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통일의 발자취를 따라(1) 여행을 시작하면서
"신라는 정치와 외교를 잘한 영국, 백제는 문화와 예술이 발달했던 프랑스, 고구려는 무단적이었던 독일과 비슷"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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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注: 충북 진천, 옥천, 경북 경주, 충남 논산, 충남 부여 등에 위치한 삼국통일과 관련된 유적들을 2005년 11월11일부터 13일까지 여행하면서 조갑제 기자가 강연한 내용이다.

안녕하십니까. 마이크가 굉장히 좋네요. 유럽이나 일본 여행할 때는 마이크가 별로였는데 마이크는 역시 국산이 좋은 모양입니다.    

   오늘 지금 내려가는 방향이 진천, 옥천, 경주루트입니다. 이 방향이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진천은 生居鎭川(생거진천), 死居龍仁(사거용인)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가보시면 왜 생거진천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편안하고 사고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바람도 안불고 홍수가 난 적이 없고 지진도 없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비명횡사해서 죽을 가능성이 우리나라에서 아마 제일 적을 겁니다. 그런데 진천은 金庾信(김유신)하고 관련있는 유적이 있습니다.    

   삼국통일하면 세 사람이 떠오르는데 태종무열왕, 외교를 맡아 해서 당나라와 목숨을 건 외교를 합니다. 통일은 그 아들 때인 문무왕 때 했지요. 그 두 분을 모시고 장수하면서 통일을 이룬 김유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통일하면 바로 연상되는 건 태종무열왕과 문무왕보다는 김유신입니다. 김유신은 太大角干(태대각간)이라는 최고 직책까지 올랐습니다. 말하자면 국방장관을 30~40년 한 겁니다. 이 분의 생애가 특이한 게 79세까지 살았습니다. 그 당시 79세 살았다면 지금으로 치면 100세 정도하고 비슷할 겁니다. 세종대왕 같은 분들은 다들 50세 정도까지 살았고 문무왕도 50세에 죽었습니다. 김유신이 79세까지 살았다는 게 신라의 운명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천에 가면 김유신 사당인 吉祥祠(길상사)가 있습니다. 길상사는 절이 아니라 사당입니다. 그 다음에 용화사가 있는데 여기는 김유신을 기리고 고려시대 불상을 모시는 곳입니다. 그 다음에 김유신의 생가,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최근에 새로 지은 우리나라 명물이 하나 생겼습니다. 寶塔寺(보탑사)라는 절입니다. 이 절은 申榮勳(신영훈) 씨라고 목수인데 아주 큰 목수죠. 이 사람이 지은 절입니다. 그게 요새 구경거리가 돼서 그 마을에 일년에 몇 십만 명이 온답니다. 그 다음에 식사를 하고 이동할 겁니다.   

   삼국통일을 테마로 잡은 이유는 우리가 이제 남북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을 생각하자는 겁니다. 우리 역사에서 과거에 삼국통일이 있었고 그 다음에 후삼국 시대 수십년 동안 갈라졌다가 王建에 의해 통일이 됐습니다. 다가오는 남북통일까지 포함하면 세 번의 통일입니다.   

   이런 시기에 맞춰 통일을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과 두 번째는 우리 민족이 생겨난 계기를 되새겨 보기 위해서입니다. 한반도가 산동성의 일부, 중국의 일부가 되지 않고서 우리가 한국말을 쓰면서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게 된 것은 신라통일 때부터입니다. 신라가 통일을 했기 때문에, 신라가 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결전을 통해 唐나라를 한반도에서 쫓아냈기 때문에 우리가 중국의 식민지가 안됐습니다. 지리적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중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정상일텐데 바로 이 김유신과 문무왕, 태종무열왕의 리더십 때문에 우리가 지금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되새겨보자는 뜻이 이번 여행속에 있습니다.   

   제가 삼국통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된 것이 아니고 한 10여 년 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삼국통일의 뜻을 알게 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굉장히 자랑할 만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김유신 같은 영웅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의 축복입니다.   

