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文明(문명)으로부터의 이탈이 자연의 善性(선성)과 반드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허클베리 핀'은 세 개의 중요한 요소를 담고 있다. 이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헉과 짐의 자유추구과정이 엮어내는 갖가지 모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짐은 노예제도로부터 도망가고 헉은 아버지의 폭행과 미스 와트슨과 더그라스 부인의 문명교육과 품위를 重視(중시)하는 사회로부터 도피한다.

소설에서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미시시피강 沿岸(연안)의 마을들에 대한 사회적 諷刺(풍자)이다. 풍자는 악당 듀크와 킹의 경우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거나 그레인지포드와 세퍼드의 싸움이나 셔번 대령의 보그스 살해처럼 폭력적기도 하다.

세 번째 중요한 요소는 헉의 성격발전이다. 소설의 처음에는 최하층의 백인소년으로 등장한 헉은 끝에 가서는 타락한 문명에 반역하고 도덕적 순수를 추구하는 인간의 典型(전형)이 된다.

강 연안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풍자는 강 연안주민들을 지배하는 문화가 타락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치는 쇠퇴했다. 주민들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과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시대에 뒤진 칼비니즘(Calvinism)이다.

몇몇의 예외는 있지만 사람들은 편견과 迷妄(미망)에 사로잡혀 있는 蒙昧(몽매)한 인간들로서 듀크나 킹 같은 악당들의 사기에 쉽게 넘어간다. 듀크나 킹 같은 악한들은 주민들의 分身(분신)이며 주민들의 의식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악의 化身(화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헉같은 浮浪兒(부랑아)도 흑인노예에 대한 우월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타락한 노예유지 사회에 대한 풍자를 심화시킨다. 헉의 양심은 사회 환경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의 정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는 종교와 도덕과 법에 의해서 附與(부여)된 偏見(편견)과 거짓된 가치에 대항하는 충동이 있으며 이것이 헉의 양심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헉의 거짓된 믿음과 건강한 충동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그 갈등은 하류계급출신의 無知(무지)한 부랑아가 세련된 상류엘리트에 抵抗(저항)하는 사회적 갈등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우아한 東部와 西部 변경의 갈등이나 도시와 未開拓地(미개척지)와의 충돌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順應(순응)과 저항사이의 갈등이다. 사회적 順應(순응)은 個性(개성)을 흐리게 한다.

헉의 영혼의 심층에는 순수한 人間愛(인간애)가 있다. 인간에 대한 헉의 사랑은 짐을 구출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결단에서 나타난다. 짐도 부상한 톰을 버리고 도망가기를 거부함으로써 그의 고상한 정신의 일면을 보여준다. 주인공들간의 사랑은 미시시피강의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된다. 강은 항상 여름이며 자연은 주인공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헉의 망나니 아버지 팹은 모든 흑인들에게 맹렬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최하층 백인의 표본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도둑이고 주정뱅이며 글자도 모르고 더러우며 흑인과 학교와 청결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이유 없이 증오하며 헉을 학대하는 사디스트이다.

그는 선거일에 술에 취해서 투표하러 갈려다가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州(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투표하지 않겠다”며 투표하기를 거부한다. 팹은 사회로부터 離脫(이탈)한 浮浪者(부랑자)가 자연의 善性(선성)과 반드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頹落(퇴락)한 문명에 대한 반항도 헉처럼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며 흑인노예라도 선하게 대할 수 있는 인간애의 바탕이 없으면 無用(무용)하고 有害(유해)한 반문명적인 顚落(전락)에 불과하게 된다. 헉이 더글러스 부인과 미스 와트슨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것에 팹이 극도의 敵對感(적대감)을 표시하는 데서도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풀을 먹인 옷이라. 좋지. 넌 너를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넌 또 교육을 받았지. 사람들이 너는 읽고 쓸 수 있다고 하더라. 너는 아비가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아비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그렇지? 학교를 당장 집어치워. 알겠어? 사람들이 아들을 교육시켜 아들이 아비를 제치고 잘난 체 하도록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넌 또 종교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나는 그 따위 아들놈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야.”〉


문명사회에서 벗어나면 더 타락할 수도 있다

‘허클베리 핀’ 전체를 통해서 팹은 江 流域(유역)의 문명사회에서 벗어날 때 유역의 사회보다 더 타락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팹 같은 망나니는 물론 헉과 짐도 교육과 종교 같은 문명적인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헉과 짐은 문명에서 탈출하여 미시시피강을 내려가며 세속적인 천국을 즐기지만 그들의 여행이 자유로 歸着(귀착)될 수는 없다. 그들이 뗏목에서 향유하는 행복과 가치는 상상의 파편에 불과하며 사회현실과 조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헉과 짐의 추구는 실패할 운명이다. 헉은 그리스 神話(신화)의 티레시아스(Tiresias: 미래를 예언할 수는 있지만 그 것을 변경을 시킬 수는 없음)처럼 사람들의 속임수와 蠻行(만행)을 반복해서 목격하지만 그것들을 防止(방지)하지는 못한다.

