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감독이란 이름의 밥벌이를 시작한 지 38년이 됐다. 24년 전 처음 프로팀 감독을 맡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고생 끝에 거둔 성공을 축하한다”고 내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팀은 더 좋은 팀이 되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한 지점을 통과했을 뿐이다. 우승을 했다고 해서 나 스스로 만족한 적은 없다. 단지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감독이라고 하는 직업은 일하는 것 자체가 ‘이겨야 하는’ 삶이다. 승부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기 때문에 ‘끙끙 앓는’ 생활의 연속이다. 고독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자리다.

이기기 위해서는 선수들을 잘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그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작전을 세울 수 없다. 하지만 선수들과 너무 가까워지면 정작 필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장기에서 훈수 두는 사람의 눈에 수가 더 잘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과에만 너무 집착하면 수가 짧아진다. 이기려고 덤비기만 하면 그 길이 틀린 경우가 많았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프로야구는 결단력의 싸움이다. 우유부단하거나 너무 고민을 많이 하면 그 결과가 훨씬 나쁘게 나타났다. 결단은 무조건 빨라야 한다. 빠른 결단을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와 직감(直感)이 필요하다. 상대팀과 우리 선수에 대한 데이터를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사람들은 내 스타일을 놓고 ‘데이터의 야구’라고 한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데이터와 내가 보는 데이터는 차이가 있다. 4할 타자는 10번 중 4번은 쳐낸다는 데이터를 갖고 있다. 이때 데이터는 단지 과거의 기록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필요로 하고 정리하는 데이터는 그 타자가 어떤 투수와 맞섰고, 볼카운트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심지어 그때 경기장 날씨는 어땠는지를 포함한다.

실제 경기에서, 특히 중요한 고비에서 데이터를 보고 연구할 시간이 없다. 순간적으로 데이터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직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올해 한국시리즈 2차전 경기 도중에 나는 3번이나 후회를 했다. 빨리 판단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다. 내가 모자라서 그랬다. 선수들은 열심히 했는데, 나는 뭐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천직(天職)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이기는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기 위해서는 일 속에서 감동을 느껴야 한다.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 때문에 움직이는 것, 그게 바로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받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가. 행복이라는 것은 마음가짐 하나로 달라진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천직이 아니다. 자기가 찾아서 그 일에 몰두하고 집중한다면 즐거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성공의 다섯 단계를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목적, 계획, 실행, 계승, 반성과 연구의 다섯 단계다. 이 다섯 가지 단계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과 이 5단계 프로세스를 통해 움직이는 사람의 나중 모습은 달라져 있을 수밖에 없다.

이기기 위해서는 열정과 겸손함을 갖춰야 한다. 열정이라는 것은 한번 추진하면 뿌리를 뽑겠다는 마음이다. 열정을 갖고 직접 자신이 부딪혀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시행착오를 겪어본 사람들은 그 다음에 찾아오는 난관에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도전과 에러’를 통해 사람이 성장하는 것이다. 내 인생 역시 어마어마한 에러로 점철돼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개인이 이기는 것만큼이나 내가 속한 조직이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들이 모인 조직까지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팀워크라는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가는 것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팀워크를 위해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선수들끼리 치고받고 싸움질을 해도 상관없다. 단지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직의 리더들은 때론 ‘쓸모 없는 사람’이라며 기대에 못 미치거나, 속 썩이는 조직원을 잘라내려 한다. 하지만 38년 야구 지도자 생활을 돌이켜보면 말썽꾸러기들이 큰일을 해내곤 했다. ‘말썽꾸러기’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단지 납득하지 못해서 조직의 울타리에 못 들어왔던 것뿐이다. 적절한 설명과 설득을 통해 내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들은 더없이 소중한 ‘조직 구성원’이 된다.

‘찬밥’을 먹어본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찬밥 신세’가 됐다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 올해 SK에선 김재현, 박재홍 등 간판선수들이 2군에서 쓴맛을 봤다. 나도 그들을 2군으로 보내야 했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냉정해야 했다. 2군행을 통보한 뒤 그들이 살아나길 갈망하고 기도했다. 나에 대한 반발, 간판스타의 짓밟힌 자존심을 속으로 삼키며 그들은 돌아왔고, 한국시리즈 우승의 1등 공신이 됐다. 다시 돌아온 그들은 ‘목숨을 건’ 야구를 하고 있었다.

이기기 위한 마지막 조건은 정직이다. 세상을 둘러보면 잔재주를 부리는 사람들만 성공하고 조명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우직한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우화는 우리 인생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입력 : 2007.12.21 23:22 / 수정 : 2007.12.22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