  유럽에 가면 영웅들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저는 전쟁에도 관심이 많고 이래서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대왕, 시저, 비스마르크 같은 영웅들을 많이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신라의 삼국통일 이야기를 읽어보니까 김유신이나 김춘추 문무왕 사람들이 유럽의 영웅들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아,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하는 자부심이 저절로 생기는 걸 느꼈습니다. 나의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 바로 신라의 삼국통일에 있고 신라의 삼국통일에 의해 만들어진 통일신라 시대의 찬란한 문화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민족사에서 딱 한 번 선진국이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건 신라통일 전후로 해서 300여년, 6~9세기까지입니다. 이 기간은 신라가 세계의 선진국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유럽이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잘 아시겠지만 중세암흑시대였습니다. 로마가 망해가는 게 4세기. 결정적인 이유가 게르만족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원래부터 로마와 싸우다가 4세기 쯤 되면 우리의 조상쯤되는 훈족(흉노족)이 나타나 게르만족을 치니까 그들은 살기 위해서 서쪽으로 밀려갑니니다. 지금의 이탈리아, 프랑스권 즉 로마 문명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로마가 무너져버렸습니다. 로마가 무너지니까 서구의 문명 세계가 무너졌습니다. 야만시대로 되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뒤 400~500년 동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중세의 암흑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이 암흑시대라는 것은 아무 것도 만든 게 없어요. 유럽 여행을 많이 가신 분은 아실 겁니다. 유럽에 가보면 4세기에서 11세기까지 지은 건물이 거의 없습니다. 이 암흑시대에 기능했던 교회죠. 그때 유럽문명을 지탱한 것은 게르만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 등 여러 정권들과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세계 전체를 보면 문명의 중심이 어디냐? 동북아시아였습니다. 당나라와 신라였습니다. 여기가 7세기, 8세기, 9세기에는 세계적인 문명의 중심이었습니다. 7세기 무렵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슬람 문명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중동의 이슬람, 동양의 당, 신라, 일본, 대충 이런 나라들이 선진국이었습니다. 당나라, 통일신라, 일본은 당시 세계사에서 ‘Big 3’였을 겁니다. 국력이나 문화적인 면에서 말이죠. 그것을 염두에 두시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신라는 민족사에서는 유일한 선진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통일을 한다면 역사상 두 번째의 선진국이 되는 길이 열립니다. 신라를 연구하면 선진국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이번 여행의 한 목적입니다.    

   이번 여행을 하시면서는 일단 時計(시계)를 6세기 경으로 맞추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 550년대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먼저 옥천에 왜 가느냐. 서기 554년에 한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쟁이 거기서 있었습니다. 관산성 전투입니다. 요새 SBS인가 어디 드라마에서 그 장면이 나오는 걸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백제 성왕이 신라군에게 잡혀서 노예한테 목이 달아나는 장면을 보여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때 신라는 진흥왕이었습니다. 진흥왕하면 보통 생각하시는 게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북한산에 있다가 망가진다 그래서 박물관으로 옮긴 거 아시죠. 그런데 ‘진흥왕 순수비가 왜 북한산에 있느냐’ 생각해보셨습니까.    

   그 당시 진흥왕은 영토를 북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해서 함경도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일이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한 겁니다. 서울을 차지한 겁니다. 서울과 한강을 차지한 사람은 한반도의 주인이 됩니다. 한강 유역은 우선 좋은 땅이 많고 하구를 통해서 중국과 왕래가 용이합니다. 한강을 놓치면 한민족의 정통성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바로 북한의 경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진흥왕은 일곱 살 때 왕이 됐습니다. 어머니가 계속 섭정을 하다가 20대에 들어와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백제에서도 유명한 왕이 나왔습니다. 무녕왕의 아들이 성왕입니다. 성왕이 또 백제의 아주 영명한 왕이었습니다. 백제도 전성기고 신라도 전성기였고 아주 두 英傑(영걸)들이 운명적으로 만난거죠.    

   그 전에는 백제와 신라가 동맹국이었습니다. 왜냐? 고구려가 계속 남침을 하니까 동맹을 맺은 겁니다. 장수왕 이런 사람들이 특히 백제를 치려고 계속 남침을 하자 백제와 신라가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성왕과 진흥왕 시절이 되면서 동맹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성왕, 진흥왕 다 야심만만한 사람들이니까 동맹이 깨지기 시작한 겁니다.    

   먼저 신라가 동맹을 깨죠. 고구려와 백제가 싸우는 사이에 공격해서 양쪽의 영토를 다 점령해버리죠. 그러다가 옥천에서 양쪽 군대가 결전을 합니다. 현장에 가면 향토 사학자 분께서 나오셔서 더 실감있게 설명을 하실 겁니다. 저는 개괄적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드리는 겁니다.   

   이때 동북아시아 전체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관산성 전투가 있었던 554년에 동북아에서는 어떤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는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중국에는 잘 아시는 삼국지 시대가 지났습니다. 유비, 장비, 관운장이 나오는 삼국지는 다 아실 겁니다. 이 삼국지 시대가 3세기의 시대인데 晉 나라가 통일을 해 끝납니다. 이게 100년을 못갑니다. 왜 못갔느냐? 북쪽의 기마민족이 쳐들어 옵니다. 활 쏘고 말 타는 기마민족이 쳐들어 오는 바람에 晉나라가 망해버리고 그 뒤에 약 300년 동안 역사에서 5胡(호) 16國 시대가 시작됩니다. 5胡(호), 다섯 오랑캐가 16國, 16개 나라를 만드는 시대입니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태가 일어나다가 화북 지방에서 北魏라는 나라가 생깁니다. 이 나라가 화북지방을 통일합니다. 이 나라가 나중에 몇 단계를 거쳐서 隋나라가 됩니다. 隋나라가 300여년 간 계속된 5胡 16國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통일합니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554년은 아직 隋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입니다.   

