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통일의 발자취를 따라서(6): 보탑사 통일대탑과 통일기원(下)
어떤 시대정신을 가져야 7000만 동포가 한 단계 앞으로 나갈 수 있는가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편집자 注: 충북 진천, 옥천, 경북 경주, 충남 논산, 충남 부여 등에 위치한 삼국통일과 관련된 유적들을 2005년 11월11일부터 13일까지 여행하면서 조갑제 기자가 강연한 내용이다.

[보탑사, 통일대탑 下]
  
  신운철 진천군청 문화관광과 계장: 이 곳은 마이크를 안써도 거리와 상관없이 들을 수 있게 만든 강의실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잘 들리실 겁니다. 여기 전시된 그림과 사진들은 전세계의 탑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 사진이 초기의 불탑 형태라고 합니다. 인간이 불탑을 만들게 된 이유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이것은 사람이 걸어 올라가게 만든 탑, 예를 들면 황룡사 9층 목탑같은 것이 어떻게 사람이 걸어올라가게 만들었을까, 내부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것은 각 층의 중간 단계에 이런 어떤 暗幕(암막) 형태가 있기 때문인데 그 부분을 이 암각화에서 나름대로 비밀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아까 말씀드린 대로 1층과 2층 사이, 2층과 3층 사이에 암막이 존재하는 겁니다.
  이게 지금 황룡사 9층 목탑이구요, 높이가 약 80m 정도 된다고 하니까 통일대탑의 두 배 정도입니다. 높이가 두 배면 밑의 면적은 훨씬 넓었겠죠.
  목조 건물이 얼마나 보존이 어려우냐 하면요, 이 부분이 공사한 부분인데 불에 그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에 타기 전에 설계도를 만들어서 그 설계도에 따라 불에 타기 전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하거든요. 통일대탑은 이런 화재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건물 곳곳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본의 법륜사 목탑입니다. 일본의 탑 형태와 우리나라 탑 형태를 비교해보시라고 붙여놓은 사진입니다. 틀리죠? 왜 틀리냐 하면 우리나라 목재와 일본의 목재는 그 강도가 틀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은 이렇게 지을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 전통의 탑 형태를 흉내낼 수 없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큰 시설을 보면 이것의 두세 배 되는 나무가 있어 입이 딱 벌어진다고 합니다만 우리나라, 중국, 일본의 목재 중에서 우리나라 나무가 제일 강하다고 합니다.
  지금 중국에 가보게 되면 나무에다 전부 종이라든가 천 같은 것으로 감싸놨다고 합니다. 나무가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중국 나무는 갈라지면 처음부터 끝까지 쫙 갈라지기 때문에 건물의 안전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나무는 갈라지다가도 가다가 멈추기 때문에 안전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건축물을 목재로 지었을 경우 천년 이상 갈 수 있는 나무는 우리나라 나무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 시설도 천년은 갈 수 있는 시설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불에 잘 안타죠, 나무가 우리나라 나무기 때문에 천년 가죠. 또 뭐가 있을까요. 해충? 지진? 맞습니다. 지진. 이 탑은 어떻게 내진 설계를 했냐 하면 주춧돌에다가 1㎜ 정도의 모래를 깔았대요. 그 위에 기둥을 세웠기 때문에 만약에 지진이 나면 주춧돌은 주춧돌대로 움직이고 기둥에는 영향을 안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진설계도 돼 있죠. 화재 위험 없죠.
  통일대탑이 문을 여는 날, 1000~1500명이 왔다고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걱정을 했답니다. 1000명 이상 들어가는데 붕괴위험은 없겠냐. 그러니까 탑을 지은 분께서 ‘대개 사람들이 나무보다 콘크리트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지금 올라오신 인원의 두 배가 올라와도 끄떡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1층, 2층, 3층을 뚫는 부분입니다. 앞에 보이는 부처님은 미륵불이에요. 그런데 보통 어떤 절에 가든지 가장 높은 자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십니다. 이 통일대탑의 가장 높고 귀한 자리는 이 자리에요. 일전에 어떤 손님께서 오셔서 왜 이 자리에 석가모니를 안모시고 미륵불을 모셨는지 주지 스님께 여쭤보시더라구요. 주지 스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하면 ‘미륵불께서 미래에 오시라고 그런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그러시더라구요. 미륵불은 아시다시피 미래에 오실 부처님이잖아요. 이 부분이 花郞(화랑)하고 어떤 관련이 있느냐. 옛날에 신라 사람들은 화랑도를 미륵불로 믿고 살았었습니다.
  이 통일대탑을 지을 때는 다른 절을 지을 때처럼 한두 사람이 많이 시주해서 지은 게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조금씩 시주를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시주를 하신 분이 혼자서 이 미륵불상을 시주하셨다고 해요.
  