헉과 짐은 그들의 뗏목이 증기선 바퀴에 부딪혀서 부서지는 바람에 자유로의 여행이 난관에 봉착한 적이 있다. 이제 헉과 짐의 여로는 방향을 상실함으로써 또 한번의 좌절을 맞이하게 된다.

짐이 미스 와트슨의 유언에 따라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톰 소여가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톰은 아무 의미도 없는 ‘도망 게임’을 하기 위해 이 정보를 비밀로 한다. 톰이 주도권을 잡고 헉은 그의 下手人(하수인)이 된다.

헉은 심지어 톰의 제안에 따라 샐리 펠프스 이모에게 자신을 톰이라고 소개한다. 여행을 끝내기 위해서는 헉은 톰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 16
헉이 저항하는 문명은 頹落(퇴락)한 문명

‘허클베리 핀’은 문명에 反旗(반기)를 들고 原始(원시)와 邊境(변경)을 예찬하는 소설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팹의 부정적인 의미를 看過(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헉에게 조차 공포의 대상이 될 만큼 사악한 인간이다.

그에게는 변경의 경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문명의 퇴락과 문화적 浸蝕(침식)만이 보일 뿐이다. 만약 팹이 문명의 반대에 해당되는 인물이라면 그가 증오하는 학교와 도시와 더글러스 부인 같은 문명적인 것들은 찬양을 받아야 할 것이다. 팹에게 필요한 것은 節制(절제)와 교양과 준법정신인데 이것들은 문명적인 것이다.

한편 팹과 함께 숲으로 돌아온 헉은 ‘게으르고 즐거운’ 삶을 가진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소년이 문명의 足鎖(족쇄)에서 벗어나는 것과 그 소년이 떠돌이 惡漢(악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헉은 “자신을 살해하고” 팹으로부터 도망쳐서 도시의 부랑자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전락하고 사람들의 視野(시야)로부터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는 상당한 기간 非實在人(비실재인, nonperson)이 된다. 헉은 잭슨섬을 은신처로 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하다가 도망노예 짐을 만난다. 짐은 마음이 따뜻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위엄이 있는 인물이다.

톰 소여의 친구인 헉과 법률적으로 흑인 범죄자인 짐 사이에 連帶(연대)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은 이들은 사회적으로 상실되고 사회에 반항하는 인물들이며 그래서 기존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사회 속에 존재할 수 없는 비실재인이기 때문이다.

문명세계의 백인 소년인 톰 소여와 친구이면서도 흑인과 함께 사는 이유에 대해서 헉은 “자신은 너무 무지하고 비천하며 술망나니의 아들로서 보여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비열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헉과 짐의 삶의 조건은 기존 사회와 사회의 문명화된 기준에 정반대가 된다. 그러므로 헉과 짐의 가치관과 사회의 도덕적 가치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있으며 둘 중 어느 하나는 부조리할 뿐 아니라 사악한 것이 되어야 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안락한 느낌을 자아내거나 牧歌的(목가적)인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인간의 생존조건의 어두운 면-공포, 難破(난파), 상실, 자연의 위협, 실패와 재난-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게 나타난다. 다윈(Darwin)이후로 자연은 아름답고 안전하며 즐거운 安息處(안식처)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 살면서 神의 天地創造(천지창조)를 실감하고 神과 대화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숲은 치열한 생존경쟁과 고통과 死滅(사멸)의 장소가 되었다. 미시시피강의 경험에서 낭만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다. 헉이 강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幻滅(환멸)일 뿐이다.

번갯불 속에서 망가진 形體(형체)를 들어내는 難破船(난파선)을 보고 헉은 배에 올라가서 물건을 약탈할 모험을 생각하고 마음이 들뜨게 된다. 그는 주저하는 짐을 “토 소여가 저런 배에 올라 갈 엄두를 내겠어?”라며 설득한다.

