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안상수.금누리

안 :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느낀 점.

조 : 무엇보다 지역 감정에 대해서입니다. 지역 감정은 ‘사람이란 무엇이냐’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지역 감정에 있어서는 배운 이와 안 배운 이의 차이가 없었고, 교수와 지게꾼의 반응이 같았습니다. 결국 ‘감정’입니다. 이성이 없는 상태, 연애 심리와 비슷합니다. 전라도 사람의 애인은 김대중, 경상도 사람의 애인은 김영삼이었습니다.

연애할 때는 애인의 단점이 장점으로 보이듯이 모든 것이 감정적으로…… 똑똑한 독일인들이 왜 악마같은 히틀러를 지도자로 뽑았느냐 하는 의문을 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풀었어요. 인간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긴 하나 감정해 압도될 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였습니다.

안 : 사회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대해 느꼈던 것은.

조 : 스케일Scale과 스피드Speed입니다. 1960년 대 말 보잉 747기와 초대형 유조선이 상징하듯 인간이 추구해 온 스케일과 스피드는 그 절정에 달했습니다. 우리 한국도 크고 빠른 것을 미덕으로 믿고 그것을 추구해 온 사회였습니다. 1973년 오일 쇼크로 세계 경제 발전 속도에 제동이 걸려 세계 경제는 소비 위주의 경제에서 절약 위주의 경제로 바뀌었습니다.

고도 성장 시절에는 규모의 경제성이 설득력이 있었지만 저속 성장 시절 에는 규모의 낭비성이 대두되어 그 뒤로는 작아지고, 느려지고…… 우리 나라의 경우 오일 쇼크의 영향이 크지는 않았지만 절약 풍조로 들어 갔습니다. 우선 거리의 네온사인이 적어졌고, 가로등이 어두워지고 그래서 뺑소니 운전사가 늘어난 것은 그 시대의 에피소드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난 30년 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렸고, 그 구성원인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었으며, 그래서 사고율도 속출했었습니다. 세계에서 교통 사고율이 가장 높고 산업 재해율이 가장 많다는 것이 그것을 입증 합니다. 스피드는 우리 문화, 사회를 이해하는 데 열쇠요, 그 지름길 입니다.

금 : 통계가 갖는 모순도 함께 말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안 : 늘 인터뷰를 하는 기자 입장이다가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으로 된 기분은 어떻습니까?

조 : 괜찮습니다. 지금과 같이 질문자가 두 사람이니 더 기분이 좋습니다.

안 : 지금 가장 관심 있는 사람은?

조 : 저기서 노래 부르는 미스 조. 무엇이 ‘40대의 순정’인지를 보여줄 참입니다.

금 :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습니까? 20대의 순정과, 40대의 순정이 비교가 가능합니까?

조 : 20대에는 결혼을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적인 것을 싫어했습니다. 지금의 처와는 연애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연애를 할 때는 일상적인 것에 대해 평소에 경멸했던 생각이 바뀌더군요. 처와는 1살 차이라 그런지 아직도 친구 같은 느낌입니다. 20대의 순정은 불안하지만 40대의 순정은 느긋하지요.

안 : 도덕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조 : 양심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도덕에 저촉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도 안 느끼는 것 아닙니까?

금 : 텔레비전에서 가다피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내 나름의 도덕으로 무장되어 있다” 듣는 당시에는 참 괜찮다고 느꼈었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봅니까?

조 :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변명의 논리 아닙니까? 도덕의 기준이 무엇이냐? 나는 우선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준이라고 봅니다, 그런 도덕적인 면에서 볼 때 한국인들은 도덕 범주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서양인들은 선악에 대한 진폭이 크지만 한국인들은 적습니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선합니다. 상식과 생각이 비슷합니다. 나는 우리 나라의 문화는 퇴폐적 미학이 생겨날 수 없는 문화라고 봅니다.

금 : 표출을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조 : 한국 문화는 일부 야간업소에서 벌어지는 파렴치한 스트립 쇼 등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혹 일본인들은 맞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악취미적인 데가 있지요. 우리 사회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또 인간을 모독하는 것이기 에 민주화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강력히 단속해야 합니다.

안 : 문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조 : 분위기, 공기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안 : 소수 사람들만의 것입니까? 아니면‥‥

조 : 나는 문화에 대해 논리적인 생각은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한번도 없었으니까.

