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美국무부차관보 “이제 워싱턴에는 비둘기파가 없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9일 주한 미국대사 관저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북한의 무더기 미사일 발사 이후 고조되고 있는 미 행정부 내 강경한 기류를 전했다. 안철민 기자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9일 북한의 무더기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만이 아닌 (주변국) 모두를 겨냥한 협박(intimidation)”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6자회담 참가국을 순방 중인 힐 차관보는 이날 일본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서울 중구 정동 주한 미국 대사관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이제 워싱턴에는 비둘기파(doves)가 없고 현실주의자(realist)만 있을 뿐”이라며 대북 응징 조치를 주장하는 미 행정부 내 강경 기류를 대변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6자회담 참가국 어느 나라에도 사전 통보하지 않고 미사일을 발사했고 중국과 러시아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와는 상관없는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을 추가 발사한 것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협박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며 “각국이 취해야 할 조치는 다르겠지만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또 “북한이 중·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기 쉽지 않은 밤 시간대에 당초 목표했던 지점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해하는 것으로 짐작된다”며 “이번 발사가 완전한 실패라고 결론짓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제재를 풀어야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북한 측 반응에 대해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합의하면 관련국들로부터 받는 에너지 지원금만으로도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제재로 인한 손실액(2400만 달러)을 채울 것”이라며 “그들이 크게 오판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특히 ‘미사일 발사 강행을 북한이 대화와 협상(engagement)에 더는 관심이 없다는 신호로 보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도 강도 높은 대북 제재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그는 즉답 대신 “북한은 그동안 ‘악의 축’이나 ‘폭정의 거점’이라는 말, 경수로 중단과 금융제재 조치에 불평을 늘어놓으며 6자회담에 불참해 왔고, 이제 지난해 마지막으로 6자회담을 한 지 9개월이나 지나 ‘미사일 발사’로 응답해 왔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8, 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종석 통일부 장관,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각각 만나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정책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힐 차관보는 한국정부에 “북한이 장기간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열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천 본부장은 “5자회담은 6자회담이 되지 않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일 뿐 5자회담이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