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애정을 갖고 추억할 수 있는  곳과 사람이 있다. 오랜 만남이 아닌 순간적인 만남이었는데도 눈을 감으면떠오르는 얼국과 정경이 있다. 내 몸은 이미 그들을 떠나 있어도 마음의 길은 항상 그곳으로 통하고 그들과 함께 있다.

아다미(熱海). 일본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환상적인 이름의 이 온천도시를 찾은 것은 1975년 4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이 해안 도시에서 낭만과 절경을 기대하며 찾아왔던 나는 크게 실망했다. 백사장은 시멘트 투성이의 건물과 도로에 점령당해 있었다. 4백곳이 넘는 호텔과 여관이 몰려 있는 이 도시는 짙은 분냄새와 육욕의 분위기를풍기고 있었다. 한 여관에 짐을 맡겨 놓고 밤나들이를 나온 나는 해안 도로를 한 바퀴 돈 다음 여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밤12시께였다. 그 깜깜한 낯선 거리에서 나는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나는 짐을 맡겨 놓았던 여관 이름을 기억 해두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여관 전화 번호가 적힌 성냥곽이라도 갖고 나왔나 하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그것마저 없었다.

암흑 속에서 4백이나 되는 여관을 뒤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등에 진땀이 났다. 그 여관의 기억을 되살리려고2시간 동안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지만 허탕만 쳤다. 나는 이제 도시의 미아가 돼버린 것이다. 마지막 수단으로 나는 그 여관을 찾던 길을 아다미 역에서부터 다시 더듬기로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운전수에게 딱한 사정을 털어 놓았다.

"걱정마십시오. 같이 찾아봅시다." 나이 30대로 보이는 운전수는 골목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이는 길로 갔습니까?"
"이 건물에서 왼쪽으로 돌았습니까?"


그는 나의 기억을 살려내려고 애쓰며 한 마디 불평없이 이 길 저 길로 차를 몰았다가 물렸다가 했다. 나는 운전수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한 30분간 헤맨 끝에 나는 얼마 전에 본듯한 여관 앞에 도착했다. 여관으로 뛰어들어갔더니 낮익은 남자 주인이 나를 기다리며 문을 잠그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고마운 운전수의 손을 잡고 감사를 했다.

"참 잘 됐습니다."

같이 기뻐하면서 이마의 땀을 닦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아다미에서 겪었던 실망을 잊을 수가 있었다.

광주 사태를 취재할 때 만났던 한 시민에게 나의 마음은 머물러 있다. 건축업을 한다는 그는 내가 부산에서 왔다고하니까 나를 집으로 데려가 점심 대접까지 해 주면서,

"제발 부산에 돌아가거든 광주시민들이 경상도 사람에게 아무 감정도 없다고 전해달라."

고 부탁했다.

그 때만 해도 경상도 사람이나 차량이 섬진강을 넘어 전라도를 들어가면 혼이 난다는 유언비어가 경상도에 퍼져 있을 때였다. 그러나 광주 시내에 들어와 보니 그것이 근거가 없는 소문이었고 광주 시민들이 지역감정을 높은 양식으로 자제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 도시에서 나는 건축업자와 같은 많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젖혀두고 광주 시민과 전라도민 전체의 명예와 경상도민의 오해를 걱정하는 것을 보았다. 이들이 있는 한, 우리 민족의 지역감정은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지금도 "진실을 전해달라"던 그 광주시민의 진지하고 안타까와 하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일본 운전수의 친절과 광주시민의 호소는 실망을 희망으로 바꿔주는 힘을 갖고 있었고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재확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 월간 불광 1980년 9월 >
<1999ⓒø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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