  조갑제: 이 탑을 짓는 데 예산이 40억 원 정도 들었다고 들었는데요.
  
  신운철: 대략 40억 원 정도에서 50억 원 정도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 보면 난간이 탑 주위를 빙 둘러 있습니다. 이 난간을 돌면서 소원성취를 비는 탑돌이를 하죠. 원래는 탑돌이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안전 문제 때문에 못하게 합니다. 이 난간에 올라 주변을 돌아보면 주변의 산들이 연꽃잎처럼 이 탑을 빙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탑의 丹靑(단청)을 하신 분도 우리나라 최고의 단청 전문가입니다. 그래서인지 단청이 상당히 단아하다는 평가를 많이 합니다. 이 단청은 바람과 구름과 연꽃만 이용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단청을 만들 때도 사연이 있습니다. 탑 공사를 감독하시는 분께서 그 분께 단청을 맡기려고 찾아갔더니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계시더랍니다. ‘야, 내일모레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가서 단청을 하냐’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도 그 분께 부탁드렸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공사를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입원해계시던 그 분이 ‘그러면 내가 죽더라도 거기서 죽을 테니까 한 번 해보자’ 해서 이 단청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단청을 하고 나서 건강해지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바깥에 가서 위를 보시면 탑 꼭대기가 모두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금빛이 안나요. 그 이유가 뭐냐하면 옻나무가 번개를 안맞는다고 해서 옻나무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선조들께서 건물을 지으실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외부로부터 호랑이 등 침입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막기 쉬운데 제일 힘든 게 뱀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전원주택 지을 때 그 옆에 산이 있으면 뱀이 들어온데요. 옛날 사람들은 뱀을 어떻게 막았느냐 하면 집을 조금 높게 짓고 그 아래에 돼지를 길렀대요. 뱀의 천적이 돼지래요. 돼지는 독사가 물어도 꿈쩍도 안하고 뱀을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지금 내려갈 때 보시면 여기 건물 자체가 우리나라 원시건물 樣態(양태)부터 고려 시대, 조선 시대의 건축양식을 조금씩 따르고 있어요. 그래서 건축양식을 연구하러 오시는 분도 여기 오셔서 우리나라의 시대별 건축양식을 보고 배울 정도입니다. 이 탑이 어느 정도의 건축수준이냐 하면 각국의 기술자, 전문가, 학생들이 많이 오는데 여기 온 일본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물어본다고 합니다. ‘니네들 이 정도 목조건물을 지을 수 있냐’ 물어보면 전문가와 학계 사람들은 못짓는다고 말한답니다. 중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우리 인구가 10억 명이 넘는데 찾다보면 있지 않겠냐’ 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사람이 걸어서 올라올 수 있고 强度(강도)나 引張(인장)부분 등이 건축학적으로 상당히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1500년 전에 이것의 두 배, 규모로 따지면 이것의 열 배 정도 되는 건물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냐면 이 건물을 통해 추측할 수 있습니다. 1층에 가서 보시게 되면 현판을 걸어도 1층은 조금 기울어집니다. 2층에 가면 현판이 거의 45도 기울어집니다. 3층에 가면 현판이 거의 누워버립니다. 기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걸 9층을 쌓았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1층을 쌓을 때 세 배의 노력을 해야 3층을 쌓는 게 아니라 1층 쌓을 때 30배의 노력을 해야 3층을 쌓는다고 해요. 그런데 신라 사람들은 9층을 쌓았어요. 그것도 사람이 걸어올라가게 말이죠. 지금 저희 군수님께서 오셨네요.
  
