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우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장이 오늘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의대 증원 ‘2000명의 늪’ 벗어나 대화로 풀자"란 제목의 글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의료계가 의대 증원 ‘2000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전공의와 의과대학생은 병원과 학교 밖을 떠돌고 있다>면서 <수련의들이 새 연차 근무를, 학생들은 새 학년을 시작해야 하는데도 텅 빈 강의실과 허전한 병원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자책감이 든다>고 했다.

문제의 근원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별 의대 정원 신청 현황이 발표되면 사태는 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니 더 이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의 자리가 시급하다고 했다. 그래야만 전공의와 학생이 병원과 학교로 돌아오도록 설득할 명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환자나 교실을 떠나서 마음이 편할 전공의와 학생은 없을 것이고 그들은 일상 복귀를 누구보다 더 원하고 있다고 했다.

박순우 학장은 원만한 타협을 위해 정부는 2000명 증원의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해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껏 수긍할 정도로 명쾌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세 가지 보고서’에 근거했다고 했으나 해당 연구자들은 매년 1000명을 늘려 10년간 유지하거나, 매년 5~7% 누적 방식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고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대학별로 조사했던 수요 조사(‘증원 희망 인원’)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박 학장은 그 조사 과정에 총장·재단 등 외부 압력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도 의심스럽고, 대학 측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한 ‘증원 희망 인원’으로 국가 대사인 의사 수 증원의 근거로 삼는 것의 부당함은 보건복지부에서도 잘 알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이 핵심적인 지적이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2000명 증원이란 파격성인데 이 수치의 근거가 약하다면 사태의 원점이 흔들린다.

박순우 학장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에서 교육 부실 가능성을 제기하니 정부는 1980년대 졸업 정원제 시절의 정원을 거론했는데 당시 의과대학 교육이 얼마나 파행적이었고 ‘흑역사’로 남아있는지 모를 리 없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논리의 궁색함을 느끼게 한다고도 했다.

증원 규모가 결정된 다음에는 구체적인 배분 방안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배분 원칙에 비수도권, 소규모 의대, 지역 필수의료, 교육 역량 등을 고려한다고 하더니 실제로는 지역, 학교 규모, 국립과 사립 등에 따른 구분 없이 대학 임의로 정원 신청을 하도록 했다.

필자는 수요조사를 했으면 이를 바탕으로 특성별·지역별로 안배하고 조정한 다음에 대학별 수용역량을 파악하고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일 것인데 배분 원칙과 관계없이 일단 2000명을 채우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이는 결국 책임을 대학에 미루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앞으로 몇 년 내에 6600병상 이상의 대학병원 분원이 수도권에 신설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의사 증원 계획이 이들 병원에 필요한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인데 박순우 학장은, 이것이 정부의 의도는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지역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정부는 이용만 당한 꼴이 된다.

정부는 국립대 병원 교수를 3년 이내에 1000명 더 늘리겠다고 한다. 필자는 이게 기존 기금교수 등을 정교수로 전환하겠다는데 그 빈자리는 어떻게 메우겠다는 것인가, 결국 사립 의대 교수들이 이동하게 될 텐데 이는 지금도 교수 확보가 어려운 지방 사립대 병원의 진료 역량이나 학생 교육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비수도권 의과대학 27개 중 70%에 가까운 18개가 사립대인데 그 비중과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의료 강화와 어떻게 부합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한번 늘린 의사 수를 다시 줄이기는 쉽지 않다. 자칫하면 이공계 붕괴 등 국가 위기로 갈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현행 의과대학 정원(3058명)의 65%를 한꺼번에 증원하면 교육 현장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0명이라는 숫자가 왜 이렇게 정부의 금과옥조나 불가침의 성역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대화의 문을 차단할 정도로 절대적인 것인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 대목은 윤석열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정원을 늘려 잡고 이것이 여론에 먹히니 총선을 의식하여 강공책을 편다는 세간의 의심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는 <일단 2000명의 늪에서 벗어나 정부와 의사 측 모두 열린 마음으로 양보하고 대화와 타협의 길로 나서자>면서 그래야 학생과 전공의가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고 했다. 박 학장은 <그들도 대한민국의 자녀이고 국민의 건강을 짊어질 미래다. 압수수색과 구속, 면허정지·면허취소 등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의 담대한 리더십과 포용력, 그리고 합리적·민주적 접근을 기대한다>고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