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선일보와 인터뷰했습니다. 물론 하루 종일 고민했고, 많은 생각 끝에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인터뷰어인 김윤덕 선임기자가 귀국 후 모교에서 첫강의 때 제 수업을 들은 학생이기도 했고 이대 정외과 후배인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인터뷰 기사를 내 의도대로 수정할 수 있다는 약속이 최종 결심에 도움이 됐습니다.

처음부터 조선일보가 저를 먼저 공격하거나 왜곡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저는 언론저널과 정치학회보에 논문 기고를 통해 조선일보의 잘못된 담론 형성을 비판했습니다. 그 후에도 조선일보는 칼럼과 인터뷰 요청을 제게 끊임없이 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 일할 때에도 제가 먼저 조선일보를 공격했고, 내가 비판하면 조선일보는 다른 전문가를 동원해 제 논리를 깨는 기사를 썼고, 제가 재반격하면 다시 해명 기사를 쓰는 등, 어떻게 보면 저의 존재를 가장 크게 인정한 언론이기도 합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제가 안티조선 운동을 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좋은 점, 나쁜 점 다 있기에 특정 기자와 기사의 잘못된 부분만 비판하지, 사람이나 언론을 통째로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선일보에 인터뷰나 칼럼기고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조선과 손잡지 않고도 논평가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뒤에선 비판을 하면서도 조선일보에 등장하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논객이 많아서 했던 각오였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열린우리당 의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했고, 그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제가 제안한 선거전략을 무시하게 된 것도 그 이후 저에 대한 조선일보의 왜곡보도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죽어라고 책을 써도 민주당은 제 제안과 반대로 가다 실패했습니다. 성공적인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택한 논평가임에도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조선일보의 주필과 함께 정부행사의 일환으로 해외 포럼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이렇게 좋은 분이 왜 그렇게 이상하게 알려졌지요?"
"조선일보가 저를 왜곡하고 그런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우리는 서로 박장대소했고, 그 분은 화해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 후 오랫동안 저에 대한 조선일보 기사는 매우 정확했고, 왜곡없이 드라이했기에 화해의 제스처로 받아들였습니다.

정치할 생각이 일도 없는 제가 언론과 전쟁을 해서 좋은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과거엔 민주당 정치인들이 몸을 사리니 제가 대리전쟁을 했던 것인데 오히려 고마워하기보다는 왜곡보도를 믿고 저를 공격하기만 했죠. 지금은 보수언론과 전쟁하는 민주당 정치인을 민주당 지지자들이 응원하고, 오히려 거기에 출연하면 비판합니다. 정치적으로 이익이 돼서 하는 싸움을 용기있다고 칭찬할 생각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후, 박근혜 탄핵 이후, 우리 언론환경은 두 번 격동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는 힘을 잃어가고, 유투브나 인터넷 언론이 어쩌면 더 큰 영향력을 누립니다. 언론이 서로 견제하고 교차 검증되면서 특정 언론의 독점력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국힘을 적으로 간주하고, 조선일보를 원흉으로 악마화해서는 다수 국민의 마음을 사기 어렵다고 봅니다.

저는 여전히 왜곡, 오보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할 겁니다. 그러나 특정 언론을 배제하고도 내가 논평가로 성공할 수 있다는 오만은 내려놓을 생각입니다. 그 점에서 실패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정치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여든 야든 진보언론이든 보수 언론이든 가리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의견이 있으면 적극 개진할 생각입니다. 이게 누구와도 평화롭게 지내는 걸 지향하는 저의 원래 정체성과도 잘 맞습니다.

이번 책을 쓴 것도 모든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다시 내 제언이 묻히지 않고 민주당 승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