신 분이다.

이분은 8·15해방 후 월남하신 함흥 출신이시다. 남한에 오셔서는 서북청년단 최초 멤버였다. 하지만 박정희 쿠데타를 비판하실 만큼 매우 야당적이시다. 유엔 기구에 오래 계셨다. 저와 함께 북한인권시민연합 창립자이시기도 하다. 1996년 최초로 결성된 북한인권운동 단체인 것이다.

95세이신데 아직도 정정하신 것 보면 참 부러운 분이다. 이분의 가족은 정치 성향이 매우 다르다고 하신다. 그래도 분란이 없다고 하신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로 끝 다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나와 국민이 되기를 기원한다.

20년 전에 본 월간조선에 난 전문가의 글이 생각난다. 사람들 속에는 사실과 근거를 떠나 좌뇌와 우뇌를 가진 자가 있다. 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실과 근거보다는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본다. 한편 사실과 근거보다는 감정이 우선이다. 한 세상에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이상해지지 않고 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