안 :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조 : 내가 쓴 기사 중 구성상 가장 완벽한 기사라면 “칼에 칼을 댄다” (84년 ‘월간 조선’ 4월호)였습니다. 그 기사를 쓰면서 생각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KAL이 왜 자꾸 사고를 내느냐? 거대한 조직과 조종사 라는 한 개인과의 관계, 즉 현대 문명의 근본적인 문제가 이 기사의 메시지 입니다. 조종사는 첨단 과학 기계를 만지는 사람이고, 이론상으로 비행기는 절대 사고가 날 수 없는 기계입니다. 결국 인간, 기계, 인간이 만든 거대한 조직, 이 셋의 관계에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공중에 있을 때 INS에 고장이 생기면 일단 착륙을 한 후에 고쳐야만 합니다. 사고 당시 KAL 007의 조종사는 INS에서 이상을 발견하고 착륙한 후에 고치고 재이륙하는 경우 회사로부터 처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무리한 모험 비행을 하다가 소련 영공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문제는 인간의 기계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인간 소외, 조직이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인 압박에서 비롯된 인간 소외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소련 전투기는 007기가 민항기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 때 소련 조종사의 머리에는 이 미식별 비행 물체가 영공을 벗어났을 경우의 책임 추궁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순간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비행기를 쏘기로 결심하고 미사일 단추를 눌렀습니다. 단추 하나를 누른 행위의 결과는 269명을 칼로 찔러 죽게 한 것과 같지만 기계적인 동작으로 해서 양심의 가책은 덜 받았을 것입니다. 기계에 의한 인간성의 마멸, 즉 인간 소외의 실례가 아닐까요.

금 : 서독 청년이 소형 비행기를 몰아 모스크바에 불시착한 것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았습니까?

조 : 참 재미있었습니다. 각박한 사회에서 웃음거리를 만들어 준 일종의 애교이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김영삼 씨 역시 각박한 선거전에서 웃음을 선사한 사람 아닙니까? ‘확실히’, ‘ 과연’‥‥‥. 웃음에서 힘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금 : 어떻게 유명해졌습니까?

조 : 유명하다는 말을 들을 때 80퍼센트는 기분 좋고, 20퍼센트는 미안 합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유명해져야 할 직업이 아닙니다. ‘Passion for anonymity (익명에의 정열)’- 미국 중앙 정보부의 모토인데 그것이야말로 기자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그 일의 파급 효과는 어떤 직업보다도 큰 것이 기자직입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의 흐뭇함 역시 혼자 느껴야 하는 것이 기자의 참 모습입니다. 나는 기자로서 과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동료 기자를 생각할 때 미안함을 느낍니다.

금 : 기자가 익명이어야 할 이유는.

조 : 취재에서부터 결과를 보여주는 것까지는 조직의 과정입니다. 책임 역시 조직이 지는 것이고, 기자는 입력의 과정만을 합니다.

금 : 익명일 때 더 신뢰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까?

안 : 좋아하는 가수는.

조 : 이미자와 정훈희. 그 밖에도 조용필, 김민기, 송창식, 양희은, 조동진도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저기 앉은 미스 조도 좋아하고……

안 : 좋아하는 말은.

조 :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날스 프로 야구단의 내야수이던 레오 듀로슈어Leo Durocher는 “왜 더티 플레이를 하는가?”란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Nice guys finish last” 즉 좋고 선한 사람은 꼴찌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자극되어 좀 악바리가 돼야겠다고 애쓴 적도 있지요. “현실적인 것은 가장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 이다”라는 헤겔의 말처럼 무엇이 이루어지고 나면 합리화되고 정당화 되기가 쉽습니다. 옛날에 지질학자들은 아랍에서 석유가 안 나온다고 했답니다. 현실적으로 기름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자 학자들은 아랍에서 왜 석유가 나오는가 하는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이론이 현실에 추종하고 당위론이 존재론을 따라가는 경우가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안 : 서양 속담에 모르는 자가 설쳐서 무엇을 이루어 놓는다는 말이 있습 니다. 즉 모르는 것이 힘이라는 논리입니까?

조 : 그런 면도 있겠지요.

<보고서/보고서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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