   그 다음에 일본은 어땠느냐? 삼국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일본을 이야기하느냐? 삼국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신라는 백제, 고구려, 당, 그리고 일본하고도 싸웁니다. 한반도 통일은 반드시 국제적인 관계속에서 간섭을 받게 되는 겁니다. 중국과 일본이 개입하는 겁니다. 삼국통일 때부터 그런 일이 시작된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의 정세를 아셔야 되는 겁니다.    

   일본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냐. 고대 일본은 가야 사람들이 主力이 되어 만든 나라입니다. 가야 사람들 중에 용감한 사람들이 대마도를 거쳐 규슈로 건너갑니다. 규슈로 건너가서 지금의 후쿠오카 부근에서 왕국을 만들어 힘을 비축합니다. 요 상태에서 규슈, 대마도, 지금의 경상남도에 있던 가야, 이것이 한 덩어리가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현해탄을 끼고 일본과 한국에 걸쳐서 일종의 가야 연방국이 생기는 겁니다. 이 세력의 주력은 계속해서 일본으로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남은 가야는 주력이 빠진 상태에서 부족국가 상태를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신라에 흡수돼 버립니다. 주력이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입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가야 사람들이 규슈 지방에서 왕국을 만들었다가 그걸 징검다리로 사용해가지고 4세기경부터 어디로 가느냐. 지금의 나라, 교토, 오사카 지방으로 진출합니다. 여기를 일본 사람들이 긴키 지방이라고 그럽니다.    

   일본 지도를 보면 규슈에서 오사카까지 가려면 신칸센을 타는 방법도 있지만 세도나이카이라는 호수처럼 생긴 바다로 항해하면 아주 안전하게 오사카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규슈로 갔던 가야 사람들은 다시 나라 지방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야마토 정권(大和 정권)을 세웁니다. 이게 고대 일본의 시작이 되는 거죠. 이게 4세기쯤 됩니다. 그런데 이 가야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떠난 고향을 생각합니다. 가만보니까 가야를 먹으려는 나라가 있는 겁니다. 신라입니다. 신라가 계속 가야를 침공하려 하니까 어떻겠습니까? 가야가 만든 일본 야마토 정권(倭)과 신라는 敵國(적국)이 됩니다. 이게 운명적으로 지금의 韓日관계로까지 이어집니다.    

   韓日 관계가 왜 이렇게 감정이 나쁘냐? 그 출발점이 가야 사람과 신라 사람의 대결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에 백제가 붙습니다.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이 보니까 고향이 망할 것 같아 보입니다. 倭는 그래서 백제와 연합을 합니다. 결국 일본, 가야, 백제, 이 세 나라가 연합해서 신라와 對敵하게 됩니다. 

   554년 신라 진흥왕이 관산성(지금의 옥천)까지 3만 명을 데리고 오고 백제 성왕의 아들이 약 3만 명을 동원합니다. 당시 3만 명이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백제 편에 선 것이 대가야, 왜군(일본군)이었습니다. 관산성 전투는 신라 對 백제-가야-왜의 국제전이 됐습니다.    

   이 전쟁에 대해서는 제가 나눠드린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나중에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554년 일본에서 몇천 명의 지원군이 건너오고, 백제와 가야가 손을 잡고는 산이 많은 산악지대인 옥천에서 신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겁니다. 백제 聖王이 신라군에게 잡혀 죽는 바람에 진흥왕의 신라 군대가 거의 완승을 했습니다.   

   이 전투가 왜 우리 민족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냐? 당시 가야가 옥천 전투에 약 1만 명을 보냈다가 백제군과 같이 전멸을 했습니다. 그 10년 뒤에 가야가 망했습니다. 당시 대가야는 경북 고령에 있었는데, 이렇게 하여 신라가 경상남도 지역을 다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야 사람들이 철, 쇠를 잘 만들었습니다. 일본에 쇠 기술을 가지고 간 것도 가야 사람들이고 일본을 점령할 수 있었던 힘의 배경도 쇠를 잘 다루고 무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가야는 종합제철소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던 겁니다.    

