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통일의 발자취를 따라서(11): 삼국통일의 외교 幕後, 김인문碑
"김인문은 요새로 비교하면 주미대사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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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注: 충북 진천, 옥천, 경북 경주, 충남 논산, 충남 부여 등에 위치한 삼국통일과 관련된 유적들을 2005년 11월11일부터 13일까지 여행하면서 조갑제 기자가 강연한 내용이다.

 [김인문 묘]
  
  
  조갑제: 보통 삼국통일의 주역을 김유신, 태종무열왕, 문무왕, 이 세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 이 분을 포함해 삼국통일의 주역 4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 비는 김인문을 기리기 위한 비입니다. 
  김인문이 쓴 태종무열왕릉이라는 서신을 보면 명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당나라에서 22년 동안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당나라와 신라가 친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신라가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당나라 황실에 김인문을 파견한 겁니다. 일종의 인질외교를 한 겁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가능하려면 작은 나라인 신라가 당시 최강대국인 당나라와 연합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인문은 어디까지나 신라 사람이니까 이런 상황을 기회로 삼아 거기서 좋은 정보가 있으면 신라에 알려주는 등의 활동을 통해서 신라통일에서, 특히 외교 분야에서 기여를 한 사람입니다. 요새로 말하자면 일종의 대사로 활동했습니다. 주미대사 정도의 수준이었죠. 
  이 사람이 곤란한 처지에 빠진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660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에 당나라는 사실상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신라가 못참으면서 670년부터 676년까지 우리가 역사에서 말하는 대당결전을 벌이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작은 나라와 큰 나라가 싸울 때 작은 나라가 일방적으로 큰 나라를 이겨도 곤란합니다. 이때 문무왕이 어떻게 했냐하면 한 번 당나라와 싸워 이기고 나서는 당 고종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이고, 미안하게 됐다’고. 그러면서 잡은 포로들을 다 돌려보내줍니다. 그러면서 또 당나라 군대를 공격하는 이런 和戰(화전)양면의 전술을 썼습니다. 당나라도 계속 공격을 당하다 보니까 신라가 당나라까지 쳐들어올 나라는 아닌 것 같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신라와 끝까지 싸워봤자 별 이득도 없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667년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라는 일종의 총독부를 만주로 이동시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김인문이 곤란을 겪게 된 것입니다. 
  당나라가 가만보니까 문무왕이 괘씸한거에요. 당나라의 입장에서는 문무왕이 독립국가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당나라는 문무왕을 계림 대도독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당나라의 한 지방영주 취급을 했습니다. 당시 삼국통일 이후에 당나라와 신라가 싸우게 된 제일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당나라가 신라를 지방 영주로 취급하자 신라가 ‘우리는 그런 대접 못받겠다’하면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나라가 문무왕을 제거하기 위해 머리를 썼습니다. 문무왕을 폐하고 김인문을 신라 왕으로 임명해버린 겁니다. 그러면서 김인문에게 ‘당신이 귀국할 때 우리 당나라 군대가 호위를 할테니까 가서 형을 밀어내고 왕을 하라’고 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준비를 마치고 신라로 오는 중에 문무왕이 편지를 잘 써서 김인문도 오지 않고 충돌도 안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김인문이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절대 권력욕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보통 권력에 맛이 들면 헤어나질 못합니다. 말하자면 당나라 앞잡이가 돼서 문무왕을 밀어내고 자신이 왕이 되려다가 죽든지 그렇게 됐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김인문은 결국 당나라에서 죽었습니다. 이 비문에 써 있는 太大角干(태대각간)이라는 직위는 당시 신라에서 제일 높은 직위입니다. 김유신도 태대각간이었죠. 干(간)이라는 것은 징기스칸의 호칭에서 붙은 칸, 그 단어입니다. 신라 관직 이름에 보면 각간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우리는 王(왕)이라는 단어를 안썼습니다. 지증왕 이후에야 왕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 전에는 麻立干(마립간)이라든지 하는 여러 가지 표현을 썼습니다. 몽고에서 쓰였던 칸과 같은 의미의 干, 그것이 바로 신라사람들이 어느 계통인지를 잘 보여주는 겁니다. 칸(干)이라는 말은 크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할 때 이 한자의 韓(한)도 칸이라는 말에서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영어로 번역하면 그레이트 칸 리퍼블릭(Great Khan Repblic)이라고나 할까요. 이제 이재호 선생이 설명하겠습니다.
  
  이재호 향토사학자: 좀 전에 조갑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만 지금 이 안내판이 잘못된 거 같습니다. 저는 원래 이런 안내판을 잘 안보는데 이 안내문이 잘못돼 있는 거 같습니다. 김인문은 당나라에서 죽은 게 맞아요.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들리겠지만 경주에서 개인을 위해서 지어준 절이 한 군데 있습니다. 바로 김인문을 위해 지은 절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삼국통일 당시 김인문은 對唐(대당) 외교의 첨병이었죠. 당시 자기 형인 문무왕이 권력과 모든 것을 다 쥐고 있었습니다. 문무왕은 대당 외교에서 큰 공을 세운 동생을 위해서 절을 지어줍니다. 이 절을 지어주는데 오다가 죽어버립니다. 
  아무튼 이 안내판이 잘못돼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김인문은 배타고 귀국하다 죽는데 그 때문에 이 절은 아미타 신앙을 모시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극락왕생을 비는 절이 되는 겁니다. 
  저기 보면 인용사터가 있습니다. 김인문을 위해서 지어준 절이 인용사입니다. 극락왕생을 빌며 아미타불을 모신 절입니다. 우리가 점심먹는 데서 멀지 않으니까 시간이 되면 가보겠습니다. 
  지금 이건 김인문을 위해서 지은 비입니다. 여기 비문과 돌거북이를 보실 때 아까 봤던 태종무열왕릉 것하고 비교해서 감상해보세요. 원래 이런 유물을 비교해서 볼 때 유물에 대해서 잘 모를때 안좋은 것만 자꾸 보면 그게 좋은지 나쁜지 모릅니다. 그런데 좋은 것과 안좋은 것을 같이 보면 두 개의 유물이 전혀 달라보입니다. 아까 우리가 봤던 것하고 이것하고 비교하면 이것도 그런대로 잘만든 것인데도 아까 것에 비해서는 조금 뭔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것도 분명이 좋은 작품입니다. 만약 아까 그 잘난 것을 안보고 이것만 봤다면 이게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하게 됐을 겁니다. 이제 김유신 장군묘로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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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7, 15:0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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