  김경회 진천군수: 안녕하십니까. 진천군수 김경회입니다. 상미회 회원 여러분들과 의미가 있는 인연을 맺게 된 이 만남이 소중한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조갑제 기자님께서 지나가는 말씀으로 여러분들께서 오신다고 했는데 제가 오늘 미처 시간을 못비웠습니다. 그래서 신운철 계장이 안내를 맡게 됐습니다.
  제가 진천 군수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1982년부터 김유신 장군께서 어떤 통일 정신을 가졌었느냐 하는 생각을 되새기고자 여기에다 통일기원탑을 하나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일회용 카메라를 가지고 김유신 장군 탄생지 주변의 연보정이라든가 연곡리 석비라든가 태실 등의 유적지 기록을 남기고 1980년대 중반에는 신영훈 선생이나 이런 분들을 제가 만나서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 절터는 원래 사유지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탑을 짓는 게 어려웠습니다만 마침 4800여 평이 거래되는 것을 소유주와 협의해 매입하면서 이 건물이 들어서게 됐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1996년에 불탑이 완공됐습니다. 財源(재원)에 대해서는 신운철 계장에게 말씀들으셨을 것입니다.
  이 탑은 1500년대 이후에 우리 조상들이 물려주지 못했던 기술을 21세기에 다시 살려내 집대성한, 한국의 고건축술을 재현한 작품입니다.
  탑이 들어선 보련마을은 많은 학자들과 풍수연구가들이 와서 이 지역을 一乘地支(일승지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그런 것은 저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수박이 썩지 않는다거나 백비의 돌거북이가 허물을 벗는 현상이 생긴다든가 이런 것들을 우리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 것인가.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정립해나가야 할 그런 시대정신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많이 어지러운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떤 시대정신을 가져야 할 것인가는 중요합니다. 고명하신 우리 지도자님들께서 정말 이 사회가 어떤 시대정신을 가져야 사천만, 칠천만 동포가 그 시대정신을 갖고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나갈 수 있는지 고민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때에만 장래에 대한민국이 어떤 새로운 꿈과 비전을 펼쳐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우리 민족의 시대정신은 삼국시대의 화랑정신, 고려시대의 抗蒙(항몽)정신에서 남은 유산은 딱 한 가지 있지 않습니까. 팔만 대장경, 조선시대의 忠義정신, 구한말의 獨立정신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지도자들이 ‘이 민족이 어떻게 해야 미래에 발전할 것인가’ 하는 뭔가를 만들어놔야 나중에 후손들에게 ‘야, 이놈들아. 그래도 우리는 이것은 해놓지 않았느냐. 너희도 좀 잘해라’ 이렇게 지도할 수 있는 조상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대정신이 발현되기를 간절히 염원을 해봅니다.
  저희 진천에서는 가로수도 전부 무궁화 나무로 바꿨습니다. 무궁화 나무의 다른 이름이 天地花라고 합니다. 무궁화 나무는 開花기간이 지구상에서 꽃피는 나무 중에서 가장 길다고 합니다. 우리는 천지화가 어떻게 우리 민족의 민족화로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미를 모릅니다. 이 꽃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있지 않겠습니까.
  신라 화랑들은 가장 모범이 되는 화랑을 선발하면 무궁화를 머리에 꽂아줬답니다. 그 모범화랑에게 무궁화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주면서 천지화랑이라고 命名(명명)했습니다. 천지화랑에겐 신라의 기관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화랑들이 목숨바쳐 싸울 수 있는 거죠. 훈련이든 전투든 1등을 하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겠죠.
  그럼 그 화랑이 전쟁터에서 죽으면 어떻게 해줬느냐. 임금이 八關會(팔관회)를 열어줬다고 합니다. 그 두 가지가 결과적으로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된 거라고 봅니다.
  신라의 골품제도도 지금 우리는 아주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죠. 당시 신라는 아주 조그만 나라였습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外戚(외척)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려고 골품제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권력을 가진 사돈이 있으면 지금도 군대 안가잖습니까. 우리 장인이 누군데, 우리 외할아버지가 누군데 하면서 안가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그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골품제도가 생긴 겁니다.
  지금 우리가 신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에게 배운 겁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이 됩니다. 신라의 역사를 읽어보면‘야, 이렇게 신라사람들이 똘똘 뭉쳐있으니까 그 거대한 강성국가인 고구려를 섭렵하고 백제를 섭렵하고 삼국통일을 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싸움터에서 죽으면 임금이 나와서 내 아들 제사 지내주고 가족들 뒷바라지 다 해주는데 목숨 안바칠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그것이 신라 팔관회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종교적인 행사로 평가절하해서 ‘그건 불교에서 하는 거야’라고 과소평가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민족은 국제결혼을 제일 먼저 했던 민족입니다. 2200년 전에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신라에서 장보고가 태어난 거죠. 우리가 연속극은 보지만 장보고가 왜 태어났냐는 사실은 모르고 있거든요. 장보고가 왜 태어났습니까.
  장보고는 동남아시아를 섭렵하면서 중국에 가서 벼슬도 했습니다. 이 말은 그 당시에는 중국 땅이 곧 우리 땅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스스로 비하하는 역사만 배운 겁니다. 상식적으로 여기서 쫓겨난 사람이 중국에서 어떻게 벼슬을 합니까. 거기도 내 나라, 내 피가 흘렀고 내 힘이 미쳤으니까 가서 벼슬을 했지 않겠습니까.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쫓겨 나왔다는 것은 드라마 내용일 뿐입니다. 장보고 장군이 동남아시아 전체를 섭렵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가야국이 서기 이전부터 우리 민족은 동남아를 제패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인도의 알마타 왕이 딸을 주죠.
  이런 예에서 보듯이 신라는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던 나라인데도 우리는 다른 역사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항상 강자에 의해서 쓰여진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조공을 안바친 지 100년이 채 안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중국 사람들이 왜곡시킨 역사를 배우면서 그게 제일인 줄 알고 있습니다.
  21세기인 지금 우리가 먹고살 만큼 됐지 않습니까. 이제는 고대에 치우 천황이 중국의 始祖를 전쟁터에서 사로잡아 무릎을 꿇게 하고 항복시켰던, 그런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치우가 누구냐. 환웅 시대의 열네 번째 임금입니다. 열네 번째 임금이 만주벌판에 가서 중국의 시조, 황제 헌원을 무릎꿇게 하고 항복을 받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빨리 교과서에 반영하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상식으로 통용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후손들이 그 커다란 가슴을 물려받을 수 있고 어디에 가서 경쟁할 때도 우리가 이긴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지 맨날 얻어맏는 것만 가르치고 중국은 대국이라고만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중국은 한반도를 天國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민족을 하늘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제 말씀은 왜 우리가 그런 역사를 가지고도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느냐는 거죠.
  지금 중국에서는 동북 3성을 자기네 땅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단군을 완전히 신격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단군이 어디 神입니까, 사람이지. 중국의 미래학자들은 단군을 신격화시키면 중국이 동북 3성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우리나라가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해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고 봅다. 제 말이 길어서 죄송합니다.
  