   우리가 1960년대 힘도 없으면서 왜 종합제철소를 만들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느냐? 종합제철소가 있어야 공업력을 키울 수 있고 이를 통해 무기를 만들어야 북한과 싸울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무기를 쇠로 만들었기 때문에 製鐵(제철) 기술이 지금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신라는 가야를 점령했기 때문에 철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확장하게 되었고, 삼국통일로 갈 수 있는 관문을 연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있습니다. 김유신은 누구냐. 조상이 지금 김해, 즉 금관가야의 왕입니다. 김수로 왕의 후손입니다. 금관가야는 자진해서 신라에 항복하였고, 신라는 금관가야의 왕족을 받아들여 대우를 잘 해줍니다. 신라가 통일해가는 과정을 보면 포용력이 강하고 개방적입니다. 너그러운 나라입니다. 정치를 참 잘한 나라가 신라입니다. 저는 가끔 신라, 백제, 고구려를 유럽 나라에 비교합니다. 신라는 영국을 닮은 나라, 프랑스는 백제, 고구려는 독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신라와 영국은 외교와 정치를 잘했고, 백제와 프랑스는 문화와 예술이 뛰어나고 고구려와 독일은 용감하여 전투에 능했습니다. 정치와 외교에 뛰어났던 신라와 영국이 패권을 잡은 것입니다. 신라는 포용성이 커 항복한 금관가야의 왕족을 장군으로 임명하기도 합니다. 김유신의 할아버지가 그런 예입니다.    

  관산성 전투가 있었을 때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金武力이라는 사람은 어디에 주둔하고 있었느냐 하면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경기도 이천에서 지구사령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옥천에서 전쟁이 일어나니까 부대를 이끌고 이천에서 진천을 거쳐 옥천으로 내려갔습니다. 백제 성왕과 싸울 때 아주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 뒤 김무력의 집안은 진천에서 수비군 사령관 겸 지구 계엄 사령관이 됩니다. 이것이 진천에서 김유신이 태어나게 된 이유입니다.   

   김유신은 말하자면 망한 금관가야의 후손이면서도 신라의 실력자가 된 겁니다. 이런 경우는 특이하지 않습니까. 敵國에서 항복한 사람이 항복을 받아준 나라의 실력자가 됐다는 것이 신묘합니다. 더구나 신라는 ‘眞骨(진골)’, ‘聖骨(성골)’이라고 해서 피를 굉장히 따지는 나라인데 어떻게 적국의 왕족 후예가 신라의 실력자가 되느냐.  

  그 중간단계에 바로 할아버지 김무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가 관산성에서 큰 공을 세우기 때문에 이 집안이 신라의 중심세력이 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김유신은 소년기 때 화랑도의 대표가 됩니다. 화랑도의 대표를 風月主(풍월주)라고 하는데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었을 때 부관이 金春秋(김춘추)였습니다. 나이가 여섯 살 아래입니다.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김춘추의 여동생 문희가 꿈을 꾸고 해서 김유신과 결혼하게 됩니다. 김유신과 김춘추家가 결혼한 것은, 김춘추로 대표되는 신라왕족과-김춘추는 물론 왕족 출신입니다. 왕족이지만 약간 중심에서 밀려난 집안입니다- 가야계 김유신 세력이 손을 잡아가지고 권력을 잡는 발판을 만들고 이를 도약대로 삼아 삼국을 통일하는 겁니다.    이런 일은 우리 역사에서 참 드문 경우입니다. 김유신은 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30년 동안 兵權(병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국방부장관이 된 거죠. 그것도 네 왕을 모시면서 병권을 유지했습니다. 무서운 병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선덕여왕, 진덕여왕, 태종무열왕, 문무왕 이 네 사람을 극진히 모시면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할 수 있었나?   

  김유신 같이 병권을 가진 사람이 오래 살면 보통 왕은 그 사람을 죽여버리거나 아니면 병권을 가진 사람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이 직접 왕이 돼 버리는데 어떻게 평화롭게 네 명의 왕을 모시면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원동력을 만들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은 기적적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거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살펴보면 첫째는 김유신과 김춘추의 姻戚(인척), 婚戚(혼척), 그 다음에 삼국통일을 해야 한다는 大義에 대한 어떤 합의,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신라가 망하지 않는 한 김유신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왕은 진골과 성골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안심을 했겠죠.   

  김유신의 혼인관계가 재미있습니다. 김춘추는 김유신의 여동생과 결혼합니다. 그 사이에서 문무왕이 납니다. 그런데 김춘추의 딸이 있었습니다. 김춘추의 딸이 다시 김유신의 부인이 됩니다. 이런 근친혼은 신라 당시에는 상식이었습니다. 이중삼중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三國史記를 꼭 읽으셔야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돌아가셔서 꼭 삼국사기를 읽어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방향이, 아마 이천에서 진천, 옥천으로 가는 그 고속도로는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이 554년 부대를 이끌고 진흥왕을 구원하기 위해 가던 그 길일 겁니다. 일단 도입부는 여기서 마치고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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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28, 12: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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