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북한인권 운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분은 No Fence를 이끌고 있는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 동경대 교수다. 우리나라에 번역서도 여러 권 나와있는 유명한 중국 철학자다.

탈북해온 북송자를 돕고 있는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사에키 히로아키 이사장은 산케이신문의 편집위원과 월간지 정론 正論의 발행인이었다. 또 일본 총리의 옷깃에 늘 달려있는 블루리본, 납북자 구출 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는 분은 아라키 카즈히로(荒木和博), 타쿠쇼쿠(拓殖) 대학교수다.

우리로 말하면 서울대 교수나 조선일보 또는 동아일보의 편집인이나 발행인 출신들이 북한인권운동의 최전선에서 30년 이상씩 뛰고있는 격이다.

오늘 아침, 유서깊은 도쿄의 히비아도서관에서 가졌던 물망초 주최 '한일 북한인권 시민단체 간담회'에 참석한 일본측 단체장들과 활동가들을 보며, 참 착잡했다. 왜 우리한테는 북한인권운동 최전선에 뛰어드는 서울대 교수도, 저명한 언론인도 없을까?

북한인권문제에 왜 대한민국 엘리트들과 언론인들은 행동하지 않을까?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앎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생명력이 없는 앎에 불과하다. 입으로는 실학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형이상학에 머무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부러웠다. 일본 학계와 일본 언론풍토가. 부러우면 진다는데…

그래도 오후에 진행된 물망초의 국군포로 관련 장편 다큐멘터리는 오사카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성공이었다. 참가자도 많았고, 영화에 대한 인식과 분석, 평론, 질문도 수준이 꽤나 높았다. 일본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언론인들도 많았고. Q&A를 한국어와 일어로 진행해야 했다.

힘들게 만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비난일색에 무시에 멸시까지 당하는 고초도 겪었다. 그러나 매년 연말, 일본에서 열리는 북한인권영화제에 현장에서 바로 초대를 받았다. 설움이 씻겨나가는 순간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기저기서 상영하게 해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감사할 일이다.

이렇게 일본 일정도 저물어간다. 10월에 다시 오게 될 것 같다. 오늘도 내 잔은 차고도 넘쳤다.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여건이 단장님과 손경익 고문님, 통일교육위원중앙연합회 양창영 회장님 등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