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앞치마 두르고 커피를 갈고 단팥죽도 만드는 게 좋아. 사람들이 와서 내가 만든 걸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걸 보면 정말 좋아” 땅거미가 내리는 조용한 골목길 끝에 오래된 빨간 벽돌건물이 보였다. 일층은 커피점과 멕시코 타코 음식점이 나란히 보였다. 커피점 유리창에서 빛이 나와 도로 위에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커피점 안으로 들어갔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였다. 낙서자국이 있는 투박한 원목의 탁자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여러 종류의 낡은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통일되지 않은 부조화 속에서도 어떤 친숙함이 느껴졌다.

앞치마를 두르고 눈에 동그란 테의 작은 안경을 쓴 친구가 카운터 뒤에 서서 반갑다고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골목길에 커피점을 열었으니 오라고 했던 친구였다. 메뉴판에는 각종 커피와 단팥죽, 피자, 번이 적혀 있었다. 다른 커피점보다 값들도 싼 것 같았다. 나는 커피점 주인할아버지가 된 그가 신기해서 그가 커피를 만드는 옆으로 다가갔다. 그가 자랑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열심히 노후의 커피점을 운영하기 위해서 공부를 했지. 내 나름대로 진짜 좋은 커피를 개발했어. 진흙가마에서 장작불에 볶은 커피를 즉석에서 갈아 손님에게 제공하면 향기가 그대로 있다고 칭찬들을 해 줘. 커피점 분위기도 백년 전 뉴욕 분위기를 재현했어.”

실내는 콘크리트와 벽돌이 거칠게 표면에 나와 있었다. 그 위에 무성(無聲)영화시대의 채플린이 오리걸음으로 뒤뚱뒤뚱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내가 왔다고 카운터 옆 작업대의 통에 들어있던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한 덩어리로 떼어 작업대 위에 놓고 밀대로 밀기 시작하면서 말했다.

“내 실력으로 만드는 즉석피자를 만들어줄게. 이 피자라는 게 외국음식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 식자재로 만들면 그 맛이 나지를 않아. 그래서 이태리에서 밀가루와 치즈를 수입해서 만들고 있어. 토마토소스도 스페인 걸 들여오는데 그들이 몇백 년 내온 맛의 노하우를 우리는 따를 수 없어. 그래서 소스도 직접 사와. 소시지도 품질이 다양해. 고기가 많이 섞인 최고를 써야 하는 거야. 음식은 식자재가 중요하더라구.”

그가 스푼으로 병에서 토마토소스를 떠서 도우 위에 쓱쓱 바르고 통에서 치즈를 한 움큼 집어 뿌리고 잘라놓은 소시지를 여기저기 올려놓았다. 그가 이번에는 다시 반죽 통에서 밀가루 반죽을 조금 떼내어 손으로 둥글게 모양을 만들면서 말을 계속했다.

“너 커피 번이나 치즈 번은 먹어봤어도 앙꼬 번은 못 먹어 봤지? 내가 지금 만들어 줄게. 일본에 가서 앙꼬 장인한테 앙코 만드는 비결을 전수받았다.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하는 걸 사정사정해서 배웠어.”

“앙꼬를 만드는 것도 배웠어?”

나이 먹고 커피점 주인으로 궤도수정을 한 그의 노력이 외외로 상당한 것 같았다. 그가 신나는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하더라구. 일본 장인들은 자기 자식 외에는 기술을 알려주지 않아. 그래서 절대로 당신과 경쟁할 일이 없을 테니 알려달라고 했지. 내가 광고회사를 했고 그 분야와는 관계가 없는 외국 사람이니까 마침내 그 일본 장인의 마음이 움직인 거야. 일본에서는 앙꼬가 정말 중요해. 요깡도 모찌도 화과자도 속에 넣는 앙꼬가 핵심이잖아? 그 일본의 앙꼬 장인이 가르쳐 준 대로 하니까 방부제를 전혀 안 쓰고도 한 달이 지나도 앙코가 상하지도 않고 그대로 촉촉한 거야. 그게 노하우더라구. 너 한번 맛 좀 봐.”

그가 앞에 있던 작은 거피스푼을 들더니 앙꼬가 들은 플라스틱 통에서 한 숟가락을 떠서 내게 건네주었다. 입 속에 넣어보았다. 깊은 맛이 배인 단맛이 입안에 향기롭게 퍼지는 것 같았다. 그가 피자와 ‘앙꼬번’을 옆의 오븐에 넣으면서 덧붙였다.

“이 앙꼬를 만들려면 정말 영혼을 집어넣어야 해. 앙꼬에 쓰는 팥은 우리나라 팥이 최고야. 그걸 맑은 물에 담아 씻고 또 씻고 끓을 때도 자리를 지키면서 저어야 해. 거품을 없애면서도 팥알들이 부서지지 않고 원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게 해야 하는 거야. 특히 명품 단팥죽을 만들려면 팥알이 부서지면 안 돼. 그리고 잘한다는 단팥죽 집을 가면 인절미와 밤 그리고 은행을 넣는데 그게 궁합이 맞지 않는 거야. 단팥죽에는 잣이 어울리는 거야. 떡을 넣어도 살짝 구워서 노릇노릇한 껍데기를 만든 후에 단팥죽 위에 살짝 놓아야 하는 거야.”

친구는 이제는 즐기면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오븐에서 구워진 피자와 번이 나왔다. 그가 조그만 스테인리스 종지에 작게 자른 절인 무와 열무줄기를 담아 탁자 위에 놓았다.

“나는 피클을 쓰지 않아. 이건 우리 딸이 개발한 거니까 한번 먹어봐.”

그가 만든 뜨거운 피자와 번이 입 속에서 녹아드는 것 같았다. 그는 케냐에서 수입한 커피콩을 볶아 그 자리에서 갈은 후 뜨거운 물을 부어 가지고 왔다.

“이렇게 공을 들이고 비싼 식재료를 써서 남는 게 있어? 다리도 아픈데 늙어서 하루 종일 주문을 받고 일을 하려면 힘들잖아?”

내가 걱정을 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너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집 잘 알잖아? 아버지가 시장통 조그만 가게 세를 얻어서 빵을 만들어 팔았잖아? 그때 난 이런 커피점 주인이 되고 싶었단 말이야. 사업을 해서 나름 혼자는 부자가 됐어. 그런데 돈이 조금만 있으면 되지 필요 없는 것이더라구. 저승 갈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이제 앞치마 두르고 커피를 갈고 단팥죽도 만드는 게 좋아. 사람들이 와서 내가 만든 걸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걸 보면 정말 좋아”

“너만의 커피점 피자집 그리고 단팥죽집의 이름이 뭐지?”
“우리 딸이 가게 이름을 지어줬어. ‘피키 파파’라고 까다로운 아버지라는 뜻이야”
“그래 너는 ‘피키 파파’ 맞아.”
“아니야 난 까다롭지 않아. 사람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를 알 뿐이야.”

그는 인생 후반에 자기가 맡아야 딱 들어맞는 배역을 맡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