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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2. 중화학공업 건설의 결단과 金大中 납치사건 |
● 吳源哲의 역사를 바꾼 브리핑
● 비밀자료-「韓民統과 金大中과 북한」
● 李厚洛 증언-『망명정부 세워 金日成과 만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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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1. 근대화 혁명가 朴正熙의 생애 - 尹必鏞 사령관 숙청의 뒤안길 |
유신조치로 일체의 반대세력을 침묵시킴으로써 「권력의 化身」이 된 朴正熙는 측근의 권력관계를 냉정하고 非情하게 관리했다. 수경사령관 尹必鏞과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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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0. 근대화 혁명가 朴正熙의 생애 -「一人 쿠데타」로 가는 길 |
『이 따위 놈의 선거는 이제 없어!』
1971년 4·27 大選을 치르면서 朴正熙는 선동과 金權이 휩쓰는 선거판에 회의를 느낀다. 19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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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9. 객관적인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기회를 포착하려면 |
朴正熙 대통령은 1970년 7월23일 국방대학원 졸업식 유시에서 아주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우리와 북괴 사이에 상대적인 힘의 균형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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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8. 진보와 수구의 대결 |
지금 한국에선, 1970년대에 朴正熙와 李厚洛이 걱정했던 것이 정권유지를 위한 거짓말이라든지 단순한 기우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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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7. 연방제안의 일부 타당성을 최초로 인정한 대통령 |
李厚洛씨의 증언을 해석해 보면 金日成의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과 金大中씨의 공화국 연방제 통일방안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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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6. 좌파 지식인 야쓰에의 역할 |
일본의 좌파 월간지 世界 1998년 3월호에는 「金大中 대통령 탄생이 의미하는 것」이란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池明觀 한림대학 일본학 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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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5. 李厚洛 증언:『金日成의 말에 충격 받았다. 왜 하필 공화국 연방제인가』 |
1973년 8월8일에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金大中 납치 사건은 납치만 크게 부각되고 왜 李厚洛 당시 정보부장(또는 박정희 대통령)측이 납치를 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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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4.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보다 金日成 통일방안에 더 가까웠던 金大中 연방제 |
金大中씨와 金日成은 1970년대에 이미 연방제 통일방안이란 말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말 뜻은 다르다고 해도 상호 접근할 수 있는 친근성은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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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3. 6·23 선언으로 북한의 체제 인정 |
1970년 8·15 선언 - 1971년 8·12 적십자 회담 제의-1972년 7·4 공동성명에 이은 이정표는 1973년 6·23 선언이다. 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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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2. 통일을 안했으면 안했지 |
朴正熙는 북한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말한 평화란 것은 평화공존을 가장한 분단 고착화가 아니라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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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1. 8·15 체제 경쟁 선언 |
朴正熙 대통령의 통일 전략을 가장 핵심적으로 표현한 것은 『통일을 성취하는 데는 방안의 범람보다도 조건의 성숙이 앞서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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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0. 신라의 삼국통일을 교훈삼아 |
朴正熙는 남북통일에 대해서도 아주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전략과 생각을 유지해 갔다. 그는 1966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은 감정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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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9. 통일의 중간단계로서의 근대화, 그것을 보장하는 평화 |
朴正熙의 통일 전략은 「평화를 통한 富國强兵」을 매개(또는 중간단계)로 한 한반도 전체의 자유화였다. 그는 통일이 외세의 힘을 빌어서가 아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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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8. 인내와 自制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어야 |
朴正熙 대통령의 對北정책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인내한다는 것이었다. 이 평화의 시간이 길수록 시간은 우리 편이기 때문에 對北 우위에 보다 확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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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7. 위대한 逆轉의 轉禍爲福 |
위대한 국가·조직·인간은 그 내면에 상반되는 두 가지 요소를 공유하되 그것들이 相剋하는 관계가 아닌 相生하는 관계로서 더 차원 높은 통합을 이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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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6. 反人類 민족반역 戰犯者 |
● 朴正熙는 원래 험한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金日成에 대해서도『죽일 놈』 정도가 가장 심한 욕이었다. 朴대통령은 연설이나 일기를 통해서는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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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5. 무력통일보다는 평화공존 추구 |
朴正熙 대통령은 통일보다 평화를 더 優位에 놓았다. 그는 1964년 12월9일 서독 방문시 교포들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은 꼭 이룩해야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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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4. 反人類 민족반역 戰犯者 |
● 朴正熙는 원래 험한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金日成에 대해서도『죽일 놈』 정도가 가장 심한 욕이었다. 朴대통령은 연설이나 일기를 통해서는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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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3. 무력통일보다는 평화공존 추구 |
朴正熙 대통령은 통일보다 평화를 더 優位에 놓았다. 그는 1964년 12월9일 서독 방문시 교포들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은 꼭 이룩해야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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