  조갑제: 군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신운철: 군수님께서 말씀하신 역사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청동기 시대를 대략 3000년 전이라고 배우는데 일본이 자기네 청동기 역사를 4000년으로 맞춰놓고 우리나라 역사를 맞추다보니까 우리 한민족의 청동기 역사도 거기에 맞춰 줄어든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 고인돌입니다. 고인돌은 그 부족장이 죽으면 만드는 무덤입니다. 지구상에 고인돌이 가장 많은 곳이 우리나라입니다. 지구상 고인돌의 50%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 우리나라는 거대한 부족이 이끄는 나라였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의 기원설이 북방 기원설, 남방 기원설만 있었습니다만 1980년대부터 자생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후손들이 고민해야 할 사항 중 하나인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치우천황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치우천황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운 곳에 계시느냐 하면 여러분 우두머리라는 말은 아시죠. 소 牛자, 머리 頭자를 써서 우두머리라고 합니다. 우두머리라는 말은 어떤 무리의 최고지도자를 말하는 겁니다. 이 우두머리라는 말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치우천황의 투구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치우천황은 전투 중에 청동투구를 썼는데 그 투구에 소뿔 두 개를 달았답니다. 그때부터 생긴 말이 우두머리라는 겁니다.
  우두머리의 모델인 치우천황은 실존인물입니다. 왜 실존인물이냐 하면 중국에 가면 치우천황을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지금도 중국에 가서 치우천황에 대한 말을 꺼내면 사람들이 차렷 자세로 듣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전쟁의 神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중국 사람들은 신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70여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르면서도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치우천황은 전쟁에서 焰硝(염초)와 硫黃(유황)을 썼다고 합니다. 염초는 안개를 일으키고 유황은 불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치우천황을 번개를 일으키고 안개를 일으키는 신으로 알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축구 응원단인 붉은 악마의 깃발 문양도 치우천황 문양이에요. 이만큼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어요.
  치우천황을 우리 고대역사에서 환인, 환웅, 단군으로 따졌을 때 14대 환웅이라고 합니다. 이 14대 환웅이 실존인물인데 우리는 그 아랫대인 단군을 신화라고 배우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역사도 교과서 자체도 다시 써야 하지 않느냐 하는 그런 이야기를 아까 군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치우천황이 누구와 싸웠느냐 하면 중국의 黃帝(황제) 軒轅(헌원)입니다. 치우천황은 동이족, 조선족이고 중국 황제 헌원은 중화족입니다. 황제 헌원은 중국을 세운 사람이에요. 그런데 헌원하고 싸운 치우천황은 우리나라의 15대 환웅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 역사가 오래됐겠습니까. 우리나라가 더 오래됐다는 말이죠.
  중국의 기록에도 치우천황하고 황제 헌원이 전쟁을 했다는 기록과 치우천황은 동이족이라는 기록도 남아있는데 우리는 지금 역사를 그렇게 안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황제 헌원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부분이 뭐냐하면 우리는 황제를 임금 皇자로 생각하는 데 그게 아니라 누를 黃자를 씁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누를 黃자는 五行에서 색깔로 따지면 중앙을 의미한다고 해요. 중국 고대에 五帝, 즉 다섯 제후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운데 있었던 제후인 황제 헌원이에요. 그 사람이 중국의 시조에요.
  이런 부분을 우리 후손들이 더 연구해서 우리나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말씀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속>  


[ 2018-10-10, 14:30 ] 조회수 : 203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