그러나 배에서 헉은 피살된 시체를 보게 된다. 헉의 모험은 소년의 낭만적인 재미가 아니라 무자비한 공포의 경험이 된다. 江上(강상)의 현실은 장난이나 농담이 아닌 것이다.

그레인지포드家 사람들은 1840년대의 미시시피강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신사계급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淨潔(정결)하고 핸섬하며 용기가 있으며 訓育(훈육)을 잘 받은 명예롭고 교양이 있는 기독교 신사 숙녀들이다.

비극은 이들의 빛은 어떤 근본적인 면에서 암흑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명예롭던 騎士道(기사도)가 개인적인 결투로 퇴보한 반면 미국의 변경에서는 한 단계 더 내려가서 보는 즉시 사살하거나 매복공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家門(가문)간의 싸움은 그레인지포드家같은 최상의 시민들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와서 문명은 살인적인 반문명이 되어버렸다. 그레인지포드-세퍼드슨 분쟁은 귀족적 자존심과 名望(명망)에 대한 탐욕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이고 타락한 낭만주의의 苦惱(고뇌)를 例證(예증)하는 것이다. 衰落(쇠락)한 낭만주의는 이 지역의 훌륭한 사람들을 자살적일 만큼 비이성적인 인간으로 변형시킨다.

포우커빌을 지나서 어느 초라한 寒村(한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역겨운 笑劇(소극)들-듀크와 킹의 엉터리 셰익스피어 공연, 보그스의 피살, 서커스 등-을 통해서 우리는 비극적인 악을 들여다 보게 된다.

이 곳의 사람들은 킹과 듀크보다 더 나을 바가 없을 만큼 低俗(저속)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문명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건달들이다. 그들은 진흙탕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삶의 권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재미있는 鬪犬(투견)판을 벌리거나 개를 고문해서 죽이거나 싸움이나 총격이나 私刑(사형: lynching)같은 구경거리를 미친 듯이 찾고 있는 천박한 인간들이다.

이들의 사회는 듀크나 킹 같은 사악한 인간들에게 더없이 좋은 활동무대를 제공한다. 헉도 이런 사회분위기에 휩싸여서 보그스의 딸에 대한 憐憫(연민)보다는 서커스의 즐거움에 더 몰두한다. 문명의 빛을 쐬지 않는 현실은 썩은 낭만주의의 악취만을 풍기게 된다.

이 지역에서는 총격이나 린치도 서커스와 마찬가지로 대중이 즐기는 오락물이 되어있다. 셔번은 보그스에게 총을 쏘고 보그스는 총에 맞기를 자청한다. 둘 다 이 지역의 귀족계급은 물론 중산층까지 사로잡고 있는, 한 물 간 낭만주의의 희생자인 것이다.

폭도들이 셔번을 린치하러 왔을 때 셔번 대령은 그들이 어떤 인간들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비겁자이고 얼간이이며 병든 夢想家(몽상가)인 것이다. 셔번은 그들에게 “이제 너희들은 꼬리를 내리고 집으로 가서 구멍 안으로 기어 들어가라”라고 충고하고 그들은 셔번의 명령을 따른다.

듀크와 킹이 3일 밤 동안 사기공연으로 돈을 모아 도망갈 수 있었다는 것은 셔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셰익스피어의 극을 제대로 공연할 수 없어서 킹과 듀크는 선전전단에 제일 큰 글자로 ‘숙녀와 아이는 입장불가’를 써넣는다.

그리고 “이 말이 손님을 끌 수 없다면 내가 이 곳(아칸소)를 안다고 할 수 없지”라고 덧붙여 말한다. 그는 권태에 시달리며 낭만주의에 젖어 있는 사회는 적당히 매력적인 환상으로 속여먹는 것은 아주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그 환상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파괴적일지라도 사람들을 매혹시키게 되어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罪人(죄인)인 헉이 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공식적으로 공인된 이런 ‘문명사회’에 저항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된다.

헉이 거부하는 것은 문명적이고 인간성을 드높이는 고상한 것이 아니고 왜곡되고 부조리하고 반문명적이어서 건전하고 양심이 비뚤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피하게 되는 그런 무의미한 것들이다. 헉은 기존 사회의 왜곡된 문명에 順應(순응)하지 않고 그 문명에 반항하는 ‘악한’이기 때문에 올바른 도덕적 시각을 가지게 된다.(끝)


(다음 편부터는 나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해설편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