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에 패자(敗者)는 말이 없어야 했다. 패자가 그래줌으로써 승자는 맡은 일에 전일(專一)할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패자의 말 없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가세(加勢).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거지, 순전히 승자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도 패자가 되자, 패자의 자리까지 비워주고 해외로 비켜나지 않던가.

무릇 패자가 말이 없기는 본래부터 어려웠다. 어려워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패자가 담대하지 못하고 혼백이 졸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숨겨진 허물을 가졌다면 도리어 승자에게 앙심을 품는다. 못난 패자가 보이는 일반적 모습이다. 못난 패자는 영원한 패자가 아니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재명이 승자를 향해 '깡패'라 하며 성을 내었다. 자기가 성낼 일이 뭐 있는가. 그런데도 성을 낸다면 자기는 깡패보다 못한 더러운 패자가 돼버린다. 승자를 깡패라 하기 전에 깡패에게 패전한 책임부터 져야 순서이지 않나. 하지만 되려 의원 자리를 꿰차고 당대표 감투까지 썼다. 인간 이재명이가 아닌 그 감투에 아부하는 몇몇 의원의 힘을 잠시 빌려 저러는 것이다. 이러고도 앙화가 없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상한 일이지만 놀랄 일도 아니다 남들은 패자라서 방문을 닫아걸고 들앉거나 해외로 나가주는데 이재명은 버티고 서서 제1당의 당수 자리를 낚아챘다. 덮어 둔 허물이 드러났을 때 승자와 맞짱뜨려 저랬다고 세상이 쑥덕이고 있는 판에 그 증명이나 하는 듯이 '깡패'란 말로써 시비를 튼 것이다. 이것은 이재명의 흉중에 미리 준비돼 있던 시나리오일 것이다. 이런 재주를 좋은 데에 쓰면 그 재주 쓰임이 어찌 대한민국에만 그치고 말겠는가. 아쉽게도 이끗을 볼 눈은 있었으되 정향지(定向知)를 볼 눈은 없는 모양이다.

한편 승자는 '깡패'란 소리를 듣고도 절간의 부처님처럼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앉아만 있다. “패자 중에서도 못난 패자는 원래 저랬다 그러니 마음 쓸 것 없다. 초조감의 발로로 저러겠거니 하는 게 승자의 도리 아니겠나.”며 국정에만 신경쓰는 모습이다. 승자는 승자로되 여유로운 승잘세. 승자도 아름답고 여유도 아름답다. 마치 전에도 한번 승자를 해 본 듯이 세련되게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